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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 침몰한 '세월호' 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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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축 공사로 올라간 무게중심을 다시 끌어내리려면 화물을 엄청나게 줄이는 대신 평형수를 더 넣어야 하는데, 돈 되는 화물 대신 바닷물을 싣고 돌아다니려면 도대체 배를 왜 운영하겠는가. 화물을 줄이는 대신 평형수를 엄청 채워 놓으면 복원성이 만족된다는 조건은 도저히 수익을 목표로 하는 상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한국선급(KR)이 선사(청해진해운)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믿고 개조 허가를 내 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박치수 교수)

한국선급은 지난해 1월 청해진해운이 신청한 세월호 구조변경을 승인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선미에 객실 두 개층을 증축하는 대신 선박의 복원력(선체가 좌우로 기울었다가 다시 중심을 잡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화물량을 개조 전 2437톤에서 987톤으로 1450톤을 줄이고, 여객 수용 무게도 5톤이 적은 83톤으로 수정한 것. 반대로 평형수의 양은 1023톤에서 2030톤으로 두 배 가까이 늘리도록 했다.

하지만 사실상 이런 조건은 당초 청해진해운이 지키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개조에 따라 세월호의 총 정원은 당초 840명에서 956명으로 116명이 늘어났지만,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물 적재량(재화 중량톤)이 58%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선급이 내준 허가조건대로라면 개조로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큰 셈인데, 청해진해운은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 개조를 했다. 다시 말하자면 화물의 무게를 비현실적으로 줄이라는 한국선급의 조건은 매주 4차례, 한 달에 16차례씩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세월호에게는 운항 때마다 적자를 보라는 말과 것과 같은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청해진해운의 개조

박 교수는 이런 과정을 자동차검사에 비유했다.

"영업용 택시가 자동차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차가 개조를 잘못해서 승객을 한 명이라도 태우면 부서지게 되어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자동차 검사에서 불합격을 시켜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택시에 '승객을 태우지 않으면 안전하니 승객을 태우지 않으면 운행해도 좋다'고 허가를 내준 것이다."

그런데도 청해진해운은 어떤 영문인지 '개조 전보다 돈을 더 못 버는 방법으로, 그것도 돈을 엄청 더 들여서 개조를 하는 비상식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청해진해운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13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320억 원 중 화물운송으로 194억8천만 원, 여객운송으로는 125억3천만 원을 각각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물 운송 수입은 지난 2009년 대비 70.8% 증가한 반면 여객 수입은 28.2%가 감소한 것이다. 여객 수입이 줄어드는 추세는 저가항공의 영향으로 더욱 가속화 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해진해운은 116명을 더 태우자고 51억 원의 돈을 써가며 객실 증축을 한 것이다.

세월호 여객 기본운임은 제일 싼 선실(3등실)을 기준으로 할 때 승객 1인당 7만1000원인데 비해, 트레일러 한 대의 운임은 100만 원이 훨씬 넘었다. 세월호 승선경험이 있는 한 화물차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4.5톤 트럭의 경우 빈차는 56만 원, 짐을 실은 차는 60만7800원, 트레일러는 140만 원을 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에도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1톤 화물차량 22대, 2.5톤 이상 화물차량 34대 등 차량 180대와 화물 1157톤 등 모두 3608톤이 적재돼 있어, 화물운임은 승객 운임 3000여 만 원을 훨씬 웃도는 80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해진해운뿐만 아니라 연안 카페리회사 대부분이 승객 운임보다 화물 운송으로 수익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업계관계자들도 세월호 선사의 이상한 개조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해운전문가는 물류전문 뉴스사이트 <데일리로그>와 한 인터뷰에서 "화물적재를 줄이라는 것은 본선에 공간이 텅텅 비어 있는데 짐을 싣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개조작업으로 재화중량톤이 약 58%로 엄청나게 줄었는데 화물을 싣지 못하면서 굳이 증축을 하겠냐"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특히 "(한국선급 측이) 화물 대신 평형수를 더 실으라는 조언을 했다는데, 상식적으로 돈 되는 화물이 아닌 평형수를 더 많이 실으려면 증축을 왜 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선사가 개조 후 손해 볼 일을 돈 들여가면서 할 이유는 없지 않냐"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연안여객선뿐만 아니라 국제 카페리선도 화물수익이 대부분인데, 화물 대신 평형수를 더 싣고 화물적재톤수를 줄이라고 하면 차라리 개조를 안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해운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인데 이러한 상황을 몰랐다면 60년 전통의 한국선급의 기술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업계의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면 뻔뻔하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청해진해운 개조 비용 부풀려 비자금 조성했나?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탑승객 구조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4월 17일 오전 인천시 중구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있는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 굳게 닫힌 청해진해운 사무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탑승객 구조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4월 17일 오전 인천시 중구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있는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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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증축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개조를 한 것은 청해진해운이 애당초 전제조건을 지킬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세월호의 '상습 과적' 사실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세월호는 첫 취항일인 지난해 3월 15일부터 사고 당일까지 인천-제주 노선을 모두 120번 왕복(편도 240회)했다. 240차례의 항해 중 무려 138차례가 과적운항이었다. 청해진해운은 이 같은 과적운항으로 13개월간 29억6600만 원의 부당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마지막 항해가 된 지난달 16일에도 세월호에는 허가된 중량보다 3배가 넘는 화물이 실려 있었다.

일각에서는 청해진해운이 세월호의 구입 가격과 개조 비용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개조의 이유가 다른데 있었다는 지적이다. 해외에서 건조되어 현재 국내에서 운항중인 5천톤급 이상 여객선 7척 중 유독 청해진해운이 소유하고 있는 오하마나와 세월호 2척만 개조를 했다는 사실도 이상한 일이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지난 7일 보도자료를 통해 "120억 원 수준의 담보가치와 선체보험금보다 과도하게 높은 세월호의 취득원가 178억 원이 부풀려지지 않았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2012년 10월 세월호를 일본 마루에이페리사로부터 127억 원을 들여 수입한 뒤 51억 원을 들여 개조했다. 한국산업은행은 세월호를 담보로 2012년에는 80억 원, 2013년에는 20억 원을 청해진해운에 대출해줬다.

김 의원은 "산업은행이 178억 원(수입가격 127억 원 + 개조비용 51억 원)을 들여 도입한 선박을 120억 원 밖에 안 되는 것으로 평가한 이유는 무엇이냐"며 "일부에서는 세월호의 실제 취득원가가 178억 원이 아니라 120억 원 수준인데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씨 일가가 가격을 부풀렸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세월호가 100억 원 정도 될 것이라는 업계의 상식을 감안하더라도 178억 원이란 취득원가에 거품은 없었는지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세월호를 개조한 국내사 및 중개회사, 마루에이페리사를 통해서라도 세월호 취득가격을 검증해 횡령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이유에서 청해진해운이 지키지도 못할 조건을 감수해 가면서 객실 증축을 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적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도 어이없는 등록검사를 해준 한국선급 역시 이번 참사의 공범이란 사실이다.


태그:#세월호, #한국선급, #청해진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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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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