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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9돌이 지나 10살이 된 우리 집 개, 깜지가 책을 읽는다.
 며칠 전 9돌이 지나 10살이 된 우리 집 개, 깜지가 책을 읽는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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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개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이고, 서당 개 삼 년이면 글을 읽는다더니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우리 집 개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며칠 전 9돌이 지나 10살이 되는 시츄 종으로 이름은 깜지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탄핵안이 가결 되던 날 집에서 기르던 어미 개 쁘띠로부터 태어났다. 집에서 태를 자르고 산파노릇을 해 받아낸 5마리 중 셋째로 태어난 암놈이다.

책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책장 앞에서 두런두런 책을 고른다. 오늘은 무슨 책은 읽지?
 책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책장 앞에서 두런두런 책을 고른다. 오늘은 무슨 책은 읽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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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이렇게 앞발로 콕 집는다. 책장 제일 위 칸 왼쪽으로 보이는 무경십서에 실린 손자병법을 우리집 깜지도 300번 이상은 본듯싶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이렇게 앞발로 콕 집는다. 책장 제일 위 칸 왼쪽으로 보이는 무경십서에 실린 손자병법을 우리집 깜지도 300번 이상은 본듯싶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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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 반지, 콩지, 람지… '지'자 돌림으로 이름을 짓다 머리 부분에 검은 무늬가 있어서 '깜지'가 됐다. 한 미모 하는 어미에 비해 훨씬 못생겼지만 하는 짖은 더할 나위 없는 애완견이다. 정말이지 움직이는 애교 덩어리다. 집을 나드는 사람들을 반기는 것은 물론 뽀대(뽀뽀 대장)라고 부를 만큼 수시로 뽀뽀를 해대며 아양을 떤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건 기본이고 가끔은 벌렁 드러누워 네발을 허우적대며 재롱을 피우기도 한다. 먹이를 공격하는 맹수처럼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가슴을 거의 땅바닥에 붙이고 살금살금 기는 모습은 무시로 가져다주는 웃음거리다.

우리 집 개, 깜지가 책을 읽는다.

그런 깜지가 얼마 전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가·갸·거·겨…' 거리며 한글 공부를 하더니, '2x1=2, 2x2=4'하며 구구단 공부도 했다. 그러더니 요즘은 동음이의어 한자공부를 한다고 자랑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지난 5년 간 멍멍거리며 역사공부도 쬐끔하고, 두 글자로 들리는 한자공부도 했다. 얼렁뚱땅 들으면 그냥 멍멍거리는 개소리로 들리지만 신경을 써서 들으면 '명박(命薄, 운명이나 팔자가 기구하고 복이 없다)'거리는 하소연이다.

어떤 한자를 동음이의어로 공부하느냐고 물었더니 '멍·멍·멍 하고 대답을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해 답답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더니 붓글씨를 쓰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턱을 책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봐 졸린 모양이다. 그래도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다.
 턱을 책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봐 졸린 모양이다. 그래도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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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척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눈을 꼭 감고 자고 있다. 깜지야! 그냥 벌렁 드러누워서 잔다고 뭐라고 그럴 사람 없으니 편하게 자렴.
 책을 읽는척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눈을 꼭 감고 자고 있다. 깜지야! 그냥 벌렁 드러누워서 잔다고 뭐라고 그럴 사람 없으니 편하게 자렴.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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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고 있는 꼬리를 따라 글자꼴을 맞춰봤더니 '대통령'이라고 읽는 한자들이다.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몇 번 씩이나 묻기를 반복하며 해독해보니 대통령이라고 발음되는 세 가지 한자를 또박또박 그려낸다. 열심히 쓴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개발새발이다. 이왕 치는 뻥, 조금 더 보태면 멍멍거리는 소리로 번역도 해준다. 

동음이의어 '대통령' 

1. 대통령(大統領,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
2. 대통령(待慟囹, 통곡하며 감방살이할 날을 기다림)
3. 대통령(釱慟囹, 차꼬를 차고 통곡하며 감방살이를 함)

문법적으로 맞는 건지 틀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어떤 사람의 운명을 점치기라도 하듯 그럴싸하게 설명한다. 아, 그러고 보니 정치와 시사에도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또 물어봤다.

햇볕 아래서 책을 읽다 졸리면 슬쩍 드러눕는다.
 햇볕 아래서 책을 읽다 졸리면 슬쩍 드러눕는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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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눈을 감았다. 가끔 잠꼬대를 하기도 하고 드르렁 거리며 코도 곤다.
 완전히 눈을 감았다. 가끔 잠꼬대를 하기도 하고 드르렁 거리며 코도 곤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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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어떤 사람 운명을 말하는 거니?
깜지: 멍(네)
: 그럼 지금 그 사람 운명은 어디에 해당돼?
깜지: 멍멍(두 번째). 멍·멍, 멍·멍·멍(각종 고소고발로 조사를 기다리고 있잖아.)
: 그러면 그 사람 운명이 언제쯤 세 번째로 넘어가?
깜지: 멍·멍·멍·멍·멍(멀지 않았어. 지금까지 기다린 거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그냥 개소리로 넘겨야 하는지 아니면 기다려 봐야 할 역사적 필연인지는 각자의 몫이라는 말도 보탠다. 개가 개소리를 해도 저런 개소리를 하는 걸 보니 우리 집 깜지에게도 지난 5년은 명박한 세월이었나 보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감옥을 가는 날이 대한민국의 사법이 살아있는 거'라고 말했다. 우리 깜지가 얼토당토않게 개소리를 하는 건지 아니면 다가올 소식을 미리 전하는 건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거다. 그때쯤이면 우리 깜지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은 '사필귀정'과 '자업자득'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피식하고 웃었다.

개가 멍멍거리는 개소리로 '대통령'을 말했다고 하는 만우절 헛소리를 두고 국가원수모독죄에 걸려고 죽자고 달려드는 건 아니겠지? 개가 어느 사람의 운명을 개소리로 점치고 있다는 걸 우스갯소리로 전하고 싶은 '만우절'이다.


태그:#만우절, #깜지, #시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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