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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와 창조경제를 외치며 등장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은 종북 이데올로기의 블랙홀로 사라져 가고 있다. 대통령 당선을 위해 5년 전에 외쳤던 줄푸세를 버리고 지난 대선에서는 복지국가로 급변하더니, 당선 후에는 이의 실행을 위한 어떠한 진지한 시도도 없다.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복지 확대는 미뤄두고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

한국 국민의 행복도는 바닥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한국 사회 삶의 질은 상당히 높다. 지난 3월 UNDP가 발표한 인간개발지수에서 한국은 캐나다 바로 다음인 12위를 기록하였다. 덴마크, 벨기에, 핀란드 보다 높은 순위다. 이 지수는 소득, 교육, 건강 지표를 종합하여 단순히 경제발전이 아닌 전반적 삶을 질을 나타내주기 위해 개발된 지수다. 그럼에도 한국의 자살률은 가장 높고, OECD 국가 중에서 행복도는 바닥이다. 왜 그럴까?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2천불이다. 명목 소득으로 한국은 1980년대 초의 유럽 복지 국가와 비슷하다. 구매력을 고려한 실질소득으로 보면 2000년대 초반의 유럽 복지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민소득이나 인간개발지수가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인색한 국가라는 점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소득 2만불 달성 이후에도 복지국가를 실현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금 현재 복지 국가라 일컬어지는 모든 국가가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을 때 더 많은 복지를 국민들에게 제공했다.

노인 인구의 상태를 보면 대한민국의 인색함은 혀를 내두르게 할 지경이다. 65세 이상 노인 중 빈곤율은 48%로 OECD 국가 중에서 독보적으로 1위다. 노인 빈곤율은 복지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미국도 9%에 불과하고, OECD 평균은 13%다. 노인의 높은 빈곤율은 높은 자살률로 이어진다.

한국의 자살률이 높지만 20~64세 노동연령대의 자살률은 다른 나라보다 그리 높지 않다. 연령별 자살률과 연령별 빈곤율은 거의 1대1에 가까울 정도로 상관관계가 높아서, 고연령층일수록 빈곤율과 자살률이 높다. 75세 이상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6배 높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고려장의 국가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때로는 인구고령화 때문에 복지 확대는 재정 압박을 가져올 것이라는 논리로 복지확대에 반대한다. 하지만 인구고령화 때문에 복지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증가하는 노인인구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대안이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스크루지 영감이 울고 갈 인색함이다.

세율에 대한 오해

경제발전이 부족하여 복지를 할 수 없다는 변명은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지 않는 것은 경제적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와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나라가 한국 정도의 경제발전에 도달했을 때 복지국가를 이룩했는데, 왜 한국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부자 증세를 하지 않아서?

복지국가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가 세율이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외국의 사례를 보면 복지자원은 세금의 누진성이 아니라 전반적인 고세율에 의해 확보된다. 상식과 달리 세제의 누진성은 스웨덴, 핀란드 보다 미국이 높다. 부자에게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빈자에게 낮은 세율을 부과하는 누진성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높은 세율을 부과함으로써 세수의 파이를 늘리고 그 파이를 같이 나누는 것이 복지국가다. 

스웨덴과 미국의 복지 수준의 차이는 세제의 진보성이 아니라 세금의 총액에 있다. 모든 세금을 포함하여 미국은 전체 소득의 약 30%를 세금으로 내지만, 스웨덴은 절반 가량을 세금으로 낸다. 심지어 하위 20% 소득자도 간접세·직접세를 포함하여 근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납부한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인식의 편의상 1억 소득자와 100만 원 소득자 두 그룹으로만 구성된 국가를 가정하자. 여기 두 가지 종류의 국가가 있다. 하나는 저소득자는 수입의 10%만 세금으로 내고, 고소득자는 저소득자보다 4배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받는 국가다. 다른 하나는 누진성은 전혀 없지만, 세율이 높아 모든 국민이 50%씩 세금을 내는 국가다. 

저소득자는 수입의 10%만 세금으로 내고, 고소득자는 저소득자보다 4배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받는 높은 국가에서는, 1억 소득자는 수입의 40%를 세금으로 내고 (1억*.4 = 4천만원), 저소득자는 10%를 세금으로 내면 (100만 원*.1=10만 원), 전체 세수는 4010만 원이다. 이중 국방 등 복지가 아닌 국가 운영에 2천만 원이 든다고 가정하면, 2010만 원의 복지 예산이 확보된다. 이를 공평하게 나누면 1005만 원씩 복지로 받게 된다. 이 경우 1억 소득자의 세후 소득은 세금 부과 후 남은 6천만 원에 1005만 원을 더해 7005만 원이 되고, 100만 원 소득자는 세금 부과 후 남은 90만 원에 1005만 원을 더해 1095만 원이 된다.

