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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 사랑에 절망하다

작년 연말, 그러니까 2012년 12월 한 달 동안 내가 마신 술의 양이 얼마였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분리수거를 하는 날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술병을 쓸어 모아 나갔더니 같은 동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내게 혹시 술 장사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2012년을 보내는 마지막 한 달 동안 나와 남편은 거의 매일 술병을 끼고 살았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으로 술을 마신 것은 남편이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독작, 자작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호응하며 그 절망스런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사실 술을 마시기 위한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 마음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바로 사랑, 사랑이었다.

그 무렵, 나는 이전에 전혀 하지 않던 다른 일에 정신을 팔고 있었는 바, 그것은 다름 아닌 어떤 TV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만, 그 드라마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에 완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평소 나는 일이 늦게 끝나기에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으며 봐도 한국 드라마보다는 미국드라마, 그것도 법정 스릴러나 형사물을 즐겨보곤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그러니까 정말 우연히 이 세상 현실 속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빠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냥 그들에게 '빙의'되고 말았다. 사실 그 드라마는 시청률도 매우 낮은 별 인기 없는 드라마인데다가 주연들도 스타급이 아니었다. 솔직히, 남녀 주연 모두 그 드라마에서 처음 본 배우들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이 지옥같은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개탄하는 남편의 옆에 앉아 몰래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며, 다시는 오지 않을 나의 젊은 시절과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초현실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의 꿈에 울고 웃었다. 시청자 게시판에 소감을 남기고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들락거리며 글을 쓰는가 하면, 나의 생각과 맞지 않는 전개를 보이는 작가와 제작진을 욕하고 개탄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급기야는 나의 기대와 전혀 다른 결말을 향해 가는 그 드라마의 시청을 그만두고 내가 결말을 써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나만의 드라마를 쓰던 어느날, 나는 결국 나 혼자만의 놀이를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잠도 안 자고 아침에 일어나 도대체 뭐하냐며 캐묻고 묻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쓴 '새로운' 드라마의 결말을 보여주고 만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남편에 비하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가.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요즘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참… 늙는 게 뭔지."

하며 남편이 내미는 책은 <은교>였다. 내가 한참 읽고 나서 책장에 처박아두었는데, 어느새 남편이 꺼내 읽은 것이다. 남편은 남자로서 <은교>의 남자 주인공격인 이적요가 진심으로 이해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영화 <은교>를 다운받아 보며 또 술을 마셨다.

위대한 사랑 이야기

2월달부터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겠노라고 결심했다. 늘 뭔가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꿈만 꾸다 만 것을 실천에 옮기고 싶었다. 그래, 진짜 쓰고 싶었던 것은 사랑 이야기이다. 연애 소설이다. 그것도 시시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러저러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사랑 이야기'를 구상해보고 싶었다. 늙음에 절망하며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던 지난 연말을 극복하게 해 줄 위대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로마의 스페인 광장이 인기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 일본 여행객들에게 '연애의 성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소설과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친 <냉정과 열정 사이>의 러브 스토리 때문이다. 그런 내게 남편이 골라준 소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의 죽음>이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임이 분명한  이곳 베네치아에, 작가로서 높은 명성을 이룬 중년의 독일인 아센바흐가 휴양을 온 것은 20세기 초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이었다.

젊음이 다시 온다면, 아마도 더 많이 사랑하리라.
▲ 열애중인 젊은 이탈리아 연인들. 젊음이 다시 온다면, 아마도 더 많이 사랑하리라.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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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금욕적인 생활 속에서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하던 그는 베네치아의 근교에 있는 리도 섬에서 여장을 풀고 휴식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하게, 아센바흐는 이 세상 사람같지 않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미소년 타치오를 보고 단숨에 사랑의 열병이 빠져버린다.

매일 아침, 그는 해변에서 노니는 타치오를 보기 위해 바닷가에 나간다. 그리고 이 금지된 욕망와 정열의 고통 속에서, 이 중년의 작가는 이전에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랑의 황홀경을 경험하고 절망과 희열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베네치아에 돌던 전염병의 기세가 맹렬해지면서, 타치오의 부모는 그를 안전한 다른 곳으로 데려가게 되고, 타치오가 떠나던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아센바흐는 병마와의 싸움을 뒤로하고 타치오의 마지막 모습을 가슴에 담으며 숨을 거둔다.

