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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역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에는 우리 민족의 전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역사를 찾아서 '강화나들길'이 갑니다. 저는 강화에 산 지 16년이 되었고 나들길을 걸은 지도 5년이 넘었습니다. 저와 함께 '강화나들길'을 걸으면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을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 기자 말

제주도를 생각하면 올레길이 떠오르고 지리산은 둘레길로 연상되며, 강화도 하면 금방 나들길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걷기 마니아다. 그들은 두 발로 우리나라와 연애하는 사람들이다. 일상을 벗어나서 자연 속으로 스며 들어간 그들은 이제 전국의 어지간한 길은 다 섭렵했다. 그런 그들이 즐겨 찾는 길이 있으니 '강화나들길'. 바로 그 길이다.

몇 년 전부터 걷기 열풍이 불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앞을 다투어 걷기에 좋은 길을 개발했다. '강화나들길'도 그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여타의 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길의 시작이 백 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100년의 역사, 강화나들길

한 선비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예순이 넘었다. 장수시대인 지금에야 예순 살이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백 년 전 그때는 노인 중에서도 상노인이었으리라. 그런 그가 길을 나섰다.

 갯벌과 함께 걷는 강화나들길 8코스.
 갯벌과 함께 걷는 강화나들길 8코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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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봄이었다. 선비는 단출하게 행장을 꾸려 나귀 등에 몸에 실었다.

斗頭我步帶春風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
一府山川兩眼中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 눈에 들어오네.
明月綠楊諸具榻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 구(具)씨 탁상에서
滿杯麯味使人雄     잔 가득한 술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1846-1916)은 과거에 급제는 하였지만, 벼슬길에 나서지는 않은 선비였다. 그는 당시 강화군의 17개면 100여 마을을 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두루 다 돌아보고 그 감상을 256편의 시와 산문으로 남겼다. 자신이 사는 두두미마을을 시작으로 해서 노정(路程)의 순서대로 글을 썼으니 '심도기행(沁都記行)'이 바로 그것이다. 

병오년(1906년) 봄에 선비는 길을 나섰다. 친구인 구(具)씨가 장도를 빌며 권하는 술을 몇 잔 마신 뒤에 불은면 두두미마을에서 선원면 쪽으로 길을 잡았다. 두두미마을(斗頭尾洞)은 강화부 관아로부터 남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지금의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가 두두미마을이다.

 길을 안내해주는 강화나들길 리본입니다.
 길을 안내해주는 강화나들길 리본입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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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었다. 1905년에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은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맺은 조약이었다. 그로써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스스로 교섭할 수 없었으니,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화남 선비의 심도기행을 따라서

또 외래 문명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오면서 우리 전래의 고유 풍속들이 점차 훼손되고 있었던 것 역시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이었다. 그런 암울한 시대에 화남 선비는 자신이 사는 고장을 두루 살펴봤다. 자신이 깃들어 사는 고장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그리하였을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하였을지도 모른다.

'강화나들길'은 심도기행에서 출발했다. 2005년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화남 고재형 선비의 '심도기행'을 강독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선비가 나귀를 타고 다녔던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강화나들길을 있게 한 시초였다.

심도(沁都)는 강화의 옛 지명이다.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로 온 고려 무신정권은 39년 동안 난리를 피해 강화에서 살았다. 그때 강화의 인구는 삼십만 명이 넘었고 개경의 궁궐을 본떠서 강화에도 궁궐을 지었다. 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으며 부처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 조판도 시작했다.

 강화나들길 1코스에 있는 연미정입니다.
 강화나들길 1코스에 있는 연미정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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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도(都)'는 39년간 한 나라의 도읍이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강화도 사람들은 강화가 한때 나라의 수도였음을 상기하며 지금도 강화를 강도(江都)라고 부르기도 하며 강화가 심도였음을 잊지 않는다. 

강화나들길 1코스의 이름은 '심도문화 역사길'이다. 이름 그대로 강화의 문화와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강화터미널에서 출발해서 갑곶돈대에서 끝나는 이 길은 약 18km의 길이며 소요 시간은 휴식 시간과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약 6시간 가까이 걸린다. 

이외에도 강화 동쪽 해안에 설치된 돈대를 따라 걷는 '호국돈대길'을 비롯해서 고려 왕릉을 보러 가는 '능묘 가는 길', 또 갯벌과 철새를 보러 가는 길 및 강화도령 첫사랑길, 고인돌을 만나러 가는 길 등 14개의 나들길이 길꾼들을 유혹한다. 또 강화본섬에 딸려있는 석모도와 교동도 그리고 주문도와 볼음도를 걷는 6개의 나들길이 더 있다. 이렇게 해서 현재 강화나들길은 총 20개의 길이 있으며, 앞으로도 좋은 길이 더 개발될 것이다.

강화나들길 1코스는 철종 임금의 잠저인 용흥궁과 또 고려 시대의 궁궐터,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성당인 강화성공회 성당 및 강화산성의 북문을 지나간다. 그리고 정묘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맺은 연미정까지 걸어가면 대개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연미정은 강화에서 풍광이 아름답기로 옛 부터 소문이 난 곳인데 요즘 사람들에게는 북한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연미정을 출발해서 갑곶돈대를 향해 길을 나선다. 갑곶돈대는 강화읍 갑곶리에 있는 돈대로써 강화의 관문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강화는 한양으로 들어서는 들머리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강화 바닷가를 따라서 수많은 군사시설을 만들었으니 갑곶돈대도 그 중의 하나다.

역사와 함께 걷는 '강화나들길'

 강화군 송해면과 양사면에서는 강 건너 북한이 빤히 바라보입니다.
 강화군 송해면과 양사면에서는 강 건너 북한이 빤히 바라보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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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란 10~ 20명 정도의 소대 병력의 군사가 주둔하는 초소라고 볼 수 있다. 적의 출몰을 감시하기 좋은 높은 위치에 돈대가 있다.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강화에는 내성, 외성, 12진보, 53돈대 등을 축조, 설치하였다. 이로써 강화도는 이중, 삼중으로 요새화가 이루어졌다.

갑곶돈대 옆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강화 사람들이 '갑고지 나루'라고 부르는 갑곶나루는 조선 시대에 한양과 강화를 오가던 길목이었다. 정묘호란(1627) 때 인조 임금이 난리를 피해 건너왔던 나루였으며 병인양요(1866) 때는 프랑스군이 갑곶나루로 들어와서 고려궁지 안에 있던 외규장각의 의궤들을 약탈해 간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를 지닌 갑곶나루도 강화대교가 놓이면서 역사의 저 너머로 물러났다.

그 외에도 강화나들길 1코스는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발걸음을 한 자국씩 옮길 때마다 스며있는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씩 만난다. '심도역사 문화길'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면서 숱한 사연들을 안고 있는 길이다.

두두미마을의 한 선비가 봄날에 나귀 등에 앉아 주유산천을 한 게 강화나들길의 전신이었듯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내일의 우리 후손들에게는 전범(典範)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강화나들길'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본문 중의 한시는 인천대학교의 '인천학연구원'에서 펴낸 '심도기행'에서 가져왔습니다. '심도기행'은 1906년 고재형 선비가 쓴 기행문집인데, 현 안양대학교 교수이신 김형우 선생님과 강신엽 선생님이 2008년에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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