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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전문 잡지에서 일했던 나. 지난해 가을 한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그리고 올해 봄 한 대기업의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이 글은 잠입취재기가 아니다. 한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기일 뿐이다. 또한 두 곳 모두 스스로 그만뒀기에 '취업 실패기'이기도 하다. 글에 나오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화장분을 발라 볼에 톡톡 두드렸다. 입술도 핑크색 립스틱으로 생기를 더했다. 몇 주만의 화장이다. 옷장을 열어 한참을 들여다봤다. 투피스 정장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 옆에 있는 점잖아 보이는 재킷과 검정 바지를 꺼내들었다. 대기업 채용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닌데 정장은 과해 보였다. 그렇다고 집에서 입던 채로 갈 수는 없었다. 일자리 하나가 간절한데 어찌 복장을 소홀히 할까.

지난 몇 달간의 실업자 생활이 나를 바꿔놨다. 갑작스레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취직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취업 관련 포털을 몇 번 들락거리는 것만으로도 금세 주제 파악이 됐다.

애 딸린 아줌마에게 취업시장은 '불친절'

나는 서비스업 중에서도 백화점이 끌렸다. 번듯한 건물 안에서 일하니 노동 강도가 다른 곳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나는 서비스업 중에서도 백화점이 끌렸다. 번듯한 건물 안에서 일하니 노동 강도가 다른 곳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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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꼬리표가 많이 달려 있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많은 나이, 여성이라는 성별, 거기에 유아기의 아이를 둔 아줌마 구직자에게 세상은 불친절했다.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기존에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리니 선택의 폭은 더 좁았다. 몇 년 간 했던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사무직군을 빼고 보니 서비스업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서비스업에는 경력을 따지는 문턱이 낮았다. 채용공고 속 '초보 환영'이란 문구가 날 보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채용 분야도 많아서 선택의 폭도 넓었다. 덥석 서비스업으로 진로를 정했다.

물론 내게도 기피 직종은 있었다. 텔레마케터는 제외시켰다. 전화상담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익히 들어온 터라 가능한 피했다. 한 백화점 카드상담원 모집 공고는 '월 수입 600만원 가능'이라는 문구로 유혹했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실 클릭은 해봤다. 월급 많이 준다는 데 혹하지 않을 구직자가 어디 있나. 공고를 꼼꼼히 봤지만 아무리 봐도 그 정도의 월급이 나올 구멍은 없어 보였다. 설사 실제로 600만 원을 준다고 해도 그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말일 게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특히나 월급 주는 사용주에게는….

서비스업 중에서도 백화점이 끌렸다. 번듯한 건물 안에서 일하니 노동 강도가 다른 곳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기대했다(물론 얼마 후 내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음을 몸소 깨달아야 했다).

백화점 안에도 다양한 일자리가 있었다. 고객 안내에서 보안·청소·푸드코너 조리·캐셔·판매·물류·사무-관리·직원식당에서 표 파는 일까지. 일자리는 차고 넘쳤다. 그런데 내가 이력서를 낼 만한 곳은 별로 없다는 게 함정이었다.

백화점 안내 일에 '키 165cm'는 왜?

주차장이나 안내 데스크에서 안내하는 일에 키가 무슨 상관인지, 채용공고는 신장 165cm 이상을 요구했다.
 주차장이나 안내 데스크에서 안내하는 일에 키가 무슨 상관인지, 채용공고는 신장 165cm 이상을 요구했다.
ⓒ sxc·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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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이나 안내 데스크에서 안내하는 일에 키가 무슨 상관인지, 채용공고는 신장 165cm 이상을 요구했다. 또한 내 나이로는 응모도 불가능했다. 백화점에서는 인력파견업체에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않는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걸 알려주지 않나 보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라도 하고 싶었으나 당장 하루살이가 바쁜 구직자에게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다. 또, 어차피 벌금을 내더라도 상시업무를 파견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는 백화점이 아니라 영세한 파견업체가 부담하는 걸로 끝날 게 빤한데 그런데 쏟을 정력도 없었다.

