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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남산만한 배로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아이가 벌써 21개월이나 되었다. 20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마친 후 출근한 지 한 달. 책상에 앉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아프다. 매일 하던 운동마저 안 했더니 아랫배는 더부룩하고 옆구리 살이 나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아침이면 출근 전쟁이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 덕에 아이들 챙기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다. 막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면 전날 밤에 감아 제멋대로인 머리카락을 정돈할 시간조차 내기 힘들 때가 있다. 얘들 밥상을 얼른 차리고 막내는 요구르트로 겨우 달래고서야 출근 준비를 한다. 그나마 초등 5, 6학년인 아들, 딸이 스스로 알아서 해주니 다행이다. 기저귀를 뗄 때가 되었는지 방바닥에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때론 밥풀이 발에 밟히기도 한다.

엄마의 품에 더 머물고 싶어서인지 갑자기 나보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불쑥 내 앞으로 와서 안아달라며 팔을 벌린다. 집에서 편하게 입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 아닌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었을 때는 발걸음이 힘겹다. 어린이집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막내의 입맞춤이 달달하다. 비타민의 달달한 향이 입술에 남은 탓이다. 헤어질 때 바쁜 마음에 내가 먼저 뽀뽀를 하면 울어버린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는 뜻이다.

"뭣허게 고생시럽게 시째를 또 났는가?"

집에 가면 엄마와의 헤어짐을 달래기라도 하듯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 있다. 그러다 아빠가 양말을 신으면 어느새 작은 운동화를 들고 와서는 '나도 데려가'라는 양 "낭, 낭"이라 외친다.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아빠가 안고 태워주는 그네 맛을 알아버린 탓이다. 막내가 무언가에 집중해 있을 때는 양말을 신어도 무방하다. 음악을 좋아해서 언니, 오빠가 컴퓨터의 동요를 켜주면 거기에 맞춰 놀 때 살짝 나온다.

남들이 그런다.

"뭣허게 고생시럽게 시째를 또 났는가? 자네, 고생길이 훠언허네."

그렇다. 고생이다. 낮에는 놀아줘야지, 씻어줘야지, 밥 먹기 싫다고 하면 사정사정해서 먹여야지, 밤에는 자다 울면 잠을 설쳐가며 달래야지, 잠들었을 때 빨래 널어야지, 며칠째 꾸욱 참았던(?) 방의 머리카락 한 번씩 쓸어줘야지. 휴직할 때는 힘들면 낮잠이라도 잤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건 힘들다.

"셋째는 천재가 아니네."

지인의 말이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말은 다 알아 듣는 것 같다는 말에 대한 대꾸다. 언니, 오빠의 말과 행동을 흉내내다보니 아무래도 좀 빠르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책이며 장난감을 흩트려놓고는 좋아서 웃을 때는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이다. 잠이 오면 옆에 누운 엄마의 배를 만지며 웃으며 잠이 든다. 아니 만진다기보다 뜯는다. 거문고를 뜯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막내를 안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아침에 포크로 김밥을 콕 찍어 잘도 먹어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쫓아다니며 밥 안 먹고 방바닥에 뱉는다고 버럭 했는데, 엄마의 마음 고생을 헤아려주는 듯하다. 전쟁 같은 출근 전쟁으로 힘들 때면 입술에 뭍은 달달한 향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슈퍼 울트라 파워 우먼의 하루를 보낸다.


태그:#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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