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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8년간의 연애 끝에 남자친구 '곰씨'와 결혼식을 했습니다. 신부와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결혼식,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제가 꿈꾸던 결혼식인데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요? 그 마지막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 기자말

결혼식 날 아침은 전화벨 소리로 시작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어, 아직 차 안 왔나. 좀 있으면 올끼다. 아이고, 아침부터 고생이네."

결혼식은 오후 1시. 부산에서 오는 하객들은 새벽 6시도 안 돼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산에 있는 친구들에게서도 전세버스를 탔다는 문자가 왔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오전 8시. 택시를 타고 메이크업 카페에 도착했다. 보통 결혼식 날 미용실에 가면 그날 결혼할 신부들로 가득하다던데, 내가 알아본 곳은 한 번에 한 팀씩만 받는 곳이라 여유롭게 메이크업을 할 수 있었다. 셀프 웨딩 메이크업을 주로 하는 곳이라 가격도 저렴한 편.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엄마와 나는 단장에 들어갔다. 그 사이 곰씨는 회사 근처 꽃가게에 화관과 부케를 받으러 갔다.

웨딩드레스 입고 종종 거리며 뛰어다니는 신부

오전 10시 30분, 회사 동기 오빠가 차를 가지고 카페로 왔다. 신부 화장, 웨딩드레스, 베일, 화관…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동기 오빠를 마주하니 참 민망했다. 한복을 입은 엄마와 함께 오빠 차에 올라탔다. 이 시커먼 차를 타고 동기들과 여기저기 정말 많이 놀러 다녔는데, 이게 내 웨딩카가 될 줄이야.

수다를 떨다 옆을 바라보니 전세버스가 보인다. 부산에서 온… 우리 버스다. 맙소사. 하객들이랑 같이 도착한 거다. 결혼식이 한 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어, 그런데 아침에 마신 커피 때문인가. 화장실이 급하다.

우리가 결혼한 국립중앙도서관. 대관료도 저렴하고, 무료로 해준 꽃 장식도 예뻤다. 무엇보다 일반 웨딩홀처럼 이것저것 강요하는 것이 없어서 좋았다.
 우리가 결혼한 국립중앙도서관. 대관료도 저렴하고, 무료로 해준 꽃 장식도 예뻤다. 무엇보다 일반 웨딩홀처럼 이것저것 강요하는 것이 없어서 좋았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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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전세버스가 주차장을 잘못 찾는 바람에 시간을 벌었다. 결혼식장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 입구에 도착하니, 초등학교 친구가 남편과 함께 아들을 데리고 와있다. 내 친구 중 가장 먼저 결혼한 녀석이다.

"야, 니 와 이래 빨리 왔노."
"니가 빨리 오라매."
"내 화장실 급하다. 지금 하객들 온다. 빨리 가자."

그렇게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친구와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친구의 세 살 아들도 같이. 폭이 좁은 A라인 드레스라 망정이지, 일반적인 웨딩드레스였으면… 아찔하다. 

원래 계획은 일찍 와서 곰씨랑 미리 행진도 해보고, 축가도 맞춰보고, 사진 놓는 탁자도 정리해 놓고, 방명록도 꾸며놓으려고 했다. 웨딩홀이 아니고 소위 말하는 '헬퍼 이모'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걸 우리 스스로 해야 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부산에서 온 하객들이 정문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할 일이 많은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때부터 나는 드레스를 입고 종종 거리며 뛰어다녀야 했다. 역시 드레스 선택을 잘 했어(관련 기사 : 12만9천원 웨딩드레스, 결혼 한 달 전에 그만...)

곰씨와 내가 만든 웨딩 포토 테이블. 사진은 곰씨 친구가 찍어줬다.
 곰씨와 내가 만든 웨딩 포토 테이블. 사진은 곰씨 친구가 찍어줬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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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나는 신부 대기실에 들어가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베일'에 싸여있는 게 아니라, 곰씨와 나란히 서서 하객들과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신부가 결혼식장 앞에 떡하니 서 있자, 어느새 하객들이 내 주위에 큰 원을 그리며 모여 들었다. 친구들은 나를 대기실로 이끌며 "제발 좀 들어가라"고 성화였다.

대기실에 들어가니 사진, 사진, 또 사진이었다. 평소에도 잘 웃는 편인데 그날은 몇 년치를 하루에 다 웃은 것 같다. 이날 사진은 회사 사진팀 선배와 친구들이 찍어 주었다.

실제로 기쁘기도 했다. 결혼식 전날 '결혼식 못 가서 미안하다'는 문자가 별로 없기에, 연락도 없이 안 오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와주었다. 결혼식 날 누가 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는데 나는 한 명, 한 명 다 기억이 난다.

"밤 하늘의 별을 따서 너의 앞길을 비춰주고 싶다..." 아빠의 편지

축가 리허설 하는 나와 곰씨.
 축가 리허설 하는 나와 곰씨.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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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후 1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아빠와 곰씨 아버지, 엄마와 곰씨 어머니. 그리고 나와 곰씨 차례로 입장했다. 스티비 원더의 'My Cherie Amour'가 울려 퍼지고, 오른발이 먼저 나가야 할지, 왼발이 먼저 나가야 할지, 드레스가 끌리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아버님이 하객 여러분께 드리는 인사말을 했고, 이어 나와 곰씨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정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곰씨 편지를 들으면서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처음에는 결혼도 하지 않는다고 했던 네가. '너니까 그래도 결혼하는 거야' 했던 거, 나는 정말 눈물 나게 고맙고 감동이었어. 결혼으로 인해서 네가 원하지 않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을 거야. 네가 힘들어하는 거 다 알아줄게. 또 보상도 해줄게.,,(중략)..."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택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로 인해 온전한 '나'로 살 수 없게 될까봐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곰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 곰씨의 편지 속에서 그 진심이 전해졌다.