다른 직종의 근무조건도 나와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 24시간을 3교대로 돌리는 보안직은 아이를 두고 밤 근무를 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 청소직 역시 이른 출근시간이 부담됐다. 푸드코너 역시 다른 매장들보다 출근시간이 빨랐다. 게다가 주부 경력과 전혀 상관없이 음식 조리에 서툰 내겐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했다. 이것저것 제외하니 결국은 판매직만 남았다.

그 역시도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아니었다. 백화점은 오전 10시 30분에 문을 열지만 출근은 9시 30분이었다. 백화점이 오후 8시나 8시 30분(금·토·일)에 끝나니 정리하고 집에 가면 오후 9시가 넘는 건 보통, 집이 멀면 오후 11시가 다 돼 아이를 보게 되는 거였다. 그나마 나는 친정과 10분 거리에 살았다. 백화점도 집에서 가까운 곳을 택했다. 쉽진 않겠지만 해볼 만하다고 봤다. 뽑아만 준다면….

취업 포털을 보니 집 근처 백화점에서 올라온 채용공고도 꽤 됐다. 따로 이력서도 올렸다. 대학을 나온 걸 기입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넣었다. 요즘 대졸 실업자가 얼마나 많은데…. 또 별다른 판매 경력이 없으니 그거로라도 점수를 따고 싶었다.

내 전략이 통했는지 이력서를 올린 지 얼마 안 돼 연락이 왔다. 그것도 명품 매장이었다. 아싸, 내 평생 명품은 못 사도 명품을 파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이왕 판매직을 택했으니 가능한 유통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었다. 유명 브랜드매장이니 서비스직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스템도 갖추고 월급도 좀 더 많지 않을까 기대했다.

명품매장 판매직, 좋아서 갔더니...

한 백화점의 명품매장. 한 손님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이 기사 내에 언급된 매장과는 전혀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한 백화점의 명품매장. 한 손님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이 기사 내에 언급된 매장과는 전혀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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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채 면접을 보러 갔다. 백화점에 들어서기 전 복장도 한 번 더 살폈다. 손에는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이력서가 들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매장을 찾았다. 명품매장답게 널찍했다. 밝은 조명 아래 고유 로고가 박힌 핸드백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옷걸이에 몇 벌 안 걸린 옷들은 "난 비싼 몸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휑한 매장은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지키고 있었다.

"면접 보러 왔어요? 하게 되면 주로 나랑 일하게 될 거예요."

특유의 싹싹함이 묻어나는 환대에 면접인의 긴장감이 사라졌다. 잠시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스럽게 꾸민 또 다른 여성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나를 환대했던 이가 그에게 "언니, 면접 보러 왔대"라며 나를 가리켰다. 멋쟁이 그녀는 따라 오라면서 나를 백화점VIP라운지로 데려갔다.

"결혼 하고 계속 쉬었어요?"
"쉬지는 않고 시간제로 일했어요."

출산휴가 3개월을 빼곤 쉰 적이 없으니 그대로 이야기했다. 물론 시간제로 일하지는 않았지만 정상적으로 회사생활을 했다고 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그렇게 얼버무렸다.

"아이가 어릴텐데 일 하는 거 괜찮아요?"
"근처에 친정이 있어 어린이집 다녀와서 거기서 놀면 돼요."

지난 4년여 간 아들은 그렇게 컸기에 그 역시 그대로 말했다.

점장의 질문은 많지 않았다. 대신 근무조건과 관련한 설명이 길었다. 그의 매장은 중간관리매장이라고 했다.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라 본사에 보증금을 내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그에게 매출액의 몇 퍼센트가 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본사에서 받은 수수료에서 나를 환대했던 '둘째'(백화점에서는 매장 점장을 매니저, 그 밑 직원들을 경력에 따라 둘째, 셋째, 막내로 불렀다) 언니와 내 월급, 쇼핑백·청소용품 등의 매장 소모품비를 지출하고 나머지를 가져갔다.

