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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모래와 푸른 소나무가 어울린 백사청송 하동송림
 하얀 모래와 푸른 소나무가 어울린 백사청송 하동송림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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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을 찾아간다. 하동(河東)은 강의 동쪽이라는 곳이다. 섬진강을 경계로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뉜다. 강의 서쪽은 광양 땅, 동쪽이 하동 땅이다. 국도 2호선이 지나가며 섬진강을 넘나든다. 예전부터 광양과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처럼 살아왔다. 화개장터가 아니더라도.

하동은 섬진강 하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옛날부터 하동포구가 있어 배들이 드나들면서 바다와 육지를 연결해 주었다. 섬진강 하구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하동포구 80리길. 지금은 뱃길이 끊어지고 정감의 거리로 남았다.

섬진강에는 모래가 많다. 그래서 아주 오랜 옛날에는 다사강(多沙江)이라고도 불렀다.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침입해 올 때 수많은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서 왜구가 피해갔단다. 그 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진강이라 불렀는데 그 많던 두꺼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강변에 천여그루 소나무가 숲을 이룬 하동송림

하동8경 중 '백사청송(白沙靑松)'이 있다. 하얀 모래와 푸른 소나무. 서로 어울릴 수 있을까? 하동에 가면 모래와 소나무가 어울리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하동송림(河東松林)이다.

9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하동송림
 9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하동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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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송림. 솔밭에 자리잡은 하상정
 하동송림. 솔밭에 자리잡은 하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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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영조 21년(1745년)에 당시 도호부사 전천상(田天祥)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소나무 숲을 조성하였다. 당시 1500여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는 620여 그루 정도다. 현재는 새로 자란 300여 그루 소나무를 포함해서 9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동송림공원으로 들어서면 소나무 한 그루가 군락에서 벗어나 무리를 이끄는 장수처럼 서 있다. 1호 소나무다. 하동송림 소나무들은 번호가 매겨져 있다. 오랜 연륜으로 반쯤 기울어진 자태는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송림 산책로는 강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한쪽은 하얀 모래, 한쪽은 솔숲이다. 하얀 모래는 푸른 강물을 더욱 푸르게 한다. 소나무들은 강변 둔치를 가득 채웠다. 숲으로 들어선다. 솔숲은 아늑하다.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소나무들은 연륜을 말해주듯 껍질이 깊게 갈라졌다. 위로 올라갈수록 껍질들은 비늘처럼 변하면서 붉은 빛을 띤다. 하늘을 덮은 가지들은 텅 빈 솔방울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다.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숨을 들이키며 걷는다. 차가운 바람도 솔숲에서는 솔바람이 된다.

하동 특유의 떡갈비

점심을 먹는다. 요즘 떡갈비 검색에 재미를 붙였다. 하동에도 떡갈비가 있다. '매실참숯떡갈비'다. 식당을 찾아가서 음식을 시키니 하동 특유의 떡갈비가 나온다. 특유?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 떡갈비 이외에도 쌈 멸치, 생선구이, 재첩 회무침이 함께 나온다. 달달한 떡갈비도 맛있지만 같이 나온 재첩 회무침이나 생선구이도 맛있다.

하동 떡갈비
 하동 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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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방식 그대로 쇠를 다루는 화개장터 대장간
 옛날 방식 그대로 쇠를 다루는 화개장터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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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을 따라 올라간다. 벚꽃이 만발했을 때는 설렘과 북적임이 있는 길인데. 겨울에 는 앙상함만 남았다. 강변 모래는 더욱 황량하게 보이고 주인이 없는 가판은 허전하게 보인다. 악양을 지나고 화개로 들어선다. 화개에는 화개장터가 있다.

장터에 들른다. 장터는 한산하다. 사람이 없는 장터는 활기가 없다. 식당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렀다가라고 한다. 약초를 파는 상가에서는 약차 한 잔 마시고 가라 한다. 우리나라에 나는 모든 식물은 약차로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대장간에는 벌겋게 달군 쇠를 두드리기도 하고, 호미를 자루에 끼우기도 한다.

차 시배지에는 한국 최고 차나무가 없다

화개천을 따라 가는 길은 차밭 풍경이 펼쳐진다. 화개천을 사이에 두고 다양한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하동은 차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 씨를 가져와 하동 쌍계사 주변에 처음 심었다. 그래서 하동에는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하동을 다시 찾은 건 차나무 원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때 김대렴이 처음 차를 재배했다는 차시배지
 신라시대 때 김대렴이 처음 차를 재배했다는 차시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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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이 내려보이는 차시배지. 산책로에는 차마심을 칭송한 글들을 써 놓았다.
 섬진강이 내려보이는 차시배지. 산책로에는 차마심을 칭송한 글들을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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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된 차시배지에는 비석 몇 개가 서 있고, 차시배지라는 안내판이 붙었다. 다듬지 않은 차나무들이 산비탈을 채우고 있다. 차나무 사이사이에는 고산선사가 '차마심을 칭송한 20가지 글'들을 조형물과 함께 써 놓았다.

차밭 사이로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근데 천년을 살았음직한 천년차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차 시배지에 당연히 천년차나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관광지도에도 정금리 차나무라고 표시되었고,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정금마을이다. 인터넷을 검색한 후에야 1.5km 떨어진 도심마을 도심다원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심다원을 찾아간다. 도심다원은 가파른 산비탈에 차밭을 조성해 놓았다. 오밀조밀한 차밭 풍경이 하동 차밭의 또 다른 멋을 보여준다. 겨울 차나무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싱싱함을 자랑한다. 천년차나무는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동 도심다원 차밭 풍경. 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한다.
 하동 도심다원 차밭 풍경. 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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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세월과 함께 생을 마감한 한국최고차나무
 천년의 세월과 함께 생을 마감한 한국최고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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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지정기념물 제264호로 지정된 하동 정금리 차나무(河東井琴里茶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차나무다. 일명 천년차나무라고도 부른다.

가파른 도심다원을 다 올라가서야 안내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무너지는 풍경을 보고 말았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천년차나무는 가지들이 절단된 채 고사되어 있었다. 마음이 아프다. 단순한 나무 한그루가 죽은 게 아니라 천년의 세월이 함께 죽어버렸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태그:#하동송림, #차시배지, #최고차나무, #하동 차밭, #하동 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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