한편 누진성은 전혀 없지만 세율이 높아 모든 국민이 50%씩 세금을 내는 국가를 생각해 보자. 1억 소득자는 5천만 원, 100만 원 소득자는 50만 원을 세금으로 내서 총 세수는 5050만 원이 된다. 역시 2천만 원의 국가 운영비를 제외하면, 복지 기금은 3050만 원이 남는다. 이를 공평하게 나누면 소득에 관계없이 각자 1525만 원을 받게 된다. 그러면 1억 소득자는 세금 지불 후 남은 5천만 원에 복지 기금을 합하여 세후 총소득이 6525만 원이 되고, 100만 원 소득자는 세금 부과 후 남은 50만 원에 복지 기금을 더하여 1575만 원을 받게 된다. 

세제 개편, 대통령에 거는 기대

지나친 단순화를 무릅쓴다면 현실에 존재하는 국가는 위에 예를 든 두 가지 타입이다. 부자에게 고율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만으로 복지 국가를 이룩한 나라는 없다. 그런 체제는 전시 등 비상시에 일시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비슷하게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국가가 누진성이 높은 국가보다 기득권층의 반발도 약하다. 아마도 이런 현실은 부자 증세를 외치는 진보에게도 증세는 안 된다는 보수에게도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복지 국가 도입은 미래의 복지 국가 유지를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어떤 요인이 창조성을 증가시키는가에 대한 여러 연구는 위험을 회피하지 않는 모험가 정신(risk-taking behavior)이 혁신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보여준다. 복지는 일종의 보험이다. 든든한 보험은 모험가 정신을 고양한다.

일반적으로 실패 후 대안이 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 아이들은 위험 회피 경향을 보여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직장을 선호하고, 중산층 이상 자녀들은 모험가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 복지의 확대는 실패의 기회비용을 줄임으로써 모험가 정신을 함양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즉, 복지 확대는 혁신에 기반한 창조경제의 실현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의 IT 혁신이 대부분 중산층 자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상기하라. 

하지만 한국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의사, 교사, 공무원 등 연금이 보장되거나 고연령에도 노동시장 참여가 용이한 안정적 직장을 선호한다. 달리 말해 한국의 모든 학생들이 미래의 경제적 불안감 때문에 가난한 집안 출신과 같은 위험 회피 성향을 보이고 있다. 모험가 정신의 부족과 위험 회피 행동은 미래의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 복지의 부족은 이렇게 우리 모두를 빈자로 만들고 있다.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중산층을 포함한 전 계층의 세금을 올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세금 인상은 정치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다. 아마 모든 정치인이 피하고 싶을 거다. 나중에 돌려받더라도 당장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반드시 저항이 있다. 세제개편, 세금인상이라는 커다란 제도적 변화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야당과의 타협과 견인은 물론 여당에 대한 지도력이 필수다. 복지 확대에 반발할 보수층을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 변화를 가져오기에 박근혜 대통령만큼 좋은 위치에 있는 정치적 지도자가 없었다. 전래 없이 높은 업무수행 지지율과 '종박'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강력하게 여당에 행사하고 있는 카리스마가 그 자산이다. 올 초 야당은 박근혜 정권의 복지 확대 어젠다의 파트너가 되겠다고도 얘기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런 것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종북 이데올로기 외에 지금 박근혜 정권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저항하는 야당에 응하여 타협하고 설득하여 자신의 정책 어젠다 실현을 위해 애쓰기보다는 종북 딱지를 붙여 편가르기 하기 바쁘다. 국론 분열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윽박질러 가톨릭 사제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하는 것으로 공약을 달성할 것인가? 

부자가 공동체와 재산을 나누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만 쓰듯, 박근혜 정부는 높은 지지율과 카리스마를 국민 복리가 아닌 오직 정권의 안보를 위해 쓰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정권을 잡았으며, 무엇을 위해 정권을 지키고자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자산을 국민 복지를 높이겠다는 공약에 쓰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인색함이 박근혜 정부의 특징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창환 님은 미국 캔사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복지국가, #세금, #세제개편,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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