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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는 어른 키만 한 나무들이 보기 좋게 서 있어 매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싱그러운 산소를 공급해 주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나무들 둘레에는 반짝반짝 하는 전구들이 돌돌 말아져 밤이면 깜박깜박 빛을 발하고 있는 중이다. 아파트 관리인이 주민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자의 아파트 입구 나무들은 매 년 이맘때쯤이면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신한다.
▲ 나무들은 얼마나 뜨거울 까? 기자의 아파트 입구 나무들은 매 년 이맘때쯤이면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신한다.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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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맘때쯤이면 우리 아파트 뿐 아니라 웬만한 아파트와 거리에선 이렇게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대형 교회 앞 커다란 나무에 달린 전구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은 탄성을 지르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같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머리엔 자꾸 예전에 보았던 살아있는 생선 튀김 동영상이 떠올랐다.

중국의 요리사가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이 요리는 물고기의 몸통과 꼬리 부위는 기름에 튀겨졌으며 요리의 풍미를 더해주는 소스가 뿌려져 있다. 하지만 물고기의 머리 부위는 날것 그대로인 모습인데, 젓가락으로 건드리면 물고기가 입을 뻐끔 거린다. 어쩌면 사람들이 신기하여 젓가락으로 건드리는 동안 고통스러워하는 생선이나 전깃줄에 온 몸이 감기고 전구에서 나오는 뜨거운 빛에 둘러싸여 있는 나무나 똑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생태'와 '환경'은 구분돼야

요즘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생태'라는 말이다. '생태하천' '생태체험' '생태축제' 또는 '에코토피아' '에코 시티' 등 수 많은 단어 앞에 '생태'라는 말을 붙여 사용한다. 생태라는 말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환경'이라는 단어가 귀에 익숙하였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생태와 환경의 의미를 따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환경주의자'와 '생태주의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환경'은 말 그대로 주변을 뜻하며 중심이 필요하다. 여기서 주변이란 '자연'을 말하고 중심에는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환경보호란 결국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생태'란 단어 속에는 '환경'과는 전혀 다른 속뜻을 내포하고 있다.

'생태학'이라는 개념은 1866년 독일의 동물학자인 헤켈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유기체나 유기체의 무리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맺는 관계에 관한 학문'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이 생태의 개념에선 중심이란 존재 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종들이 각자 동등한 위치에서 존재하게 된다.

생태계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지나가는 날 파리와 같은 하나의 종에 불과하게 된다. 인간중심사상에 박혀 있는 우리가 선뜻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생태사상에서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훼손할 자격이 없게 된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아야 겠다. 나무들아 미안해!
▲ 전구들로 둘러 쌓인 나무 터널 자연과 인간이 공존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아야 겠다. 나무들아 미안해!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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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은 서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장자는 '제물론'에서 다음과 같은 우언을 통해 인간들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비꼬고 있다.

"사람들은 모장과 여희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이들을 보자마자 물 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들은 그들을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고, 사슴은 다급하게 도망간다."

모장과 여희는 춘추전국시대 왕들이 총애했던 미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들의 눈에나 미인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물고기, 새, 사슴에게는 모장, 여희 그리고 추녀 사이의 구별은 없다. 모두가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나쁜 대상일 뿐이다.

자기가 믿고 있던 진리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사고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 180cm의 키는 소인국에 가면 멋있는 몸매가 아니라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은 다양한 생명체로 구성된 유기적인 세계이다. 어떤 한 종의 단독적인 세상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한 부분의 우등함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진 우등함은 또 다른 이에게는 열등함이 될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른 도구 없이는 개보다도 더 빨리 달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각 자는 자기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살아가는

서울 시내 한 복판을 몇 시간 돌아다녀 보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된다. 그렇지만 키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

19세기 유명한 미국 철학자 소로우가 쓴 『월든』의 한 대목이다. 자신의 북소리를 듣지 않고 다른 고수의 북소리에 따라 노래를 한다면 그 노래가 아름다울 리 없다.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보다 느리다고 해서, 작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무시한다면 본인 또한 이미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생태학자 베리 커모너(Barry Commoner)는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을 생태학 제1의 법칙이라 하였다. 불교의 연기론처럼 세상 모든 것은 서로서로 연결 되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콘크리트 걷어내고 물 좀 흘려보낸다고 해서 생태하천이 될 수 없고, 나비 수 만 마리 풀어 놓고 사람들에게 구경시킨다고 해서 함부로 생태체험 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결국 생태란 말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가 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동물과 동물, 동물과 식물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러브 럭(Love Lock)이 말하는 '가이아의 세계'인 셈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13년을 보내면서 주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생태적 삶을 만들어 가는 독자들이 많았으면 하는 희망이다. 특히 새 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여야 정치인들이 생태적 삶에 대해 고찰해 보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태그:#크리스마스 트리, #생태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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