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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장에서 흰눈을 뒤집어 쓰고 맛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황태.
 덕장에서 흰눈을 뒤집어 쓰고 맛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황태.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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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워하면 지는 거'라고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필자 주변만 해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단순한 여행일지라도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니 2년간이나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의 2년은 먹거리 찾아 삼천 리, 맛 찾아 삼만 리다.

박정배 지음, (주)도서출판 한길사 출판의 <음식강산>은 두 권, ①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와 ②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로 각각 출간되었다.

'선비고기 문어'에서 '만만한 홍어좆'까지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는 부제를 달고 있는 ①권은 동해안 꼭대기에서부터 시작해 남해와 서해에서 찾을 수 있거나 맛볼 수 있는 바닷고기가 재료가 되는 음식들에 대한 식객의 발걸음이다.

어디 가면 어떤 음식이 맛있고, 어느 식당이 맛집이라는 식으로 단순히 음식과 식당만을 소개하는 게 아니다. 바닷고기가 뒷배처럼 가지고 있는 전설과 유래가 실타래처럼 담겨 있다. 식당의 역사와 먹거리에 담긴 이야기들이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다가오는 뒷맛처럼 풍미를 이룬다. 

<음식강산>①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표지 사진
 <음식강산>①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표지 사진
ⓒ (주)도서출판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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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대구, 바다장어, 민물장어, 전어, 홍어, 과메기, 도루묵, 명태, 꼬막, 굴 어느 것 하나 생소할 게 없다. 흔하게 들을 수 있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바닷가 어물들이다. 저자는 2년 동안 우리나라 바닷가 삼면을 찾아다니며 맛과 먹거리에 얽힌 이야기들을 꼬막을 캐듯이 찾고, 육수를 우려내듯이 우려 엮었다. 맛집은 꼬막을 캐듯이 찾았을 거며, 유래나 뒷배 이야기들은 그물이나 주낙으로 고기를 잡아 올리듯이 거둔 게 역역하게 느껴진다.

홍어는 암놈이 크고 맛있다. 수놈은 작고 거세다. 수놈의 작고 긴 두 개의 생식기는 그래서 '루저'의 표상이다. 뱃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수놈의 생식기를 떼어버렸다. '만만한 게 홍어좆'이란 역사상 최악의 남성 비하 속어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영산강 사름들에 의하면 옛날 장터에서 홍어를 팔던 사람들이 손님들에게 몸통 살을 주기는 아까워 별 가치 없는 홍어좆을 맛보기로 주었단다. 이래저래 그야말로 홍어좆은 별볼일 없었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다. 정력에 좋다는 속설이 그 위상을 조금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암놈과 수놈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극명하다. - 음식강산 ①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225쪽 - 

홍어는 물론 소, 돼지, 흑염소, 닭, 도루묵, 꽃게 등 대부분의 동물성 식재료에서는 암놈 고기가 맛이 있다. 하지만 대구만큼은 수놈 고기가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입이 커서? 아니다. 대구 수놈에게만 있는 '이리' 덕이라고 한다.

문어(文魚)라는 이름에는 문어가 살아가는 생태계와 문어의 민머리 모양이 풍자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니 세치 혀로는 느낄 수 없는 감칠맛 같은 읽는 재미다.

전어 먹는 방법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구이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 굽는 냄새를 우리는 가을전어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일본인은 시체 타는 냄새로 여겨 싫어한다. 거기에는 전설이 있다 전어를 지칭하는 일본어 '고노시로'子の代는 직역하면 '아리를 대신한다'는 의미다. 옛날 일본 중부의 어느 지방에 한 농민이 살았는데, 영주가 자신의 어린 딸을 데려가려 하자 관 속에 전어를 넣고 태움으로써 딸이 죽어 화장하는 것이라고 위장한다. 고노시로라는 이름은 거기서 연유했다고 한다. 독특한 전어 타는 냄새 때문에 생긴 전설임을 알 수 있다. - 음식강산 ①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183쪽 - 

같은 전어를 놓고도 한국과 일본에서 이렇듯 다르게 취급되고 있는 건 음식이 가지고 있는 맛 자체를 뛰어 넘는 유래나 전설이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바다의 맛을 찾는 식도락가 발걸음은 맛있고, 식당가를 서성이는 식객의 마음은 나그네의 설레임이다. 

