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6일부터 21일까지 16일 동안 전남·광주 교직원들의 산행 모임인 '풀꽃산악회'의 주관으로 22명(혜초여행사 인솔자 1명 포함)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칼라파타르 트레킹'을 다녀왔다. 영혼이 성숙한 느낌이다. 5일부터 21일까지 17회에 걸쳐 날짜에 따라 산행기를 쓴다. - 기자말[1월 16일] 히말라야에서 홍어를 먹다페리체(4240m) - 소마레(4010m) - 팡보체(3930m) - 드보체(3820m) - 텡보체(3860m) - 풍기텡가(3250m) - 남체바자르(3440m)술을 많이 마신 뒷날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몸이 말끔하고 개운하다. 두통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16일은 19km를 움직여야 해서 오전 5시 30분에 산행도우미가 문을 두드리며 차를 권했다. 차를 마시고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니 침낭에 누워있는 시간을 더 즐겼다.
일어나서 침낭을 구겨 넣으며 생각했다. 내가 평소에는 아주 작은 부피로 웅크리고 있다가 도구로 쓰일 때는 본래의 크기로 돌아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침낭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히말리아의 밤은 침낭을 피부처럼 살갑게 만든다. 네팔 현지에서 빌리는 침낭은 크기에 비해 성능과 열효율성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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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소마레 트레커 롣지에 있는 말. 히말리아에서 말은 아주 빠른 이동 수단이다. 등반객들이 하산할 때 이용한다. |
| ⓒ 최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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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30분에 출발했다. 검은 바위에 흰 눈을 쓴 설산을 가까이서 바로 대하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 물은 반드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계곡을 따라 가는 길은 해발고도를 계속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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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판 엄홍길 휴먼 스쿨로 가는 길의 방향과 시간을 알리는 표지. 현지인과 학생들은 이 알림판이 필요하지 않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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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학교에서 본 스투파, 텡보체(가운데 왼쪽), 누플라(Nupla. 5,885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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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팡보체에 있는 '엄홍길휴먼스쿨'에 들렀다. 전망이 아주 뛰어나고 이곳에서는 비교적 좋은 시설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언제나 학교가 있다. 여러 곳에서 기부를 받아 2010년에 완공됐다.
학교 초입에 크게 자리 잡은 기부자들의 동판은 한동안 우리나라 모든 초등학교에 설치되었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처럼 생경하다. 방학인지 학교에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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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죱교 죱교는 3 년을 키우면 짐을 나를 수 있다. 짐을 나르는데 쓰이는 좁교는 전부 거세된 수컷으로 암컷은 태어나며 바로 도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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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디보체 파라다이스 로지에서 차를 마셨다. 정오승씨가 카트만두에서 2년 동안 있었을 때, 고용된 네팔 현지인이 휴가로 25일을 요구했다. 어이가 없어 다른 사람에서 물어보니 그 사람의 고향은 온종일 버스를 타고 가서 일주일을 걸어가야 하니 오가는 일정과 집에 머무를 시간을 생각하면 적당한 일수라는 말이 돌아왔단다.
"우리나라라면 벌써 터널을 뚫고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길을 닦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차가 아니라 걸어야 하는 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히말리아를 찾는 게 아닐까? 자연은 사람이 손대지 않은 존재 그 자체로 최상의 의의를 갖는다.
이번 여행 인솔자인 정오승씨는 언제나 자외선 차단제를 세심하게 바르고 햇살이 있는 곳에서는 양산을 펴고 산행을 한다. 이것은 산행에 대한 풍부한 경험, 응급상황에서 바로 처치할 수 있는 지식, 전체를 통솔하는 데 필요한 영민한 판단력과 카리스마에서 오는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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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리콥터 히말리아에서 헬리콥터는 위급한 상황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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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때로는 한 그루의 나무가 온 우주를 버티고 있는 경우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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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보체에서 텡보체까지 가는 길. 밀가루보다 고운 흙먼지가 신발을 덮는다. 앞서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될 만큼 먼지가 많이 날린다. 텡보체에서는 에베레스트 산군과 주변 설산들의 위용을 잘 볼 수 있다. 텡보체에서 풍기텡가까지 610m의 해발고도를 곧장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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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륜 풍기텡가에서 텡보체로 가는 길 입구. 건물마다 안에 물의 힘으로 돌리는 기원륜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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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텡가 에버그린 로지에 도착해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국수에 각종 삶은 야채를 넣고 멸치로 우린 육수를 붓는다. 반찬으로 반지락 젓갈이 나왔다. 히말리아에서 젓갈과 멸치육수를 먹었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며 한마디씩 했다.
