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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필자말

있는 것은 다 소중하다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소중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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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돌고 있는 흉흉한 소문

실종자를 찾아 나섰던 가족마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지자 피스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먹바위 딸의 초청으로 본토에서 강을 건너온 개코원숭이들이 실종자를 먹어 치우고 돌아갔다는 소문이 도는가 하면, 본토로 넘겨져 다람쥐원숭이의 먹잇감으로 쓰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밤낚시를 나간 친원파들이 실종자를 잘게 쪼개 낚시 밥으로 쓰는 걸 보았다는 어부의 그럴 듯한 증언도 있었다. 뜻밖의 소문이 숲에 퍼지자 먹바위 딸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숲얼단 단장인 늑대가 급히 소문을 퍼트린 자들과 어부를 찾아 도륙을 냈지만 한 번 불붙은 소문은 꺼질 줄을 몰랐다. 어부가 죽었다는 소식은 또 다른 소문으로 만들어졌고, 그 소문을 들은 숲민은 누구랄 것 없이 들끓고 흥분했다.

"이봐, 늑대가 어부를 죽였다 하네."
"그래? 그렇다면 실종자들을 낚시 밥으로 썼다는 소문이 사실이란 거잖아."
"아, 이 새끼들 해도 정말 너무하네." 

"이렇게 주저앉아 있다간 우리도 놈들의 낚시 밥 밖에 더 되겠어? 부정선거를 한 것도 모자라 항의 하러간 숲민을 낚시 밥으로 쓰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 자, 이럴 게 아니라 먹바위 궁으로 몰려가자구."
"그려, 먹바위 딸 저년을 몰아내지 않았다간 우리가 다 죽겠어."

성난 숲민들이 하나 둘 어깨를 걸었다.

그날 오후엔 숲통령 선거에 나섰던 느릅나무 후손이 숲민을 향한 살육정치를 멈추라는 성명서를 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성 명 서>

먹바위 딸 정부는 숲민과 전쟁이라도 벌일 셈인가. 어느 숲을 막론하고 숲민이 있고 숲통령이 있는 것이지 숲통령 아래 숲민이 있는 법은 없다. 피스 숲을 구성하고 있는 전체 숲민들의 저항을 어찌 감당하려고 먹바위 딸 정부는 이토록 무지막지한 살육을 행하는가.

더구나 숲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었고, 먹바위 딸 정부가 출범한 것은 또 얼마나 되었다고 백주 대낮 숲민들에 대한 대량학살이란 말인가. 더 기막힌 것은 살육한 숲민들을 낚시 밥으로 썼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으니, 이는 저 무식하고 본분 없는 원숭이 놈들이 피스 숲을 강점했을 때도 없었던 일이고, 피스가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흉악스런 일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나 느릅나무 후손은 지난 숲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나섰던 인연이 있고 피스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책임 있는 숲민으로 먹바위 딸 숲통령에게 촉구한다. 먹바위 딸 정부는 지금 당장 숲민들을 향한 살육정치를 멈추고 피스를 위한, 숲민들을 위한 참된 정치를 펼치라. 그렇지 않을시 숲민들의 강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이 자리를 빌어서 경고하는 바이다.

                                - S·피스 숲통령 후보 느릅나무 후손 -

부정선거 언급 하지 않은 게 다행

느릅나무의 성명서가 발표되자 늑대가 그 사실을 먹바위 딸에게 보고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먹바위 딸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긴급회의가 소집되었으나 다들 먹바위 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느릅나무 후손의 성명서 내용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나마 부정선거에 관한 언급이 없어 다행입니다. 각하."

늑대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느릅나무 후손이 선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천만 만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느릅나무 후손의 성명이 막 불이 붙기 시작한 불에다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버렸으니 저 성난 숲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요. 각하……."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궁정장관이 어렵게 말문을 열어 숲민들을 어떡하면 좋을지 여쭈었다. 그렇게 묻는 궁정장관의 얼굴에 먹바위 딸이 화장품 케이스를 집어 던졌다. 순금으로 된 케이스는 궁정장관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제를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그 답을 내가 만들어야 하나? 한심한!"

궁정장관이 순금 케이스를 주섬거려놓곤 더듬거렸다.

"마음 같아선 놈들을 확 쓸어버리고 싶지만 집권 초기인데다가… 너무 강경한 건… 아닌가 싶어……."

먹바위 딸이 궁정장관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저놈들이 날 하야하라고 하는데 그걸 참나! 난 저런 숲민들 싫으니 저 보기 싫은 종자들을 청소할 수 방법을 찾아보란 말야! 알았어?"

궁정장관은 즉각 그리하겠노라 답했다.

"이봐, 늑대!"

