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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가 참여하는 중국 관련 포럼에서 한 대기업의 중국 부동산 투자 관련 담당자가 중국 진출 사례를 발표했다. 이 기업은 10년 전부터 중국 투자를 시작해 지금도 활발하게 중국에 투자하는 기업 중에 하나다. 발표자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뒤 나는 조금은 당돌하게 질문을 했다.

"귀사는 이미 중국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 대도시의 멀티컴플렉스형 부동산 개발에는 소호나 뤼디, 완커 등 중국 대기업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많은 투자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까."

그 담당자는 "회사 경영진들은 중국의 소득수준에 따라 도시가 발전하는 순서가 있다고 판단해 그런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라고 답했다. 사실 이 대답은 너무 피상적인 것이다. 이 기업은 이미 엄청난 수험료를 치른 경험이 있어도 '중국 요소'라는 것을 여전히 간과하고 있다.

그런 상처는 이미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다. 4조 원 가까운 돈을 투자됐던 STX의 랴오닝 투자는 땡전 한푼 건지지 못하고, 현지 주재원들이 피신해오는 상황이다. 그 4조 원은 우리 국민들이 그간 피땀 흘려 모은 국가 자산의 일부다. 대기업에서부터 자영업자까지 중국 요소는 여전히 간과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해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철수 위기에 몰린 한 유통기업의 상하이 매장.
 중국에 진출해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철수 위기에 몰린 한 유통기업의 상하이 매장.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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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전히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막연하다. 그리고 실패도 계속되고 있다. 그 실패가 자영업자를 넘어 중소기업을 지나, 이제는 대기업까지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중국을 보는 눈은 여전히 막연한 수준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필자는 중국을 보는 7가지 정도의 점검 포인트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첫 번째는 자신이 중국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이해는 가장 먼저 중국어부터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 중국인의 습관에 대한 이해 등이다. 사업을 생각하고, 중국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은 간단했다.

"사업은 생각지도 말고 우선 6개월은 언어에 매진하세요. 물론 공부 시간 외에는 자신이 하고자하는 분야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해두세요."

6개월은 짧은 시간이지만 현지에서 부지런히 수업을 듣고, 현장을 다니면 소통은 가능한 중국서 수준이 될 수 있다.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 1년이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중국 사업을 생각할 정도의 열정으로 자신을 거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 초보 진출자들은 이런 기초적인 과정도 거치지 않는다. 심지어는 중국에 관한 책 한 권 읽어보지도 않고 오는 이들도 상당수다. 십수 년전만 해도 1~2억 원 갖고 오면 미진한 허가를 받고 음식점이라도 할 수 있는 시기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소통조차 없는 이들이 사업을 제대로 할 리 없다. 우선 음식점을 해도 위생국, 소방국 등 수많은 절차와 부딪히다가 무너진다. 중간이 어려워 편법으로 시작한 이들도 있지만 결국 중국 당국에 부딪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 종자돈 날리고 결국 몰락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사업이 본격화되면 종업원으로 일하는 중국인들과의 소통, 세금, 재무관리 등 숙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기업이야 각각 파트가 있어서 순차적으로 처리가능하지만 중소 투자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물론 규모가 있다면 코트라, 무역협회, 중소기업진흥청 등 전문기관을 찾아가 귀찮게 하는 것도 묘수다. 자신의 중국어나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면 그 사업은 이미 접은 거나 마찬가지다.

타이어 산업은 중국 자동차 시장과 맞물려 아직까지 선전하는 업종 중 하나다. 문제는 부상하는 중국기업과 경쟁력이다
▲ 중국 진출한 제조업 공장 모습 타이어 산업은 중국 자동차 시장과 맞물려 아직까지 선전하는 업종 중 하나다. 문제는 부상하는 중국기업과 경쟁력이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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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자신이 할 사업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수년 전부터 한국 대기업의 중국 유통업 진출은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중국식 작명에 성공한 이마트나 롯데마트는 이미 중국에 다양하게 자리잡았다.

