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는 18일 한미 연합 독수리연습이 끝나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이런 기대를 무색하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에 내놓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북한 당국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거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선언 이틀 만에 4차 핵실험을 예고한 데 이어, 3일 만인 지난달 31일 해안포와 방사포 500여 발 중 100여 발을 백령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해상으로 날렸다. 북한은 해상사격 훈련을 사전 통보하기는 했으나, 남한을 자극해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는 분명했다.

북한 관영 언론들의 보도는 포격전 보다 더 뜨겁다. 드레스덴 선언을 전후해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불가능하다"는 박 대통령의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발언에 대해 "방구석 아낙네"(3월 2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북남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정치, 군사적 도발의 진범인도, 반인륜 범죄의 우두머리도 다름 아닌 박근혜"(3월 30일 조선중앙통신)라고 비난한 것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북 매체들, 박 대통령 극심한 인신공격... 무엇이 북을 자극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국빈방문 마지막 날인 3월 28일 오전(현지시간)  작센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 교수. 학생등을  대상으로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 통일 구상 밝히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국빈방문 마지막 날인 3월 28일 오전(현지시간) 작센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 교수. 학생등을 대상으로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조선중앙통신>은 3월 31일 평양 시민들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태로 박 대통령에 개인에 대해 '체신머리 없는 아낙네', '제코도 씻지 못하는 미시리(바보) 같은 X'이라고 여성비하성 인신공격을 가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4월 1일자에 주민들 기고 형태로 '바람쟁이x', '시집이라는 것도 못 가본 부실한 X', '괴벽한 로처녀'라고 하는가 하면,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수준의 욕설까지 담았다.

북한이 수준 이하의 표현까지 쓰면서 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백령도 전단 살포 사건건과 드레스덴 연설문에서 '북한 아이들'과 탈북자 관련 언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우리 군이 백령도에서 대북 전단(삐라)을 살포해 '최고존엄'(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모독했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군이 아니라 민간단체가 한 일이라고 반박했으나, 백령도의 특성상 군의 허가 없이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연설 중간에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북한)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돼 있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이 부분들을 매개로 박 대통령에 대해 집중적인 인식공격을 가했다.

좀 더 넓게 보면 드레스덴이 옛 동독 반체제 운동의 중요거점이었고, 통일 이후 급성장한 '독일식 흡수통일'의 상징도시라는 점도 북한에게는 크게 거슬렸을 대목이었다.

게다가 드레스덴 연설 이후 북한의 대응에 비춰볼 때 북한과의 사전 물밑교감이 없었거나, 사전 교감이 있었다 해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2000년 3월 '베를린 선언을 발표할 때, 하루 전날 판문점을 통해 선언 전문을 북한 측에 건네, '대북 제의'의 모양새를 갖췄고, 이렇게 해서 3개월 뒤 남북정상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

'남북고위급접촉' 동력 사라진 뒤 나온 드레스덴 선언

또 드레스덴 선언이 상호 비방·중상 중단과 이후 접촉 합의를 이끌어낸, 지난 2월 중순 '남북고위급접촉'의 동력이 '백령도 전단 살포 사건' 등으로 다 사라진 시점에서 나왔다는 것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북미관계, 남북관계의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핵 문제도 더욱 악화되고만 있다.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는 네덜란드 헤이그 3자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하는 데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 시절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추동해서 북한에 제기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의 부활이었다.

6일 오전 군 수색조에 의해 강원도 삼척시 청옥산에서 발견된 무인기.
▲ 삼척에서 발견된 무인기 6일 오전 군 수색조에 의해 강원도 삼척시 청옥산에서 발견된 무인기.
ⓒ 국방부 제공

관련사진보기


여기에 '무인기 사건'까지 덮쳤다. 북한제로 추정되는 무인기가 파주(3월 24일)-백령도(3월 31일)-삼척(4월 6일)에서 발견됐고,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의 대처 미숙과 보수 언론의 '오버'가 겹쳐지면서, 대북 강공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후로도 좋은 소식이 들려올 소재는 별로 없다.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도 '대북 압박 공조' 분위기가 뚜렷하다. 오는 25일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해서 북한에 강한 비판을 할 소재들만 쌓이고 있는 형국이다.

무인기 사건까지 겹쳐... 지난해 봄 악순환 재연되나

이 때문에 '북한의 중장거리 로켓 발사→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북한의 4차 핵실험→안보리 추가 대북 제재 결의→북한의 전시 상태 선언'과 같은 지난해 3, 4월의 긴장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그나마 국방위원회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같은 국가기구가 '드레스덴 연설'이나 '통일대박론'에 대해 공식적인 거부입장을 내지 않고 있고,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의 개선을 바란다면 우리에 대한 악랄한 비방 중상을 당장 중지하고 북남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노동신문> 7일자)며 아직도 관계개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고위급 회담을 먼저 제의할 계획은 없다"(통일부 당국자)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태그:#드레스덴 선언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