먹바위 딸이 이번엔 늑대를 향해 소리쳤다. 늑대가 움찔하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쳐들었다.

"숲민들을 선동질 하는 느릅나무 후손은 어떡하면 좋겠어?"

먹바위 딸의 질문이 뜻하는 바를 늑대도 모르진 않았다.

"살육을 멈추니 어쩌니 하는 성명서를 낸 것 빼곤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당분간은 지켜보심이 어떠할는지요."

"그 자를 지지하는 숲민들이 있으니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다, 그 말인가?"
"그렇습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잡아들일 수 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닌 줄 압니다."  
"알았으니 그 자의 동태를 잘 감시해."
"예, 각하!"

늑대가 궁을 나서자 궁정장관은 비서실장인 너구리를 은밀히 찾아갔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숲민을 무작정 죽일 수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허허, 그렇다면 덫을 놓아 잡는 게 어떻소."

비서실장이 답했다.

"덫이라면?"

궁정장관이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예전 먹바위 아버지 각하께서 쓰시던 방법을 차용하면 될 듯싶은데, 어쩔지……."
"먹바위 명령 말이오?"

궁정장관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소. 뭐라도 근거를 마련해 놓고 때려잡아야 뭔 일이 생기면 우리도 빠져나갈 수 있을 거 아니겠소."

비서실장이 입가에 미소를 달며 말했다.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놓자는 말씀이시군요."
"허허,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법 아니겠소."

비서실장의 말에 궁정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소이다."

놈들을 청소할 방법을 찾아!

궁정장관은 집무실로 돌아가 오래된 자료집을 들췄다. 그것은 먹바위가 숲통령을 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자료들이었다. 일급비밀로 분류된 자료들엔 궁정장관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묘안이 적지 않게 들어있었다.

"역시 먹바위 숲통령 아버지 각하께선 피스를 다룰 줄 아시는군."

궁정장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궁정장관은 비밀자료 중에서 당장 쓸 만한 카드 몇 개를 끄집어냈다. 먹바위가 숲민들에게 적용하려다 비명횡사를 하는 바람에 자료로만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 궁정장관은 그것들을 현실에 맞게 다듬었다.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구먼."

보고서를 읽은 먹바위 딸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각하…그런데 문제가 좀……."

궁정장관이 두 손을 공손히 맞잡고는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문제? 1안 2안 다 좋은데 무슨?"

보고서를 다시 한 번 살핀 먹바위 딸이 물었다.

"2안은 그대로 시행해도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1안 1항에서, 우는 행위를 금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게 아무래도 논란의 여지를 주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논란?"

먹바위 딸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각하, 예를 들어 말입니다."

말을 꺼낸 궁정장관은 말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를 들어 뭔데?"

먹바위 딸이 답답하다는 듯 또 물었다.

"예, 그럼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말입니다. 새끼소가 어미를 부르며 내는 '음메'를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염소가 '매애' 하고 대화하는 걸 우는 걸로 봐야 하는 건지, 말이 '이히히힝!' 하는 소리를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들개가 '컹컹' 짖는 것을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닭이 알을 낳으면서 '꼬꼬꼬' 하는 소리를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쥐가 '찍찍' 하는 걸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발정 난 고라니가 '꽥꽥' 하는 걸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새가 먹이를 물어 와서 새끼들에게 보내는 소리나 새끼들이 어미새를 향해 서로 달라며 입을 쩍쩍 벌리는 걸 우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건지, 산비둘기 암컷이 발정이 나서 '구구구' 하는 소리를 우는 소리로 봐야 할지,

딱따구리가 벌레를 잡기 위해 나무를 쪼는 소리를 우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건지, 또 말벌이나 꿀벌들이 날 때 내는 소리를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쓰르라미나 귀뚜라미처럼 날개에서 나는 소리를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모기가 '애앵' 하고 내는 소리를 우는 걸로 봐야 하는 건지,

뱀이 스스스 소리를 내며 기어가는 것도 우는 걸로 봐야 하는 건지, 물고기가 입을 벙긋 거리는 것을 우는 것이라 봐야 되는 건지, 나무가 웅웅 소리를 내는 것을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계곡 물이 '졸졸졸' 흐르는 걸 우는 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 또 강물이 뒤채며 내는 소리를 우는 소리로 인정해야 하는 건지,

하품을 하다가 눈물이 고인 것을 우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건지,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 눈물이 나는 걸 두고 우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건지, 빗물이 눈에 떨어지며 고인 물을 눈물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세수를 금방 했을 때 눈에 고인 물을 눈물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맞아 나는 눈물도 우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건지, 또……."

"그만!"

먹바위 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국정원, #박근혜, #부정선거,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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