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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이 24일 외교부에서 한ㆍ미 원자력협정 제6차 수석대표 협상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한미 원자력협정 만료시한을 2년 연장키로 하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저농축 우라늄 자체 생산권리 확보 등 한미 양국의 입장차가 큰 상황에 대해 오는 6월부터 3개월에 한 번씩 수석대표간 정기적 협상을 통해 협상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결과 발표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이 24일 외교부에서 한ㆍ미 원자력협정 제6차 수석대표 협상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한미 원자력협정 만료시한을 2년 연장키로 하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저농축 우라늄 자체 생산권리 확보 등 한미 양국의 입장차가 큰 상황에 대해 오는 6월부터 3개월에 한 번씩 수석대표간 정기적 협상을 통해 협상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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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 원자력계가 미국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해온 원자력협정개정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이른바 '핵주권론'을 내세운 근거는 "사용후핵연료가 포화되어 재처리가 불가피하다", "건식재처리(pyroprocessing)는 기존 재처리와 달리 순수플루토늄을 분리하지 않으니 이는 핵확산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미국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가 집권후 야심차게 추진했던 첫번째 외교정책은 결과적으로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미국과의 원자력협정개정 결국 '무산'  

정부와 원자력계가 보수언론의 압도적 지지여론을 업고 진행한 '비확산성'과 '불가피론'이 왜 미국 정부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사실 미국 정부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하여 핵확산문제에 대한 기술적인 검토는 에너지부(DOE) 및 산하 국립연구기관들이, 외교적 검토는 국무부(DOS)가 담당하고 있다.

이중 에너지부와 브룩헤븐국립연구소(BNL)등 산하 6개 국립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이미 지난 2008~2009년에 한국정부가 요구하는 건식재처리가 기존의 습식재처리와 사실상 다르지 않으며 핵확산 위협이 된다는 기술적 검토를 내린 바 있다.

이들의 공동검토결과는 지난 2009년 <대안적 핵재처리방안의 핵확산위험 저감연구 (Proliferation Risk Reduction Study of Alternative Spent Fuel Reprocessing)>라는 보고서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보고서의 결론은 '건식재처리'를 포함한 W, X, Y, Z등급에 있는 모든 재처리 기술들이 이용주체가 국가일 경우 핵확산 위협을 초래하며 기존 습식 재처리가 안고 있는 핵확산위협과 사실상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가수준에서 이 기술을 이용할 경우 해당 국가가 기존 핵비확산체제(NPT)에서 탈퇴 후 수일에서 수주 안에 이 기술을 전용하여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는 기술적 판단이다. 또한 핵무기용 플루토늄으로 전용하는 시간은 NPT 탈퇴 이전에 국가적으로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만 이 보고서는 테러단체 등 비국가 수준의 경우 이 기술을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목적으로 전용하기 위해 동원가능한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핵확산 위협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렸다.

용어설명
건식재처리(pyroprocessing) : 프랑스와 일본에서 상용화된 기존의 재처리방법이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할 때 질산용액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습식재처리'로 구분되는 반면, 건식재처리는 질산용액 대신 전기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건식재처리'로 명명되었다.

건식저장(dry cask storage) : 원전의 임시저장수조가 냉각수 공급을 통한 '습식저장'인 반면 건식저장은 사용후핵연료를 금속저장용기에 넣어 자연대류로 냉각하는 저장이며, 대부분의 원전국가에서 중간저장방식으로 채택되어 있다.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는 건식저장에 이용되는 금속용기의 설계수명을 50년, 실제수명을 약 100년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국무부 역시 2년전 한국이 요구하는 건식재처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국무부 리챠드 스트랫포드(Richard Stratford) 핵안전 및 안보국장은 지난 2011년 3월 카네기재단이 개최한 핵확산 정책세미나에서 "건식재처리는 (기존) 재처리와 같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Pyro-processing is reprocessing. Period. Full Stop!)"라며 매우 분명한 어조로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밝혔다.

