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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총균쇠>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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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의 대표작 <변신>의 글머리에서 좋은 책의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카프카의 말대로라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좋은 책으로 분류하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서구의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관성적 태도에 일침을 놓는다.

서울대 대출도서 1위로 한때 유명세를 떨쳤던 이 책은 처음 마주하면 만만치 않은 두께에 다소 질릴 수도 있다. 책장을 넘겨보면 생각은 바뀐다. 의외로 쉽게 읽힌다. 학자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저술가로서의 자질도 갖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남다른 역량 덕분이란 평가가 뒤따른다.

이 책은 인류의 출현부터 현재 문명을 이룩하는 1만 1천여 년의 과정을 4장에 걸쳐 쉽게 이야기한다. 왜 대륙마다 발전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유럽인이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침략하고 점령할 수 있었는지, 왜 어딘가는 고도화된 문명을 이룩했고 또 어딘가는 아직도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있는지 등 누구도 들려주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인류사를 좌우한 총, 균 그리고 쇠

1972년 뉴기니의 정치인 얄리는 조류 진화 연구를 위해 뉴기니에 머물던 재레드 다이아몬드에게 한 가지 질문를 던진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질문을 받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25년 뒤 그 대답으로 <총, 균, 쇠>를 집필한다. 얄리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독자라 하더라도 700여 쪽이 넘는 장황한 대답을 차근차근 읽는 일은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한 저자가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의해 놓은 문구가 있어 소개한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대답은 결국 "기후적, 지리적 차이가 민족의 차이를 불러 왔다"는 하나의 주장으로 수렴된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간단히 알아보자.

1. 식물의 작물화

식물의 작물화 시기는 불평등한 인류 역사를 초래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식량 생산이 빨랐던 지역들, 즉 유라시아 국가들이(유라시아인 중 유럽인이 건너가 세운 미국을 포함해) 현대 세계를 주도하는 이유도 식물의 작물화 시기가 상대적으로 빨랐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과연 식물의 작물화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걸까.

식량 생산이 높아지면 인구가 급증하고 모든 사람이 식량 생산에 투입될 필요가 없어지게 되어 잉여노동인구가 생긴다. 이 잉여노동인구는 정치 군사 경제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곧 중앙집권화와 전쟁기술 발달을 의미한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복잡해지면 고도화된 정주화 사회로 발전하고 제국 문자 쇠무기 등을 만들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닦아진다. 결국 식물의 작물화는 이른바 '문명화'의 시금석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2. 동물의 가축화

저자가 말하는 총, 균, 쇠 중 인류사에 가장 드라마틱한 결과를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균'이다. 1519년 코르테스를 비롯한 스페인 사람 600여 명이 아즈텍 문명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 것도, 1531년 스페인의 피사로가 이끄는 오합지졸 168명이 8만 대군을 지닌 잉카제국을 손쉽게 멸망시킨 것도 병균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어째서 유럽인은 잉카인에게 병균을 전파시켰는데 반대로 잉카인은 유럽인에게 그러지 못한 것일까? 저자는 그 해답을 동물의 가축화에서 찾는다. 유럽인 포함 유라시아인의 경우 가축화된 동물과 오랜 시간 생활하다 보니 각종 병균에 면역력이 생긴 것이다.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페스트, 홍역 등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유라시아와 달리 여러 요인으로 대형 동물의 가축화에 실패한 기타 대륙의 사람들은 갑자기 닥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심한 경우 문명이 몰락하기도 했다.

3. 확산의 속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유라시아에 비해 환경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확산의 속도이다. 지도를 펼쳐보라. 그리고 각 대륙을 비교해보라. 유라시아만 동서로 길게 뻗고 나머지는 남북으로 긴 모양이다(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동서해안 지대 일부를 제외한 지역은 사막 등 척박한 지대라서 비교 무의미). 이는 농경과 가축, 문자, 화약 등의 확산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동서로 뻗은 경우 같은 위도이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남북으로 뻗은 경우 환경적 차이가 극심하게 발생해 발명품 등의 확산이 더디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일례로 멕시코에서 자체적으로 발명한 문자와 바퀴 등이 북쪽 미시시피 지역이나 남쪽 케이프타운으로 퍼져나가지 못한 사건을 든다.

구조적인 문제마저 뛰어넘은 파격적인 시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누구?
1937년 9월 10일 미국 출생으로 현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7년엔 <제3의 침팬지>로 영국 과학출판상 및 미국 LA타임스 출판상을 1998년엔 <총, 균, 쇠>로 영국 과학출판상 및 퓰리처상 일반논픽션 부문 수상했다. 과학자이자 논픽션 작가로 왕성한 저서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섹스의 진화, 문명의 붕괴 COLLAPSE 등이 있다.
<총, 균, 쇠>는 흥미로운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고증이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책'의 구조를 놓고 봤을 때는 아쉬운 점도 있다. 팟캐스트 프로그램 <빨간 책방>의 진행자 이동진 기자와 김중혁 작가는 <총, 균, 쇠>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각 장마다 서술하고 요약하기를 반복해 독자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앞서 했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있어 중언부언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이 호평 받는 것은 저자의 주장이 구조적 약점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파격에 가깝기 때문이다.

세계의 경제 군사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인과 미국인(유럽의 이민자들이 주 구성원인)은 백인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최근까지도 골상학, 문화인류학 등 수많은 연구자료를 쏟아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계적인 석학이자 백인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백인우월주의에 제동을 건다.

유럽인이 득세한 이유는 인종의 우열 때문이 아니라 단지 환경적으로 운이 조금 좋았던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그의 방대한 연구 성과보다 더 빛나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균형 잡힌(또는 균형 잡고자 노력하는) 시각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역, 문학사상사



총 균 쇠 (반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2005)


태그:#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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