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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더 큰 '연말정산 세금폭탄'이 몰려온다"
"세수확보 불똥... '월급쟁이만 봉' 불만의 목소리"

지난 17일 아침 인터넷 포털에 오른 기사 제목이다. 기사의 제목을 연결해보면 '세금은 폭탄이 돼 날아오는데, 그 폭탄은 영점 조준이 너무나 확실해 늘상 월급쟁이만 폭격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는 2013년도에도 16조 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어디에 또 삽질을 하느라 빵꾸를 냈냐'고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물어볼 생각은 없다. 아니, 생각이 있어도 할 수가 없다. 어딜 감히! 국가가 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내란음모의 소지가 있으므로 자기검열이 필요한 게다.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세금도 국민에게서 나온다. 뭐, 국민에게 주권이 있기는 한 건지 아리송하지만, 세금을 거둬간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고로, 국가의 적자는 국민이 메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세금은 주로 '만만한' 국민들에게서 거둬갈 것이다. 빚더미 왕국의 가난한 소작농, 바로 이게 우리의 현실인 셈이다.

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시작한 글이 너무 거창하게 흘러가고 있다. 나라가 적자를 내던, 세금 폭탄이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이던, 소시민인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책 한 권을 소개받았다. 요약본을 읽고,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다시 정본을 사서 읽고 있다.

소개받은 책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다. 전문가들이나 경제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책이란다. 하지만, 내 근처에 사는, 소위 '먹고 살기 바쁜 소시민들' 중에는 이 책을 모르는 이가 많아서 이 기사를 통해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혹자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 그리 쉽지는 않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 이해한 수준에서 하는 소개니까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진보와 빈곤의 완역판. 책이 좀 두꺼워서 선뜻 읽기가 망설여지지만 내용 자체는 큰 어려움 없이 읽을만한 수준이다.
▲ 진보와 빈곤 정본(비봉출판사) 진보와 빈곤의 완역판. 책이 좀 두꺼워서 선뜻 읽기가 망설여지지만 내용 자체는 큰 어려움 없이 읽을만한 수준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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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글 서두에 인용한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자. 기사의 결론은 '연말정산이니 뭐니 결국 세금을 확실히 내야하는 계층은 월급쟁이들이니 단단히 준비하시라' 그리고 '형평성에 맞게 자영업자와 고소득 전문직들에게도 폭탄을 투하하라', 대강 이런 식이다. 이런 기사는 연말 정산의 시즌이 되면 거의 매년,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문장으로 생산된다.

월급쟁이·자영업자·고소득 전문직 등 모두 세금을 내야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일을 하고 그에 따른 소득이 생기고, 그 소득의 차이에 따라 세금의 양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도 상식이다(우리가 어렵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내는 세금을 근로소득세라고 한다). 하지만 왜 '세금 폭탄'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만 겨냥하고, 일 안하고 돈 버는 불로소득자들은 피해가는 걸까? 그 반대가 돼야 하는 것 아닐까. <진보와 빈곤> 속에는 그에 대한 답이 있다.

1998년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토지가격 상승에 의한 불로소득중에서 세금으로 징수된 총액은 전체 소득액인 2001조 원 중에 6%에 불과한 116조 원에 불과하다(자료출처, 최진기의 경제학 강의 중 헨리 조지 편). 가만히 앉아서 땅값이 올라서 번 돈 중에 겨우 6%만 세금을 냈다는 이야기다.

여담이지만 그 기간 중에 우리 집은 9900원짜리 순살치킨 가게를 했다. 물론 안 되는 집이 항상 그렇듯이 조류독감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빚만 지고 문을 닫기는 했지만, 내 대학 등록금의 절반 가까이를 순살로 튀겨진 닭들에게 의존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1년 내내 열심히 치킨을 튀겨서 번 돈으로 낸 세금이, 건물주가 땅 짚고 헤엄쳐서 번 돈에서 낸 세금보다 많다면? 생닭이 일어나서 웃다가 알을 낳을 만한 소리다.

