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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미국에 관심이 많지만, 미국인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지 않다.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생각을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한국인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립을 확인 받고자 하지만, 세계 유일 강대국으로서 미국과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또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이란, 그리고 북한이란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 대학원생으로 강의한 것을 포함해서) 10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에 바탕하여 미국인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까 한다. 필자는 부유층 자녀들, 그래서 국제적인 경험이 제법 있는 학생들의 비중이 높은 명문 사립대학에서도 가르쳐 보았고, 현재는 중산층·저소득층 학생들의 비중이 높은 주립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국제정치, 비교정치,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 정치, 한국 정치를 강의해 왔다. 제한적 경험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미국 대학생들이 한국과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찰해 볼 수 있었다.

먼저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미국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미국사 그리고 유럽사 중심의 세계사를 배운다. 아시아 역사를 배우긴 하지만, 당연히 중국과 일본에 치중한다. 그러다가 한국은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는 극히 작은 주제일 뿐이다. 세계사 교재에서 한국에 관한 분량은 서너 페이지를 넘지 않고, 미국 학생들이 기억하는 것은 한국 전쟁에 대해 반 페이지 정도 읽었다는 정도이다.

대학에 와서 아시아 또는 한국 관련 강의를 듣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 정도의 사전 지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에서 시작한다. 필자는 아시아·한국 관련 강의를 할 때, 학기 시작 첫 시간에 간단한 조사를 해왔다. 즉 아직 한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 미국 학생들이 한국과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 같은 질문을 던져 조사하고 비교해 보기도 했다.

미국 대학생들은 "한국" 하면 "민주주의, K-pop, 경제 발전, 김치, 월드컵" 정도를 떠올린다 (많은 빈도수 순). 반면 "북한" 하면 "공산주의, 김정일, 가난, 핵무기, 독재"와 같은 단어로 이해하고 있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미국 언론을 통해 보여지는 그리고 반복되는 한국과 북한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은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이고, 소녀시대와 싸이를 배출한 K-pop 원산지이며, 쏘나타와 갤럭시폰을 생산하는 경제 선진국인데다가, 김치와 월드컵처럼 화끈한 문화가 있는 아시아 국가인 것이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김정일(현재는 김정은)이라는 "이상한" 독재자가 핵무기를 만들고, 자국민을 굶기는 '꼴통 공산주의 국가'로 인식한다.

미국인들은 한국을 모른다

가수 싸이가 2012년 10월 4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와 함께 하는 싸이 글로벌 석권 기념 콘서트'에서 '강남스타일' 노래를 부르며 말춤을 추고 있다.
 가수 싸이가 2012년 10월 4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와 함께 하는 싸이 글로벌 석권 기념 콘서트'에서 '강남스타일' 노래를 부르며 말춤을 추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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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가 미국인들이 한국과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수준일 것이다. 만약 한국 대학생들에게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를 물어보면 훨씬 수준 높은 답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이름에서부터 다음 선거가 언제인지, 상원과 하원이 있는 양원제라는 점, 남북전쟁의 역사, 미국 발 세계 경제 불황의 원인 등 한국인들은 미국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미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만약 미국과 한국의 외교적인 관계가 "일반적인" 수준의 관계라면 양국 사이의 이 정도 정보 격차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칠레 그리고 페루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지만, 우리가 이 두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은 그닥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한미 그리고 북미 관계는 일반적인 외교 관계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관계, 때로는 한 국가의 운명이 미국의 외교 정책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관계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그리고 북한에 대한 무지는 불편하고 불안하다. 한국의 박정희, 전두환 군부 독재를 미국이 지원했고,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연되었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모른다. 한국의 성장 신화가 재벌에 대한 반시장적 특혜로 점철되어 있고, 삼성과 현대에서 어떤 노동 탄압과 통제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미국이 참전한 한국전쟁에서 1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한국전쟁으로남북한 분단이 고착되었다는 사실을 미국 사람들은 잘 모른다. 미국이 정전협정의 한 당사자이고 그래서 북한이 미국에게 체제 인정과 평화협정 타결을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이 가만히 있었는데 한국은 원래부터 민주주의였고 혼자서 경제 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가만히 있었는데 북한은 원래부터 독재였고 가난했고 비정상 국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인들이 한국을 알아야 하는 이유

그래서 수업 시간에 토론을 하다 보면, 일부 미국 학생들은 자국의 첨단 무기를 동원해서 북한에 대한 외과수술식 공격(surgical strike)을 해야 하고 김정은 같은 독재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과 전쟁을 벌이고, 파키스탄에 은거하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것처럼.

국민이 무지하면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펼치기 쉬워진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정책이라도 무지한 국민을 상대로 호도하고 동의를 얻기 쉽기 때문이다. 미국이 근거 없이 시작했고 현재도 분명한 출구전략(exit strategy) 없이 진행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카니스탄 전쟁 모두 무지한 국민을 대상으로 왜곡된 정보를 선전해서 벌어진 일들이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면, 미국의 잘못된 한-미, 북-미 정책이 반복될수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무지가 불안한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아니라,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북한에 대해, 그리고 남북한 분단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 남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덧붙이는 말. 혹자는 최근 일고 있는 "한류" 돌풍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작은 기여는 하겠지만 지나친 낙관이 아닐 수 없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해서 한국의 정치 제도를 공부하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중국 음식을 좋아한들,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윤경 교수는 미국 뉴욕주립대 빙햄턴대학교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미국인 한국인식, #한류, #김정은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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