그러니 직원 월급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 달 전 근처에 문을 연 백화점에 같은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그가 하소연했다. 긴 설명 끝에 그가 제시한 내 월급은 110만 원이었다.

"대신 내가 점심값으로 한 달에 2만 원 정도 더 넣을게. 내가 여기 매장을 10년 넘게 하면서 여태껏 직원들한테 점심값을 준 적이 없어. 지금 둘째도 안 주고 있고. 둘째가 알면 뭐라 할 테니까 둘째 몰래 넣을게."

그걸 생색이라고 낼까.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점장이 두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장사만 잘 된다면 월급 그까짓 거 더 주는 거 어렵지 않지. 4~5개월 지나서 120(만 원)으로 올려줄게. 그리고 명품매장에서 일했다고 하면 어디 가든 대우를 받으니까 좀 참고 일해 봐."

명품이어서 월급을 더 받을 줄 알았던 내 기대는 큰 착각이었다. 오히려 명품 프리미엄이 임금에서 깎였는지 취업 포털에서 봤던 판매직 급여의 최저 수준인 120만 원보다 더 낮은 액수였다. 아무리 경력이 없어도 그렇지. 1일 10시간 이상 노동에 주 6일 근무인데 110만 원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때 몇 주 전 고용센터 직원이 일자리를 소개해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거절하세요, 선생님."

천사와 악마의 빅매치, 선택은... "내일부터요"

아직 실업급여 수급일이 남아 있어서 머뭇거리던 내게 그가 해준 말은 꼭 응원가 같았다. 그의 말을 들으니 구직자의 초조함이 누그러들면서 용기가 생겼다.

'그래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는 거야. 구직자에게도 선택의 권리가 있다고.'

그때는 호기로웠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때 왜 객기를 부렸을까 약간 후회가 됐다.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돈가스 등 냉동육을 파는 일이었다. 중소기업이긴 했지만 업체 직영매장이었다. 4대 보험도 됐다. 주5일 근무인데 일주일에 하루를 쉬고 하루치는 휴일근무수당이 돼 월급을 175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경력도 없는데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대부분 '여사'로 불리는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일하는 식품매장에서 내 나이는 파릇파릇한 청춘이었다. 게다가 대학까지 나왔다고 했으니 면접을 본 여성인 이사는 일만 열심히 하면 본사로 데려가주겠다고 했다.

아직 서비스업에 뼈를 묻을지 결정을 안 한 상태였기에 약간 부담스러운 이야기였다. 게다가 냉동육 코너를 혼자 맡아 한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휴무 때는 대체인력이 나온다고 치고 일할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 하는 일이니 여럿이 일하는 매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것도 걸리긴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차를 타는 시간이 오전 8시 40분이었다. 차 시간을 오전 7시 40분으로 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여섯 살 아이는 9시간 이상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셈이 된다.

어른들도 8시간 노동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못할 짓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아이에게 그런 못할 짓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그 일자리 앞에 망설였던 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였다. 왜냐? 아직은 실업급여로 살 만했으니까. 그래서 고용센터 직원의 조언에 따라 호기롭게 거절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실업급여도 끝난 상태였다. 가계의 어려움이 곧 닥쳐올 터였다. 점장을 앞에 두고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빅매치를 겨뤘다.

'그래도 110만 원은 너무 하잖아!'
'여기서 일하면 다른 데 갈 때 유리하다잖아!'

갈등하던 비굴한 구직자는 결국 악마의 손을 들어올렸다. 명품 브랜드의 속살을 보고 싶다는 옛 기자의 호기심도 저임금을 감내하는 데 한몫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냐는 점장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내일부터 당장이요."

(* 다음 회에 계속)


태그:#백화점 판매직, #감정노동,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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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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