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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전 두분이 암자를 가셨을때 어머니께서 우연히 찍으신 아버지의 멋진 모습
▲ 안양암에서 어머니 생전 두분이 암자를 가셨을때 어머니께서 우연히 찍으신 아버지의 멋진 모습
ⓒ 배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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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도저히 아버지께 용서를 빌지 못해서 서신으로 글을 드렸던 이후로 처음 글을 드려봅니다. 그때도 속을 많이 썩혀드렸고 지금도 여전히 속을 썩히는 아들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셨지요. 하지만 늘 늦으시면 집에 꼭 전화를 하셔서 귀가가 늦다고 이야기하시는 성실한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다만 "내 밥 묵고 간다" 한 마디 하시고 바로 끊으시는 '쿨한' 성격 또한 가지셨지요.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시절 떠나신 할머니 초상을 치르시고 도저히 그 집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20여 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시는 연약함도 지니셨습니다. 중학교 절친한 친구의 보증을 서준 것 때문에 모든 가산을 날리셔도 집만은 지켜야 한다면서 그 많던 자산을 모두 처분해서 집을 지키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신께서는 뇌출혈로 쓰러지시게 되었고 그나마 기적적으로 소생을 하셔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쓰러지셨을 때 의사는 저와 어머니께 힘들다는 말과 함께 의식을 회복하셔도 5년이 한계일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셨고 5년이 넘은 지금에도 잘 계십니다.

하지만 그때 의사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충격을 받은 내용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이전에 쓰러지셨을 때 이미 중추 신경은 모두 끊어졌는데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을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권고사직을 당하신 후에도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이것저것 장사를 하셨던 아버지는 정상적일 수 없는 몸으로 힘겹게 이끌어오셨다는 것을.

결국 당신께서는 지체장애 2급이라는 판정을 받으시게 되었지요. 그 넓어 보이던 당신의 등. 목욕탕에서 지금은 너무나도 많이 마르고 작아진 당신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행여 들으실까봐 소리 죽여 흐느낄 때, 당신께 너무나도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가족 이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으시지요? 그래도 아버지께서 아직도 제게 전화를 해서 잘 지내냐고 물으실 때마다 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는 발음이 명확하지 않으시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도 잘 이해를 못하시지만, 그래도 지난 이야기,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러면 당신께서는 웃기도 하고 뭐라고 이야기도 해주시지요. 오히려 제가 어릴 적 말씀 없으시던 아버지보다 지금의 아버지 모습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체장애' 아버지, 조금만 더 보답할 기회를 주세요

할머니 산소를 뜻하지 않게 몇 번이나 이장을 하게 됐죠. 마지막 이장 때 전화를 하셔서 "너희 할머니 또 이장하신다"란 말 이후로 말없이 들려오던 아버지의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하였지요. 이후 아버지는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한다고 누차 말씀하셨지만, 어머니께서 떠나셨을 때는 왜 고향으로 안 모시냐고 몇 번이나 중얼거리셨지요. 결국 나중에 아버지와 같이 모시기 위해서 잠시 여기 납골당에 모시기로 했다는 저의 거짓말에 당신께서는 마냥 우시기만 하셨지요.

지금 와서 말씀을 드리지만 당신께서 제일 좋아하는 며느리는 어머니가 떠나신 날 장례식장에서 저와 상의도 않은 채 누님께 서울 집을 모두 정리하고 아버지를 모시겠노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며느리는 정말 잘 보신 듯합니다. 하지만 누님께서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큰 딸인 내가 모시겠노라고 해서 지금 큰누나와 같이 계시는 거랍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자식들은 정말 잘 키우신 듯합니다. 딸 셋과 아들 하나지만 자식들은 다들 서로 사랑하며 위하며, 아버지께 잘 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식들이 올바른 생각으로 열심히 살게 만들어주신 점은 정말로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제일 죄송한 것은 손주 하나 안겨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저희가 아이를 더 이상 가지지 못한다고 할 때에도 당신께서는 저희들에게 "너희들끼리 재밌게 잘 살면 안 되겠냐"고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을 그만 하라고 이야기해주셔서 저는 당신 앞에 무릎 꿇고 펑펑 울었습니다. 마음 써주심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명절 때마다 조카들의 아기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냥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버지, 저는 두렵습니다. 어머니 떠나시고 아버지께서도 떠나시면 저는 어찌 살까요? 당신이 바라신 대로 열심히는 살 것입니다. 당신께서 힘들어 하실 때마다 그래도 좀 더 계셔 주시기를 바라는 저의 욕심은 정말 못된 것일까요?

어느 날 당신께서 저희들을 잊으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도 마냥 두렵기만 합니다. 아버지, 그래도 전화를 드릴 겁니다. 좋아하시는 홍시와 크림빵을 사들고 갈 겁니다. 당신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보답을 아직도 다 못한 자식으로서 마냥 죄송할 뿐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가 보답할 기회를 주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아들이.

덧붙이는 글 |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사 공모' 응모 글입니다.



태그:#아버지, #아들,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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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마나님과 4마리의 냥냥이를 보필하면서 사는 한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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