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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우리는 친구가 가져온 귤도 까먹고 차도 마셨습니다.
▲ 현대중공업이 가까이 보이는 산 위 산 위에서 우리는 친구가 가져온 귤도 까먹고 차도 마셨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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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생식기에 암이 생겨서 얼마 전에 수술했다. 요즘은 일주일 한 번 항암치료하고 있고…."

아내가 딸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이 있습니다. 큰 창문 하나만한 검정색 종이에다 생일을 축하한다며 재밌게 꾸며준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선물을 코팅해 평생 간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래저래 찾아봤지만, 그렇게 큰 종이를 코팅할 만한곳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봤습니다. 그 친구는 제 중학교 동기입니다.

그 친구는 간판업을 하는데, 전화로 혹시 코팅은 아니더라도 비닐을 씌워 딸의 작품을 오래도록 보관하게 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친구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근할 때 딸의 작품을 가져가 오전에 잠시 만났습니다. 그러더니 친구가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업무용 트럭을 몰고온 친구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많이 수척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가 암 수술을 해서랍니다. 친구 이야기 들어보니 다행히도 전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술은 힘들었답니다. 저는 그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남성의 정낭에도 암이 생길 수 있음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친구는 수술을 통해 암 덩어리를 긁어냈고, 현재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항암치료는 방사선 치료와 함암제 투여 두 가지가 있는데 방사선 치료를 하면 좋지만 치료비가 비싸 약물치료를 하고 있답니다. 친구는 간판업을 하지만 크게 하는 게 아니라 근근이 가족생계를 책임질 정도입니다. 수술비·병원비가 모자라 지인들이 후원금을 모아 지불했다고 합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먹고살기가 더 힘들어 집니다. 가난할수록 병 걸리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는 가정 경제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거동하기조차 힘든 것 같은데 간판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수술 후 친구는 소변을 참지 못합니다. 소변도 자주 마렵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마음이 여립니다. 누구 부탁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힘들면서도 제게 왔습니다. 딸이 만든 작품의 보호 비닐을 만들어주려고 말입니다. 친구 이야기를 듣고나니 미안하면서도 고마웠습니다. 이런 좋은 친구를 둔 것은 제 인생의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친구가 페이스북에 산행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걷기운동을 자주 하면 항암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답니다. 지난 17일 오전 9시 남목산 길을 걷기로 했답니다. 저도 같이 가겠다고 하니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창기야. 약 20분 정도 늦어질 것 같다. 어젯밤 미등을 켜뒀나봐. 방전됐다. 그거 처리하고 갈께."

우리는 오전 9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조금 늦어진 시각에 만났습니다. 친구는 작업용 트럭을 몰고 왔습니다. 우린 걷기로 한 산길이 있는 곳까지 트럭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남목서 주전가는 길은 산위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우린 산위에 트럭을 세워두고 입구로 갔습니다. 또 한 사람의 동행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교사라는 그분을 친구는 형이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셋이서 산길을 걸었습니다.

친구는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습니다. 중학교 교사는 산행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교조 교사라 그런지 교육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 통하는 게 있었습니다.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 거든요. 현대차에서 지난 2000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10여 년을 다니다 정리해고 당한 비정규직입니다. 지금은 부당해고 투쟁을 하면서 일용직 일자리를 얻어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멀리 보이는 '죽음의 공장'