현재 이마트는 적자 누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반면, 롯데는 마트는 물론이고 백화점까지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이런 자신감은 한국에서 국제적인 유통체인과 경쟁에서 이겼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한국 기업에게 중국에서 유통업은 맞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유통업은 비즈니스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우선 상품 선정, 물류, 마케팅, 직원관리 등 다양한 부분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이라 해도 중국에서 이 부분을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업이 나오기는 힘들다. 2010년 필자는 상하이에 있는 이마트 한 매장의 과일매장에 가보고, 어려울 것이라는 칼럼을 썼다. 이후에 진행되는 추세를 보니, 필자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신선도가 유지되는 과일의 경우 소비자의 흐름이나 취향 등을 분석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매장의 적자를 키우는 함정이 될 수 있는데 그 흐름을 만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수의 중국인 현지 직원의 교육이나 관리 등은 한국인들로서는 쉽지 않다.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으로 10여 년간 자리하던 왕징은 도시가 완성되자, 임대료가 올라 한국인들은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 베이징의 코리안타운 왕징 중심가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으로 10여 년간 자리하던 왕징은 도시가 완성되자, 임대료가 올라 한국인들은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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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중국에 진출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 음식점의 경우 아직까지도 가장 유망한 사업 분야다. 하지만 이 역시 지역과 투자금액을 잘 고려해야 한다. 현재 베이징의 경우 20억 원이 투자된 고급 한국음식점에서 작은 거리 음식점이 다양하게 있다.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성공한 사례에 꼽히는 한 음식점도 지금까지는 성공했지만 주변에 비슷한 규모의 한국음식점이 새로 생기면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형 음식점의 경우 사업을 총괄하는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 매니저 한 명에 의해 사업의 성패가 쉽게 좌지우지 되는 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베이징, 상하이, 톈진의 한인타운은 이미 한국 음식점이 포화된 상태다. 또 10년 전만해도 1~2억 원이면 가능하던 음식점 투자 금액이 4~5억 원은 돼야 할 만큼 쉽지 않아졌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적은 대도시에서 한국음식점은 상대적으로 나을 수 있다. 정저우, 우한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도시는 아직 도시 발달 수준이 낮아 임대료도 낮고, 소비층도 풍부해 투자가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어 소통 능력이나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필수인 만큼 쉽지 않다.

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할 수 있는 사업들은 나쁘지 않다. 중국의 부유층은 늘어가는 반면에 음식 안전 등은 담보되지 않아 분유, 화장품 등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분야의 수입업은 상당히 좋은 상황이다. 한국인이 적은 도시에도 '한국'을 표방한 옷가게나 액세서리 가게, 미용실 등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이 직접 운영한다면 우리나라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

세 번째는 사업 투자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다. 여행사를 시작한지 3년쯤 지난 2007년 경 필자에 사업에 조언을 구하는 중국 동포 한 분이 찾아왔다. 몇 번 이야기를 하다가 신분도 명확하고, 주변 배경도 좋은 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동업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 역시 한국에 신경쓰기 바쁜 만큼 중국 측에 좋은 파트너가 있다는 게 나쁠 게 없어서, 중국 부문을 전적으로 그분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름대로 좋은 빌딩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부부가 일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해서 안사람을 회사에서 내보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처음에 동행했던 한국 직원이 동포사장과 한편이 되면서 필자를 비토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동업의지를 잃고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나왔다. 이후 한국 직원은 동포 사장에게 비토되면서 그 사업체는 사실상 끝났다.

이렇든 잘못된 사업 형태는 위기를 부르기도 한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 독자나 합작 등 다양한 형태로 사업을 할 수 있다. 때로는 중국인이 자금을 대고, 한국인이 기술이나 노하우를 출자해 일을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한때 중국 진출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던 하북성 창주의 진화그룹의 이상수 사장은 자신의 패션 쪽 기술을 중국 회사와 접목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으킨 후 한국국제학교를 세우는 등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사업에 성공했더라도 중국 측에서 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쉽지 않아진다. 따라서 중간중간에 자신의 성취를 정리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사람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 때문에 은혜를 입은 이에게 무리하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만의 노하우나 역할이 남아있지 않으면 적정한 선에서 지분이나 대가를 요구한 후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한다.

따리엔에 진출한 한 철강기업의 제조 공정 모습
▲ 중국 진출 한 철강기업의 공장 따리엔에 진출한 한 철강기업의 제조 공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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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경쟁자가 나올 수 있는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해외 교민사회에서 가장 안 좋은 사례가 한국 사람이 성공한 곳에 한국 사람들이 들어가 과잉 경쟁을 한 후 공멸하는 사례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등지에서도 빈번하고 호주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안경 제작 기술은 그다지 좋지 않다. 안경점에 가면 시력측정은 물론이고, 비싼 안경테 가격, 오래 걸리는 렌즈 제작 기간 등으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 상식으로는 오늘 안경렌즈를 맞추고, 다음날 찾으러 오라는 게 맞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런 가게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을 알아차린 우리 안경전문가들은 발빠르게 중국에 진출했다. 2000년대 초반 베이징의 한인타운인 왕징의 안경점은 한국 손님은 물론이고 중국 손님으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주변에 지속적으로 한국 안경가게가 생겼다. 큰 변별력이 없던 시장 상황에서 하나의 파이를 나눠먹으면서 가게들은 더 힘들어졌고, 허가 문제 등이 겹치면서 지금은 안경가게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다. 음식점 등 사업을 하다가 2000년 전후 베이징에 한국식 빵집을 들여온 김천호 사장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공항 음식점 사업 등에 진출해 사업의 세를 넓혔다. 김 사장의 성공이후 한국기업들의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커졌다.

