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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정숙씨, 아 해보세요!"
"아..."
"목이 부었네요. 주사를 좀 놔드리지요."

열흘에 걸친 독한 감기가 내게서 끝이 날 무렵, 아내가 내 뒤를 이어 받았다. 목은 붓고 온몸은 늘어져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5일째 침대를 등에 메고 살고 있다. 누구는 이 상태를 보곤 지구를 등짐으로 지고 산다고 놀렸다.

'아내가 무슨 시지푸스도 아니고...'

결국 팔에 링거주사를 달고 밤 12시 가까이 되도록 지켜본다. 다 들어가면 간호사실에 알려야 한다.

내 몸 아픈 것도 정말 귀찮고 그깟 감기몸살인데도 열흘쯤 가니 살기가 싫어지던 참이다. 낮에는 좀 덜하다가도 밤만 되면 연달아 기침이 얼마나 나오는지, 천식 환자인 아내의 친구는 기침을 하다가 갈비뼈가 금이 가서 응급차에 실려 입원을 했단다.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목은 따갑고 센 기침에 피가 나오지 않았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도 나는 중증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남편. 에누리가 없다. 여전히 보조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밤새 긴장하고 잔다. 오싹 거리는 몸뚱이와 쑤시는 관절들에 뒤척이면서 버텨야 하는 투명인간 보호자.

몸살도 마음대로 걸리면 안 되는 사람

환자복을 입고도 다시 마스크를 썼다. 본인이 아니라 치료를 돕는 선생님들을 위해서, 이 지경에도 다른 사람의 건강을 배려해야 한다는 게 참. 정작 아주 중요한 일정도 펑크날 것 같아 속상한데.
▲ 너무 심한 목감기 환자복을 입고도 다시 마스크를 썼다. 본인이 아니라 치료를 돕는 선생님들을 위해서, 이 지경에도 다른 사람의 건강을 배려해야 한다는 게 참. 정작 아주 중요한 일정도 펑크날 것 같아 속상한데.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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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몸살이 단단히 나는가보다 / 손가락 마디마다 아프고 / 무릎 어깨 관절부위마다 뼈들이 아프다 / 잠바를 껴입고 / 올려놓았던 이불을 도로 내려 덮어도 / 오싹한 오한이 가지를 않는다.

나는 몸살이 나도 내가 돌봐야한다 / 목이타고 입이 마르는데 물 한잔 가져다줄 사람이 없다 / 아픈 내가 아픈 나를 돌보고 / 나보다 더 먼저 아프고 / 더 많이 아픈 아내를 또 돌봐야 한다 / 휴가도 병가도 줄 수 없고 / 낼 수도 없는 아내와 나

종일 흐리더니 찬바람이 분다 / 기어이 빗방울 몇 개인가가 창문을 스치며 떨어진다 / 차갑다 / 마치 냉장고에서 막 꺼낸 듯 찬 빗방울이 / 나에겐 단 하루도 아프다고 누울 권리가 없다 / 노예도 아닌데 일 년 365일을

오후 치료시간들이 그냥 지나가고 있다 / 높은 침대와 반토막 보조침대에 누운 채 / 시체놀이에 빠진 듯 일어나지 못하는 / 우리 두 사람을 비웃듯 통과하며

(감기몸살에 걸린 채 썼던 글)

아내는 누운 지 3일 만에 머리감느라 잠깐 일어나고, 5일 만에 이 악물고 치료실에 가 30분을 버티더니 다시 쓰러졌다.

'큰일이네,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빨리 회복이 안 되면 어쩌지? 약속을 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픈 아내를 팽개치고 갈 수도 없고...'

3월 6일 국내에 개봉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라는 영화가 있다. 2013년 7월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탔고, 오는 3월 3일 발표하는 아카데미 오스카상에도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많은 기대를 받는 영화다. 에이즈에 걸린 한 남자가 30일 시한부를 선보받고도 이런 저런 삶의 애착으로 7년을 더 살아내는, 그러면서 변화를 경험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런데 영화 홍보사가 우리 부부를 시사회에 초대했다. 내가 쓴 책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가 비슷한 투병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공감할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시사회 참석자들과 희망 나눔을 해보자고 한다. 이날 GV(guest visit) 토크진행은 17년이라는 기록적인 방송을 해온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 신지혜씨가 맡는단다. 그는 어느 해인가 방송대상 아나운서 부분을 수상했고 2년 전인가 '땡큐 포 더 무비'라는 책도 냈다.

전국 개봉일인 3월 6일 이전인 3월 4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시사회를 한다기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런데 동행할 예정이었던 아내가 병이 나버렸다. 원래 환자였지만 더 깊고 낮은 상태로의 추락. 지금으로는 갈 수 있을지조차 예측 불가능이다. 아예 불가능했으면 약속도 안 했을 것이고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속이 상한다.

내일이 있는 이유, 살아봐야 아는 것들 때문에

사람은 살아보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일이 오는지도 모른다. 살아보고 나서 느끼고 경험하라고, 머리로 지식으론 백날 말해도 진실이 될 수 없는 어떤 말들을 살아본 경험은 완성을 시킨다. 마치 흙으로 주물러 만든 신체에 생명의 바람을 훅! 하고 불어넣으신 신의 기운처럼.