잔치국수에서 칼국수까지... 오색빛깔 국수 이야기

돌잔치, 환갑잔치, 결혼음식상에서 빠지지 않는 국수는 장수를 상징한다.
 돌잔치, 환갑잔치, 결혼음식상에서 빠지지 않는 국수는 장수를 상징한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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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1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분가한 자식들이 찾아오면 20년이 넘게 해주던 특별 메뉴는 칼국수와 꽁보리밥이었다. 자식들이 찾아오면 어머니는 주섬주섬 콩가루를 넣어 밀가루 반죽을 한다. 그리곤 거실 반쯤을 차지하는 커다란 마분지를 깐다. 마분지 위로 널찍한 안반을 올려놓고, 어른 키 만한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기 시작한다.  

노련한 솜씨로 홍두깨를 슬슬 굴려가며 쓱쓱 밀면 둥그스름했던 반죽 덩어리가 둥그런 모양으로 점점 펴진다. 반죽들끼리 달라붙지 않도록 마른 밀가루를 술술 뿌려가며 홍두깨로 밀기를 몇 번 반복하다보면 반죽덩어리는 어느새 얇은 멍석을 펼친 양 커져있다. 마른 밀가루를 다시 한 번 술술 뿌리고 차곡차곡 접어서 안반 위에서 칼질을 한다. 먹을 게 없었던 시절에는 국수를 썰다가 남겨주는 국수꽁댕이를 화롯불에다 구워먹기도 했었지만 국수꽁댕이를 구어 먹어 본 기억은 정말 까마득하다.

이제 차곡차곡 접혀있는 칼국수를 훌훌 풀어서 끓이기만 하면 된다. 삶은 국수가 가득히 담긴 대접에 파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 한 숟가락 넣고 후후 불어가며 먹던 칼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어머니의 특별 메뉴였다.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음식강산> ②는 국수 맛이며 국수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잔치국수서부터 국민 음식이 된 짜장면, 콩국수, 막국수, 고기국수, 밀면, 평양냉면, 함흥냉면, 칼국수에 담긴 맛과 전설을 잔칫상처럼 차렸다. 

<음식강산>②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 표지 사진
 <음식강산>②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 표지 사진
ⓒ (주)도서출판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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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가 왜 아이들의 돌잔치에서부터 어르신들의 환갑잔치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되었을까? 어떤 연유로 '결혼 언제 할 거냐'라는 말 대신 '국수 언제 먹여줄 거냐'라는 말이 나왔을까? 국수가 잔치 음식이 된 연유는 오래전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말이 있다. 오래 산 사람의 상징인 동방삭(東方朔, 기원전 154~93)은 18만 년을 살았다는 도교의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는 중국 한무제 때의 대신이었다. 유머 있고 재주 많은 그와 한무제에 관한 일화에서 국수가 수명을 길게 하는 잔치 음식으로 처음 등장한다.

어느 날 한무제와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수長壽가 화제에 올랐다. '얼굴이 길면 장수한다', '인중이 길면 장수한다' 등의 이야기가 분분했다. 동방삭이 인중이 길어 장수한다면 800세를 산 팽조彭祖라는 신선의 얼굴은 얼마나 길까?라고 하자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여기서 얼굴面과 동일한 발음인 면麵도 길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자연히 그 면을 먹으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때부터 잔치 때 먹는 면을 장수면長壽麵이라 불렀다. - 음식강산 ②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 28쪽 -

춘천 막국수, 대전 칼국수, 서울 시청 뒤 콩국수 집, 인천 차이나타운, 부산 지게골역 근처 밀면집, 속초, 백령도, 안동, 제주도 고기국수집까지를 두루 누볐으니 국수를 찾아 나선 저자의 발걸음은 단연 전국구다.

살펴서 찾고, 찾으면 먹었다. 그리고 맛에 곁들일 수 있는 이야기들은 꾸미를 얻듯 곁들이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은 후식으로 나오는 음식을 챙기듯 따로 챙겼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고 하지만 읽어서 손해 볼 게 없는 <음식강산>이니 부러워해도 좋다. 저자처럼 전문적인 식객은 되지 못해도 맛과 음식, 음식과 식재료에 담긴 뒷배까지를 소소히 아는 저자가 직접 먹어보고 소화시킨 결과물이니 책으로나마 챙길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책에 소개된 어딜 방문하게 되었을 때, 멋진 맛집 한군데 정도를 알게 된다면 그게 남는 게 될 것이다. <음식강산>에서 소개하고 있는 어떤 음식을 먹을 기회가 왔을 때, 함께 식사할 사람들이 함께 느끼거나 음미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챙긴다는 건 스토리텔링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좌중을 아우를 수 있는 히든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음식강산>①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음식강산>②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지은이 박정배┃펴낸곳 (주)도서출판 한길사┃2013.1.30┃값 각 1만 8000원



음식강산 1 -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박정배 지음, 한길사(2013)


태그:#음식강산, #박정배, #한길사, #홍어,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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