'우리가 가진 좋은 것으로서 탐구와 투쟁과 사랑이 담긴 희생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라는 문구가 와닿는다.
▲ 진보와 빈곤 책머리에 '우리가 가진 좋은 것으로서 탐구와 투쟁과 사랑이 담긴 희생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라는 문구가 와닿는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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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에 대해 소개를 받고, 그의 책 <진보와 빈곤>을 읽고, 관련된 동영상 강의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열심히 일해서 뭐하나?'였다. 어차피 폭탄이 떨어지는 지역은 이미 정해져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폭탄의 규모는 점점 늘어난다. 언제까지 우리는 그것을 몸으로 떼워야 하나, 자괴감과 분노가 고개를 든다.

이쯤해서 <진보와 빈곤>의 내용을 간단히 언급해본다. 이 책은 '물질적 진보가 이뤄진 사회에서 경제적 빈곤이 동시에 나타나는 진정한 원인은 생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 땅주인(혹은 건물주)이 토지의 가치를 차지하는 토지사유제에 있다'고 지적한다. 물질적 진보와 동시에 지대(임대료)의 절대 총액이 증가하므로 생산의 증가에 따른 혜택이 노동(임금)과 자본(이자)에 돌아갈 수 없다. <진보와 빈곤>은 현재의 토지사유제 아래에서는 '토지 투기로 인해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화되니 지대 조세제(단일세)를 통해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헨리 조지의 토지에 대한 '단일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입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주장들에 대한 논쟁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자. 하지만 경제 지식이 빈약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헨리 조지의 이론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보인다.

땅주인과 소작농의 관계로 한번 살펴 보자. 소작농은 열심히 농사 지어 번 1000원 중의 500원을 소작료(지대)로 지불하고 남은 500원 중에서 100원을 세금으로 낸다. 땅주인은 소작료로 받은 500원에서 6%, 즉 30원을 세금으로 낸다면? 이것은 분명 문제 아닐까. 그런데도 이런 현대판 소작제도는 우리 앞에 보란듯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와 빈곤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일종의 해설판이다. 일단 두께가 얇고 핵심 이론을 풀어서 설명하므로 누구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 진보와 빈곤 축약판(비봉) 진보와 빈곤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일종의 해설판이다. 일단 두께가 얇고 핵심 이론을 풀어서 설명하므로 누구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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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지출을 많이 하면 그에 대한 아래 계층의 수입은 늘어나므로 사회전체의 경기 상황은 호전된다는 '낙수효과 이론'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부자라고 하루에 다섯 끼 씩 먹고, 옷은 열 벌씩 껴입고 다니란 말인가? 설령 그렇다 한들 국가 전체의 구성원들이 불과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그들의 지출에만 목매고 있어야 할까.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말은 '부자들이 던져주는 고깃덩어리가 늘어나도록 그들에게 고기를 더 많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럼에도 낙수효과를 울부짖는 그들에게 이 책 <진보와 빈곤>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제발 세금에 낙수효과를 적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지가 상승과 임대료로 얻은 불로 소득에 대해서 많은 세금을 내도록하면, 허리 휘게 일해서 번 돈으로 세금을 내야하는 근로소득세는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러면 그에 따른 가계의 소득은 증가되는 것이다.

어떠한 국가에서도 불로소득자들에게 소비 자체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로 소득에 대한 세금은 강요할 수 있다. 일하지 않고 얻은 지가 상승에 대한 소득과 임대료 수입에 대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헨리 조지 이론의 핵심이다.

이제는 세금 폭탄의 포구의 방향을 수정할 때다. 늘상 퍼붓던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더 쥐어짜기 위해 폭탄의 규모를 키우려들지 말고, 투하 지점의 좌표를 수정하라. 부모 잘 만나 혹은 고급 정보의 독점으로 졸지에 땅부자가 된 그들에게 포문을 열기 바란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은 세금의 계절에 딱 어울리는 고전이다.


진보와 빈곤

헨리 죠지 지음, 김윤상 옮김, 비봉출판사(1997)


태그:#헨리조지, #진보와 빈곤, #세금폭탄, #불로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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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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