풍기텡가에서 캉주마까지는 다시 300m를 올라야 한다. 숨을 고르며 천천히 한 발씩 쉬지 않고 걷는 수밖에 없다. 캉주마에서 남체바자르까지는 '에베레스트 하이웨이'로 불린다. 돌아가는 길 모퉁이마다 스투파와 타르초가 있다. 룽다가 나부끼며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잘 보이는 전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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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캉주마로 가는 길(왼쪽) 풍기텡가에서 텡보체로 가는 길(오른쪽 가운데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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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매 남체바자르고 가는 길에 있는 나무열매. 우리나라 산수유와 열매가 비슷하지만 나무에 가시가 아주 많다. 딩보체에서 넘어졌을 때 왼속으로 이 나무를 짚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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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구름이 몰려와서 풍경을 숨겼다. 가는 눈발까지 날렸다. 기온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어제(15일)까지 좋은 날씨였는데, 그것이라도 우리에겐 행운이었다.
이틀을 묵었던 남체바자르 세르파 빌리지 로지에 도착했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다. 딩보체에서 먼저 내려와 기다리던 신민구와 동료들이 서로 포옹하며 반가운 해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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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행지도 페리체에서 남체바자르까지 18.9km(축척 1:75,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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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철학이다... 온몸으로 느껴라"이날, 잘 삭힌 홍어를 안주 삼아 소주와 양주를 마셨다. 홍어는 우리나라에서 가져와 산행을 시작한 첫날 팍딩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카트만두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아 나중에 받게돼 이제야 먹게됐다. 그 동안 발효가 잘 돼 시큼한 초장과 어울리면서 암모니아의 톡 쏘는 맛이 입안의 미각을 흔들고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알싸한 맛에 속이 후련해진다.
홍어는 술을 연달아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온 소주와 이맹로씨가 비행기에서 산 로얄 샬루트를 풀었다. 거기에 최재원씨가 생일을 자축하고자 네팔 술 쿠꾸리를 샀다. 식당 한쪽에 앉은 외국인에게 홍어를 먹어보라 권했다. 그는 코를 싸매고 자리를 피했다. 우리는 사람 수에 맞춰 홍어를 나눠먹었다.
김용대씨가 20년 산행지기인 최재원씨의 환갑을 맞아 우정의 헌사를 했다.
"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돈이 많다고 하는 이건희나 나나 산을 오르고자 하면 똑같이 걸어야 한다. 산의 정신이다. 이 사실이 좋다.5년 전 독일에 1년 동안 있었다. 항상 정이환씨와 셋이서 산행을 하는데 김용대씨가 없는 동안에는 산행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독일에서 돌아와 주변사람에게 물으니 둘이서 1년 동안 산행을 안 했다고 한다. 가슴 찡한 울림이 있었다. 최재원씨는 산에서는 길을 잘 찾지만 시내에서는 길을 못 찾는다. 한 가지에 미치면 다른 것을 다 포기할 줄 아는 남자다.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 이바지하고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것을 대가로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챙기지 않았다. 나는 여자를 산보다 더 좋아하지만 최재원은 여자보다 산을 좋아한다.우정은 친구의 약점까지 받아주는 것이다. 살면서 산에 갈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산을 통한 우리들의 우정이 지속되기를 갈망한다."윤영조씨가 "자랑스럽다, 항상 자랑스러운 우리가 되자"며 건배를 권했다. 우리는 "서로가 나누면 더 행복해지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자"고 했다.
정오승씨는 "산은 철학이다, 산을 온몸으로 느껴라"고 말할 때 망치로 머리를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리가 뻐근해지고 가슴이 터질 듯 숨이 가빠지는 것을 넘어 산을 온몸으로 느낄 때 산은 내게 온다. 산이 가슴에 있을 때 철학이 된다.
네팔 현지도우미인 쿠마르의 딸이 아빠를 보기 위해 남체바자르에 왔다. 내일(17일)부터 같이 걸을 것이다. 쿠마르는 16살 여자 쌍둥이, 6살 여자, 3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네팔에서는 남아선호가 아주 대단해 아들을 낳으면 바로 단산을 하고, 딸을 낳으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출산을 한단다. 딸은 학비를 50%만 받고 셋째 딸부터는 무료다.
쿠마르는 19세에 혜초여행사를 만나 인도에서 3년 동안 한국 음식을 배웠다. 언제나 낙천적이고 세심하게 일을 처리한다. 나도 딸이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