그는 과거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국립연구소들에서 건식재처리연구에 한국의 참여를 허용할 때만 하더라도 건식재처리의 핵확산성 여부가 불명확했으나 2008-2009년 기간동안 에너지부의 검토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 원자력계와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재처리 불가피성의 근거로, "2016년부터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수조가 포화되며, 누적 사용후핵연료가 2100년에 지금의 10배인 11만톤으로 증가하여 8제곱킬로미터의 최종처분장이 필요해 이를 저감시키기 위해 재처리를 해야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까지 시범(prototype) 건식재처리시설을 건설하고, 이후 다시 10여년 후 상용화하여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 역시 협정 상대방인 미국은 물론 상업용 규모의 재처리를 하고 있는 일본의 경험과 전혀 맞지 않아 애초부터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이 핵재처리에 대한 규제를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 1974년 도카이 시범 재처리시설을 건설했지만 1981년까지 제대로 된 가동을 해보지 못했다. 또한 애초 상용화 재처리시설의 건설을 1985년으로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2006년에야 완공되었다. 시범시설의 건설에서 상용시설의 실제 건설까지 무려 32년이 소요된 셈이다.

일본의 경험을 볼 때 이미 50년 이상의 경험이 축적된 기존 재처리기술의 상용화 기간도 최소 30년이상이 소요된 상황에서, 아직 기초적인 연구수준의 건식재처리 기술로 당장 2016년부터 포화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한다는 논리는 모순이다. 게다가 일본은  상용화규모의 재처리시설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용후핵연료 포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기사 : 박근혜 정부 에너지 정책, '원자력협정개정' 뿐인가

그림1. 일본이 건식재처리 옵션을 추가했을 경우 필요한 핵시설면적 평가 (참조: Tadahiro Katsuta & Tatsujiro Suzuki 2007)
 그림1. 일본이 건식재처리 옵션을 추가했을 경우 필요한 핵시설면적 평가 (참조: Tadahiro Katsuta & Tatsujiro Suzuki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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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 역시 지난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세계원자력파트너십 정책을 천명한 2005년 직후 건식재처리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현재 일본 원자력위원회 위원장대리인 스즈키 다츠지로 박사의 당시 연구결과에 따르면, 건식재처리시설 자체로 인한 부지와 폐우라늄 저장부지만 감안하더라도 5.1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이 추가적으로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직접처분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부지가 필요하게 된다.

재처리 없이 직접 처분할 경우 50년 중간저장한 사용후핵연료의 경우 8.3제곱킬로미터의 처분부지가 필요하지만, 100년정도 중간저장할 경우 자연적 방사성 반감기를 감안할 때 필요한 최종 처분부지 면적은 불과 0.8제곱킬로미터로 줄어든다(그림 1 참조).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다.

여론 오도한 정부와 원자력계

세계 최대 원전보유국이자 원자력협정 상대방인 미국 역시 지난 1974년 인도의 핵실험을 계기로 해외는 물론 자국내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중단시킨 바 있다. 더욱이 미국은 이미 폐쇄된 원전부지가 10여개에 달하는 상황이라 부지에 남아있는 사용후핵연료의 보안문제 등이 우리보다 더 시급한 상황이다(그림 2 참조).

또한 미국 의회에 따르면 향후 2050년까지 70여개의 원전부지가 폐쇄될 전망이기 때문에 만약 재처리로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미국이야말로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러나 미국에서 재처리 재개 주장은 찾아볼 수 없으며, 사용후핵연료의 실제 관리는 자연대류냉각을 적용한 건식저장(dry cask storage)을 적용하고 있다.

그림2. 미국내 폐쇄된 원전부지와 사용후핵연료 저장현황 (단위: 톤) (참조 :'Blue Ribbon Commission Report, 2012')
 그림2. 미국내 폐쇄된 원전부지와 사용후핵연료 저장현황 (단위: 톤) (참조 :'Blue Ribbon Commission Report, 2012')
ⓒ 석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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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박근혜 정부의 '핵비확산론'이나 '불가피론' 모두 국내에서만 통했을 뿐 미국의 전문적인 평가와 경험을 비춰볼 때 애초부터 통할 수 없는 논리였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민 여론을 오도한 박근혜 정부는 정권초부터 국내외에서 체면을 구겼다. 무엇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국내 원자력계가 정부에게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전달과 조언을 해왔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만약 건식재처리의 '비확산론'이나 '불가피론'을 지속할 경우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핵개발을 위한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낙인찍히면서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향후 박근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태그:#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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