내겐 그래서 내일이 참 소중하다. 많이 고맙기도 하다. 오늘 힘들고 서운하고 못다 한 아쉬움들과, 또 누구에겐가 미안한 것들,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친 거야? 그것도 나만...' 하는 원망을 다 담아 놓을 수 있는 상자가 바로 '내일'이기 때문이다. 그 내일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의 모든 아픔 상처 원망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고 장렬히 무너졌을 거다.

처음에 섭외전화를 받았을 때,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몇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했기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나는 텍사스의 론(매튜 메커너히 분)이 30일, 불과 한 달이라는 시한부선고를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이 후 7년을 살았지만.

내 아내도 국내 최고 병원에서 치료불가능, 회복 불가능이라는 선고를 받았었다. 거듭되는 재발로 목도 가누지 못하는 전신마비 상태가 됐다.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게 병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주었다. 아내도 7년째 되면서 오히려 좀 좋아졌고 장애1급에서 과정이 어찌되었던 5급까지 내려갔다.

단지 7년이라는 생존의 연장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7년을 살 거라고 보장해주지 않았고, 사실 하루하루 연장된 삶이 7년이 되었을 뿐이다. 다만 내일이 그리웠고, 오늘 힘든 일을 내일에 넘기면서 보낸 덕분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음식이나 돈다발 같이 불로소득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곤혹스러울 수도 있는 선택과 만남을 견뎌내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영화 속의 론도, 아내와 나도!

사람의 일생은 선택의 연속, 버림의 결과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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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많이 공감한 점은, 원하지 않는 선택이 내 앞에 오고, 그 선택의 갈림길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오는 만남을 소화하며 산다는 동질감이었다. 사람의 일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영화 속의 론은 처음에는 그다지 남에겐 유익한 인간은 아니었다. 마약에 섹스에 자기 하고 싶은 데로만 하고 사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점점 자신의 바람이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계속 몰렸다. 에이즈 진단을 받을 때도 억울해 했고, 원하지 않는 게이 친구들을 만나야 할때도 그랬다. 내 아내도 원치도 않았고 어떤 행동의 결과도 아니었는데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았고 사지에 몰렸다. 세상은 가끔 그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엉뚱한 갈림길을 툭 던져놓고 '죽을래? 살래?' 하고 선택을 강요한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묻지 않아도 '긍정적으로 받을 겨, 비관적으로 받을 겨?' 라고 묻는 게 그런 거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루 중에도 무지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 작게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의 선택에서부터 크게는 죽을 수도 있는 일을 알면서도 선택하기도 하고, 죽기 싫어서 안전한 일만 골라서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 일 년, 평생을 사는 동안 끝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대면한다. 그런데 그 선택들은 늘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버림으로만 성립이 된다. 하나, 또는 여러 가지를 버림으로만 이루어지는 결과.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때론 선택이 된다.

론의 병을 아는 친구들은 감염이 무서워서 떠나가고, 나쁜 생활로 병을 얻었다고 비난하면서 떠나갔다. 그리고 론의 주변으로는 그가 싫어했던 게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에게 에이즈 약을 팔며 거래를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론이 자신의 차를 팔고 돈까지 보태주면서 게이들의 에이즈 회복을 돕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자리로까지 간다.

하루는 선택의 현장, 이 순간도 그 길 위에 있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몰리면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왜 하필 내게, 도대체 무슨 죄로!'라고, 그리고 나면 그 다음의 질문이 또 따라온다. '어떻게 하지? 어찌하든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질문. 그 주어진 한정된 선택의 갈림길에서 론도 우리도, 모든 사람들도 계속 결정을 해간다. 덜 나쁜 쪽으로, 그리고 그나마 맘 편한 쪽으로.

'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지?' 론은 자기가 싫어하던 게이들에게 치료약을 팔면서 자기의 위치, 자기의 모습이 한심스러워 그렇게 한숨을 쉰다. 이후 계속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서서히 론은 변해 간다. 만남과 만남, 순간마다 오는 선택과 선택을 통해서! 그 과정이 좋아서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감동을 주는 것 같다(물론 그 선택들이 론과 달리 다른 길을 가는 제약회사 집단과 편견을 가진 사람들, 정부에게는 성가신 대상이 되고 골치 아프게 했지만!).

주연배우 매튜가 에이즈 걸린 론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22kg가 넘는 체중을 감량했다. 아내도 한 때 15kg 이상 살이 빠져서 42kg 정도로 거의 뼈와 피부만 남았던 시기가 있었다. 아내는 에이즈가 아니지만 계속되는 구토와 통증으로 바닥까지 갔을 때 그랬다. 포스터의 사진을 통해 본 론의 모습이 아픈 추억을 끄집어냈다.

3월 4일 저녁 7시, 부디 충무로 대한극장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시사회장에 우리가 들어가서 앉아 있기를 빌어본다. 그것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고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바깥에 달려 있다는 새삼스러운 처지를 확인한다. 언제쯤 자기결정으로 당연한 듯 움직이는 삶을 우리도 살아볼 수 있을까?


태그:#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GV 시사회,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시한부 투병, #희귀난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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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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