베네치아에서 사랑을 직시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베네치아에서는 이런 치명적이고 은밀한 사랑이 언제든 일어날 것만 같다.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성 마르코 광장으로, 그리고 아센바흐가 타치오를 처음 만났던 리도 섬으로 가노라면, 눈앞에 펼쳐진 베네치아의 믿기지 않은 아름다움에 온 몸이 경련을 일으킬 지경이다.

리알토 다리에서 본 베네치아.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 해질 무렵 베네치아의 풍경 리알토 다리에서 본 베네치아.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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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도 섬으로 가는 도중 몇 번이나 마주친 대형 유람선을 보니 영화 <타이타닉>도 생각이 났다. 그 영화가 아시아를 휩쓸고 다닐 때, 나는 티벳인들이 사는 골짜기에 있었다. 마을의 어느 가게에 틀어놓은 타이타닉 비디오에 티벳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상영을 했지만 그때마다 인산인해였다. 여자들은 디카프리오에게 완전히 반해버렸으며, 남자들은 타이타닉의 화려함과 여주인공의 미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미소년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열정과 할리우드 영화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가.

없다. 인간의 성적 본능에 기초한 환상과 욕망이라는 본질은 같다. 그것은 내가 빠져 있었던 드라마나 <은교>에서도 똑같이 발견되는 것들이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나의 사랑이 사실은 나의 욕망이며 자기애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실장님'과 '본부장님'이 나타나서 아무것도 없는 나를 사랑해 줄 수도 있다는 상상 속에 빠져 사는가. 아니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여신같고 조각같은 미모의 주인공들이 결국은 사랑을 이루는 그 장면에 만족하며 또 다른 드라마로 옮겨갈 것인가. 

<베네치아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소설답게 철학적이고 사변적이다. 요즘의 대중문화에서 볼 수 있는 달콤하고 행복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소설속의 소년 타치오는 그저 작가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 그렇기에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절망의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랑의 욕망, 그 본질이기도 할 것이다.

토마스 만의 소설 주인공이 바로 이 해변에서 미소년을 만난다.
▲ 리도 섬의 한가한 해변가. 토마스 만의 소설 주인공이 바로 이 해변에서 미소년을 만난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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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내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토마스 만과 같은 대문학가들도 결국 나와 같은 고민을 했나 보다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금욕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삶, 억압된 사랑과 성적 본능,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과거형으로 남겨졌을 때의 허무함과 아픔,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버릴 수 없는 꿈, 바로 사랑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희망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파멸이 아닌 구원의 사랑

며칠 동안 인터넷을 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켜 보니 놀라운 뉴스가 포털을 도배하고 있었다. 바로 청와대 대변인의 성희롱 사건이었다.

본인들에게는 악몽같은 일이겠지만, 윤창중 스캔들을 보며 사랑과 성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또 다른 정치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시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변양균 전 실장이다.

참으로,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다. 사랑, 성 그리고 이성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가 말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혹은 정치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그 가족들을 슬픔과 상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급기야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생명까지 희생하게 만든, 이 파괴적인 열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권력과 야망, 환상과 욕정이 뒤엉키고 거기에 언론과 일반인들의 선정적인 호기심까지 합세하여, 윤창중 사건도 희대의 스캔들이 되어가는 듯하다. 아마도 <은교>와 <베네치아의 죽음>에서 주인공들이 그들의 사랑을 이루었다면, 이렇게 참고 보기 힘든 스캔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도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젊음에 대한 질투와 환상으로 미모의 젊은이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그런 이야기는 안 될 것 같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도 아니고 현실가능하지도 않으므로. 이제 이탈리아를 떠나며, 사랑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발견한 것은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우리 40대, 50대들의 사랑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 무엇에 정열을 바쳐야 할까.

갑갑한 현실에 한 줄기 희망을 준 사람, 조용필의 '걷고 싶다'를 들으며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구상해 보아야겠다. 베네치아를 떠나며.

덧붙이는 글 | 이탈리아 실시간 여행기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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