눈물이 계속 흐르자, 하객석 맨 앞줄에 앉아있던 큰 엄마가 친구에게 노란 손수건을 건네주는 게 보였다. 나는 손짓을 해서 친구를 불렀다. 결국 친구는 결혼식 도중 몇 번이나 연단 위로 올라와 내 눈물을 닦아줘야 했다(다른 결혼식 가보니, 신부가 울 때는 헬퍼 이모가 화장을 바로 잡아 주더라).

내가 곰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두 사람이 함께 우리가 직접 쓴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어 아빠가 축사를 했다. 

"어느새 높아진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만산은 홍엽으로 붉게 물들어 계절의 정취를 더해주는데, 소중한 너의 결혼식을 하게 되어 더없이 기쁘구나. 많은 시간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너희 두 사람의 결혼식을, 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의 앞길을 비춰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너의 결혼식을 축하해…(중략)…

또 이 자리를 빌려서 몇 가지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에게 칭찬도 격려도 너무 인색했던 것 새삼 미안하게 생각해. 너는 항상 엄마 아빠에게 과분한 딸이었고 항상 고맙게 생각해…(중략)…

아빠와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이 싸웠다. 엄마 말로는 우리 둘 다 '불'과 '불'이라서 그렇단다. 고집 세고 성격도 다혈질이고 애정 표현도 잘 못한다. 대학 입학 이후 떨어져 살면서 일 년에 통화도 몇 번 할까 말까. 얼마 전 축사 때문에 통화할 때는 아빠에게 "3분 이내로 해라. 길면 사람들 싫어한다"고 통보하듯 말했었다. 아빠는 "어떻게 3분 안에 다 읽노. 2장이나 썼는데"라며 서운해 했고, '그럼 중간 중간 빼고 읽고, 나중에 편지를 주는 걸로 하자'고 합의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아빠는 어느덧 편지 2장을 다 읽고 읽었다. 엄마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나는 계속 눈물이 났다. '즐거운 결혼식'이 목표였는데, 하객석을 보니 친구들도 울고 있었다. '반전'은 마지막에 나왔다.

"이건 또 다른 욕심일지 모르지만 너희 아기도 빨리 태어났으면 좋겠어. 손주도 안아보고, 너의 옛날 모습처럼 예쁜 귀여운 손녀와 놀아도 주고, 너를 키울 때처럼 잘 해줄 수 있어. 느낌 아니까~"

하객석에서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여름, 곰씨와 부산을 찾았을 때 아빠는 "손주도 부모가 능력이 돼야 바랄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키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얘도 직장생활 해야 하는데 어떻게 손주를 무작정 바랄 수 있겠냐"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아빠 속마음은 이랬구나.

이어서 축가. 남동생이 정인의 <오르막길>을 불렀고, 곰씨와 내가 데이 브레이크의 <좋다>를 열창했다. 하객들이 동영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날 준비한 안무는 생략했다. 동기가 만들어준 영상에는 나와 곰씨가 함께 보낸 8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하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언제 울었느냐는 듯, 나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신나게 노래했다(한 선배는 "울다가 웃다가 30분 안에 모든 것을 하는 신부가 인상적"이었다고).

결혼식 마지막 배경 음악은 페퍼톤스의 'Ready and get set go'. 곰씨가 나를 보며 "달릴까?"라고 말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다시 걸어 나갔다. 

하나하나 우리 손으로 직접... 조금 달라도 괜찮아

결혼식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물론 '결혼식 별로였다'고 직접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어른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우리는 폐백을 하지 않고, 바로 하객들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결혼식 많이 가봤지만, 끝까지 본 건 처음"이라는 분도 계셨다. 역시 어른들도 '보통의 결혼식'이 지겨웠던 걸까.

특별히 준비한 방명록. 커다란 우드지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하객들에게 하고픈 말을 적어달라고 했다.
 특별히 준비한 방명록. 커다란 우드지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하객들에게 하고픈 말을 적어달라고 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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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씨 사촌동생이 남긴 글.
 곰씨 사촌동생이 남긴 글.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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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가 남긴 글. 이날 나는 화관에 베일을 써서 '이효리 코스프레 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빡빡이 곰씨는 브루스 윌리스가 되었다.
 대학 친구가 남긴 글. 이날 나는 화관에 베일을 써서 '이효리 코스프레 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빡빡이 곰씨는 브루스 윌리스가 되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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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다들 아빠 편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나는 신랑 측에 앉아서 계속 울었잖아. 사연 있는 여자처럼."

가장 걱정했던 식사도 별 문제 없이 진행됐다. 친구들은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도 많이 했는데 잘 끝나서 다행"이라며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었다.

지난해 봄,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연재를 시작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처음 꿈꿨던 '작은 결혼식'은 물 건너갔지만, '남들처럼'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업체의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고 하나 하나 직접, 혹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다보니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이 컸다(관련 기사 : "일생에 단 한 번뿐인데"... 예비신부는 '봉'이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조금 다르게 결혼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와 곰씨의 프로젝트가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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