주전 넘어 가는 길 산속에 있는 절간에서 바라본 현대중공업 전경
▲ 일산지서 주전까지 길게 이어진 현대중공업 전경 주전 넘어 가는 길 산속에 있는 절간에서 바라본 현대중공업 전경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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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km 지점 되는 곳에 절간이 있어 그런지 산길은 좋았습니다. 어느 곳은 소방도로여서 걷기 좋았습니다. 남목에는 마성이란 게 있었습니다. 산위에 돌담을 길게 쌓아둔 게 보였습니다. 조선시대(1800년대) 말을 방목해 기르는 목장이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렀다가 바닷가 쪽으로 가니 현대중공업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몇년 전 대형 화물차 신호수를 할 때 자전거 타고 가던 길도 보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또다시 어느 하청노동자가 공장안에서 숨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올해 초 현대중공업 다니다 오래전 노조활동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하청노동자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돈 벌러 다니는 공장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하청노동자만 1년 사이 서너 명이 죽어나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2개월 정도 현대중공업 다닐 때,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 조건에는 대부분 하청노동자가 투입됐습니다. 안전 장치도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 샌딩을 하거나 용접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신체 특성이 있는데 그것이 완전 무시되고 오로지 작업 물량을 시간 내 맞춰 완성해야 하는 공정으로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들어가 일할 때 울산에서 활동하는 조성웅 노동시인이 현대중공업을 가리켜 '죽음의 공장'이라고 시를 지어 발표한 내용이 이해가 됐습니다.

후배들 산행모임에 우연히 참석한 친구. 맨 앞 왼쪽.
▲ 우연히 산속에서 후배들 산행모임에 우연히 참석한 친구. 맨 앞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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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대중공업이 보이는 곳 산중턱에 앉아 친구가 가져온 건강음료와 귤을 먹었습니다. 거기서 잠시 쉬다 우리는 다시 다른 곳으로 걸었습니다. 이번엔 절이 있고 봉수대가 있는 곳으로 걸었습니다. 길을 가는데 평지가 있는 풀밭에 십수 명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후배들이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산행모임을 가져야 더 모일 것 같아서 마을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정했답니다. 후배들은 저를 몰라봤지만, 친구는 잘 알아봤습니다. 친구는 한때 동기회장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년차 후배들이 그를 잘 아는가 봅니다. 그들과 음식을 나눠먹다 우리는 먼저 일어났습니다.

절간에 이르니 높은 곳에서 바다가 보이고 그곳에서도 현대중공업이 보였습니다. 저는 봉화대는 들어 봤어도 봉수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물어보니 수자가 물 수가 아니라 연기를 가리키는 한자라 했습니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연기를 피워 무슨 내용을 알리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기에 전화가 생기면서 봉수대 역할이 사라졌다고 알림판에 적혀있었습니다.

아픈 몸으로 봉사활동까지... 친구야 함께 걷자

친구가 우리에게 봉수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 봉수대에 대해 설명하는 친구 친구가 우리에게 봉수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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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40분께부터 걸었는데, 집에 오니 정오가 넘었습니다. 친구가 몸이 아파 빨리 걷지 못했기에 쉬엄쉬엄 걸었습니다. 걷다가 힘들면 쉬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봉사활동을 해야 해서 걷기를 못할 것 같아요."

친구는 옆에 있던 형님께 그렇게 말했습니다. 친구는 오래전부터 독거노인 집수리 봉사활동 책임자로 일하기도 합니다. 10여 명이나 되는 봉사단의 책임자입니다. 그는 가장이라 가족의 생계도 책임져야 합니다. 게다가 봉사활동도 해야 하고 항암치료도 해야 합니다. 암은 재발하기도 하고 전이되기도 합니다. 5년 정도는 건강을 관리하면서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많이 수척해진 친구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친구가 건강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요일마다 친구는 걷기를 할 것이라 합니다. 다른 건 도울 수 없지만 일요일, 그와 함께 걸어주는 건 가능합니다. 그것이 그의 암 극복에 도움된다면, 건강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친구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친구가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더 많은 독거노인들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아직 친구는 인생길을 끝내면 안될거 같습니다. 열심히 운동도 하고 건강관리 잘해서 암을 극복하고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인생 길 아직 친구는 인생길을 끝내면 안될거 같습니다. 열심히 운동도 하고 건강관리 잘해서 암을 극복하고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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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산행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내려가는 친구를 뒤에서 바라봤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혼자 걷는 것보다 같이 걸으면 힘도 나고,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의 아픔이 사라지고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함께 걷고 싶습니다.

"친구야 많이 힘들지? 우리 함께 걷자. 힘들 때 함께하는 게 친구잖아. 다음에는 어딜 걸을 거니?"


태그:#암, #수술비, #간판업,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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