종류도 작고, 서비스도 부족한 중국 빵집에 비해서 한국 빵집은 확실히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시장에 한국 프렌차이즈 빵집이 들어오고, 대만이나 홍콩 브랜드까지 속속 진출하면서 제과시장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김 사장은 자리를 잡은 후 가게를 매각해 고통이 덜했지만 다음에 뛰어든 한국 제과점들은 대부분 무너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다섯 번째는 자신이 선택한 비즈니스의 수명이 얼마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국내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적당히 매각하고 나오는 사업방식처럼 할 것인지, 지긋하게 버티면서 사업을 키워갈 것인지, 아니면 프렌차이즈사업까지 진행할지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중소자본으로 들어왔다면 가능한 먼 시간을 바라보고 장사를 생각하는 게 좋다. 이미 중국을 선택했다면 자신이 중국에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사업을 임해야 한다. 중국에서 성공한 이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했던 것 10분의 1만 한국에서 했으면 성공할 것"이라며 중국사업의 어려움을 말한다.

초반기 사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일이 허다한 것이 중국이다. 수교 초기에 진출에 선양에서 불고기로 성공해 베이징, 톈진 등까지 체인점을 넓힌 '설악산 불고기' 홍 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200평이 넘는 초대형 매장을 30개 넘게 늘린 홍 사장의 사업은 금방 무너졌다. 한 몸으로 재료의 질은 물론이고 서비스 관리를 같이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입맛까지 고려한 불고기지만 레시피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닌 만큼 급속히 사업을 확장하면 안 됐는데 속도를 붙인 게 화근이었다. 결국 물러나기 시작하자 모든 게 부담으로 다가왔고, 무너지는 시간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반면에 돌솥밥으로 체인점 사업에 성공한 정일미의 남 사장은 지속적으로 사업을 늘리고 있다. 1999년 사업을 시작한 정 사장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래시피지만 베이징, 선전, 상하이 등 대도시 중심으로 프렌차이즈 사업을 강화하면서 대박 신화에 성공한 사례다. 그는 중국인 부인에게 재무 등 관리를 맡기고, 음식점 본연에만 치중했다.

3분이면 음식이 나오면서 간단한 반찬까지 있는 한식의 특성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호 등 고급 푸드코너는 물론이고 베이징서역에도 분점을 내는 등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성공해도 언론에 비추는데 반해 남 사장은 교민사회에서 아는 이가 없을 만큼 사업에만 치중했다. 반면에 BBQ나 김가네 등 관리가 약했던 프랜차이즈는 대부분 쓴맛을 봤다.

음식점의 경우 외국인이 흉내내기도 힘들지만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이라는 가치도 있기 때문에 준비 기간을 거친 후 경쟁 상대가 없는 지역은 오래동안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동포들과 어우러져 초반기에 번성했던 랴오닝의 중심도시 선양의 시타(서탑)
▲ 초반기 한국 정착 거리로 유명한 선양 시타 중국 동포들과 어우러져 초반기에 번성했던 랴오닝의 중심도시 선양의 시타(서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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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중국 사업의 타부(Taboo, 금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가령 정보나 안전에 관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PC방 사업이 절정에 달했다. 그런 바람을 타고 중국에 진출하려는 분들이 몇 있었다. 2001년 경 필자의 글을 보고 한분이 톈진에서 PC방을 하고 싶다며 자문을 구했다.

그분이 사업을 하려는 안산시다오 지역은 한국 유학생만 해도 1만여 명에 달하고, 아파트 중심의 지역인 만큼 시장은 충분했다. 하지만 필자는 곧바로 말도 하지 말라고 말렸다. 직접 정보를 다루는 분야는 아니지만 정보가 움직이는 PC방은 중국에서 금기에 가까운 사업이라며 말렸다.

하지만 그 분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얼마 후에 목좋은 모서리에 가게를 오픈했다. 오픈 하기도 힘들었지만 반면에 한 번꼴로 영업정지를 맞다가 결국 1년여 만에 중국인에게 사업을 넘겼다. 이렇듯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업이 있다.

PC방처럼 민간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사업이나 종업원의 서비스 관리 유지가 힘든 분야는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녀 교육 등 주변 문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한국 사람은 외국에 나간다고 해도 한국적 문화를 찾기 마련이다. 특히 자녀 교육은 더욱 그렇다. 중국은 외국인의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와는 근본 구조가 다르다. 따라서 언제든지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교민이 많아 한국국제학교가 있는 지역이라면 어린 자녀 교육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베이징, 상하이, 톈진, 따리엔, 선양, 칭다오 등 8개 지역을 제외한 곳에는 한국 국제학교가 없다. 당연히 현지 중국학교를 보내거나 외국계국제학교를 보내야 한다. 외국계 국제학교는 학비가 학기당 1000만 원 이상이 보통인 만큼 경제적 부담으로 현지 중국학교를 보내기 쉽다. 따라서 아이들의 적응 문제는 초반기 생활의 가장 큰 애로점이 된다. 대도시는 한인 커뮤니티도 있어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반면에 기존에 진출한 한국인은 모두 경쟁상대라는 큰 어려움이 있다.


태그:#중국, #왕징,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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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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