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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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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얼마 전 세 모녀가 경제적 고통으로 인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중심부를 관통하는 전철 안에서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동안 목적지를 지나쳐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다시 반대편 전철을 타야했지만 출구로 나와 걷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이 보고 싶어졌거든요.

"도대체 돈이 뭘까요? 돈으로 인해 사람은 얼마만큼 파괴될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 앞에 서서 저는 물끄러미 마르크스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물론 대답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사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동상은 원래 하루에도 몇 백 명이 오고가는 베를린의 중심 관광지에 우뚝 서 있다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변방으로 쫓겨난 상태였습니다.

지하철 공사로 인해 동상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었지만 베를린의 도시계획처장은 공개적으로 이 동상을 원래 있던 중심부에 다시 돌려놓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할 정도입니다.

말 그대로 '찬밥신세'가 된 마르크스입니다. 이른바 전 세계에서 '세상을 바꾼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위로 꼽히는 사람의 기념비 치고는 말입니다. 더욱이 도시의 구조물을 쉽게 바꾸지 않는 독일의 특성상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일분단 시절, 동독정부에서 세웠던 커다란 마르크스와 엥겔스동상의 얼굴과 몸뚱이에는 이제 갖은 낙서와 너저분한 스티커들이 붙어있었습니다. 순간 마르크스의 어깨가 초라해 보이는 것은 저만의 착각이었을까요.

부자나라에 속지 마세요

베를린의 홈리스지원센터에 따르면 베를린에는 약 7000명 이상의 홈리스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독일 경제는 유럽국가 중에 가장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데 매년 홈리스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경제성장률'라는 이름의 수치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까지 좋아졌다고 평가 할 순 없나봅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3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4162달러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지요? 앞서 대통령 후보시절엔 당선이 되면 반값대학등록금은 물론 고교무상교육 하겠다고 약속 하셨죠? 그런데 예산안에는 보란 듯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더군요.

이쯤에서 독일무상교육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서 독일은 어떠한지 묻더군요. 독일이 무상교육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부자'라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아니요. 독일의 무상교육을 할 수 있는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독일의 몇몇 주에서는 몇 년 전 대학등록금제도가 되살아났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니더작센주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시위를 하기 시작했죠. 그들이 내야하는 등록금은 학기당 500유로, 한화로 약 73만 원 정도의 돈이었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반값등록금보다 훨씬 싼 액수지요. 결국 작년에 치러진 지방선거 때 등록금을 폐지하겠다는 정당이 당선됨으로써 대학등록금제도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선진국, 부자나라로 꼽히는 독일에서도 차별 없이 누구든 배울 권리는 결코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맞습니다. 무상교육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독일을 바라봤을 때는 마냥 좋아보였던 사회시스템들은 모두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천국' 베를린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서울이 끊임없이 변하듯, 유럽에서 가장 싼 메트로폴리탄,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예술가들과 가난한 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베를린도 이제 변해가고 있습니다.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고, 홈리스들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부자도시가 되기 위한 욕망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결국 국민들의 지혜로운 판단과 선택이 앞으로의 베를린을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제목입니다. 한국에서 계속되는 사회적 타살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니 그의 작품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의 이성은 지금 깨어있는 걸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모녀를 죽음으로 밀어 넣은 괴물이 또 다른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진 않을까요? 우리가 김연아에게 관심을 갖는 만큼,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이제 교육감선거 및 지방선거가 시작됩니다. 아직 우리의 이성은 깨어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입니다.

1848년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지금 베를린에서는 그 유령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 박제되어버렸습니다. 허나 지금 그 유령은 한국을 배회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외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만들어 버리는 종북주의라는 유령이. 선거 때만 되면 활기를 치는 그 '유령'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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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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