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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전기밥솥 사용해도 전기료 폭탄?'

정부가 13일 현재 6단계로 나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을 이르면 하반기(7∼12월)부터 3-5단계로 줄이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자 저소득층의 요금 인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책이 밥솥이나 정수기를 사용하는 서민들에게도 전기요금 폭탄을 안겨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전열기가 비교적 많은 전기를 소모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밥솥 사용도 전기 요금 폭탄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니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과 산업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2012년, 정부는 8월 4.9%의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2011년 8월 4.9% 인상, 2011년 12월 4.5% 인상에 이어 세 번째 인상안 발표였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는 2013년 1월 9일, 더 이상 요금 인상은 없다며 해명자료까지 내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정부는 평균 4% 요금인상안을 기습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권 5년 임기 동안 네 차례 19.6% 전기 요금 인상이 진행된 셈이다.

주택용 누진제 개편이 비판받는 이유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 단계별 비율 (자료 : 한전 정보공개청구)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 단계별 비율 (자료 : 한전 정보공개청구)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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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13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지경부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 방안은   지금까지 국민들이 요구해온 내용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고, 편법으로 요금을 올리면서 누진제 완화 생색을 내어보자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

지경부에서 내놓은 안은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 6단계 11.7배에 이르는 누진제를 3-5단계로 조정하고, 1단계와 마지막 단계 요금의 차이도 4-8배 정도로 축소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누진 1단계(50kWh), 누진2단계(150kWh), 누진3단계(250kWh) 사용하는 가정은 지금보다 각각 1984원, 421원, 2183원을 더 내야 하고 누진 4단계(350kWh), 누진 5단계(450kWh), 누진 6단계(601kWh)를 쓰는 집은 오히려 1456원, 3223원, 3만3470원 요금을 덜 내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누진제 완화가 반드시 저소득층이나 전기를 적게 쓰는 낮은 누진제 대상자의 요금 인상이 전제돼야 한다는 설명은 동의하기 힘들다. 누진제 단계를 축소하면, 거기에 맞게끔 누진 요금도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진제 단계만 축소하고 현행 요금 체계를 거기에 맞추려하니 낮은 누진제 대상자의 요금 인상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총수입은 고정시켜 두고 요금을 조정하다보니 발생한 일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위 표에 나타난 2012년 6월 전기 요금 현황을 살펴봐도 이는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전기를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하는 1,2,3단계 누진 대상자가 전체가구의 73.3%이다. 전기 사용량이 폭증하는 8월을 제외하면 4,5,6단계 높은 누진 대상자가 늘어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지경부에 개편안대로라면 우리나라 전체가구의 70% 이상은 누진제 개편이라는 미명하에 한달에 2천원-5천원 이상 오른 전기요금을 감당해야 된다. 지난 8월 에어컨 사용 등으로 전기요금 누진제 대란이 일어났을 때 국민적 요구는 누진제를 축소하여 요금을 낮추라는 것이었지, 높은 누진 단계를 조정하여 5,6단계 누진 대상자를 구제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1단계가 2단계로 되든, 3단계가 4단계가 되든, 전기요금 폭탄이 돌아오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누진제 개편안이 나오자 누진제 논의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요금 폭탄을 맞는 사람은 어차피 살만한 사람들이니만큼 저소득층 혜택을 늘리고 누진제를 그대로 두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동의하기 힘들다. 비록 낮은 단계 누진 요금 대상자가 전체가구의 70%에 달한다고 하더라도 에어컨, 전기담요, 전기난로 등을 사용할 경우 수십만원의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는 것이 누진제의 함정이다. 누진제를 고치려면 제대로 손을 봐야지, 누진제 논의 자체를 중단하자는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경부 내놓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왜곡된 누진제를 충분히 완화시킬 수 있다. 현행 1단계 전기요금이 6단계와  요금이 11.7배 차이가 나지만 그렇다고 1단계 사용요금이 절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아니다. 주택용 저압은 kWh당 59.1원으로 산업용의 겨울철 가장 저렴한 경부하 요금제 요금 kWh당 57.5원보다 오히려 요금이 높다. 누진제를 완화한다고 반드시 1단계 사용요금을 올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장 낮은 시간대가 kWh당 57.5원, 가장 높은 시간대가 kWh당 156.5원으로 차이는 3배가 되지 않는다. 주택용 누진제를 이 기준에 맞추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주택용 누진제 완화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주택용 전기료가 산업용이나 일반용에 비해 턱없이 비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전력사용량 및 전기요금 용도별 분포 (2012년 8월, 자료 : 한전 정보공개청구)
 전력사용량 및 전기요금 용도별 분포 (2012년 8월, 자료 : 한전 정보공개청구)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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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인상이 논의될 때 마다 기업들은 자기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볼멘소리를 해왔다. '교차 보조'(산업용 전기요금을 주택용 전기요금으로 메우고 있다는 주장)는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차례 인상에서 산업용 요금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타 용도 전기에 비해 저렴하고 교차 보조 의혹은 떨치기 힘든 상황이다. 위 표에 나타난 2012년 전력 수요가 가장 많았던 8월 전력 사용량 및 전기 요금 현황만 보더라도 이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전체 전기의 46.6%를 쓰고 전체 요금의 42.2%를 부담하는 산업용(을) 전기 요금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주택용에만 고통 전가, 바로 잡아야

맹렬한 한파로 전기 난방이 급증, 전력사용량이 기록적으로 증가한 1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전력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11시 평균 최대전력수요가 7652만 2000㎾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 한파로 전력수요 최대 맹렬한 한파로 전기 난방이 급증, 전력사용량이 기록적으로 증가한 1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전력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11시 평균 최대전력수요가 7652만 2000㎾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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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서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전기요금 인상. 정부는 한결같이 요금인상의 이유로 누적된 적자 개선과  전력 수급 불안정을 막기 위한 절전 대책의 일환이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한전의 적자 규모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전력 수급 불안정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지경부는 이번 누진제 개편안에 대해서도 요금 현실화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방안이 적자 해소에 얼마만큼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한전의 적자 누적 이유는 공급 방식, 전기 원가의 적절성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굳이 요금 체계의 문제로만 국한시켜 본다면 우선적으로 거론되어야 할 것은 대기업 등에 공급되는 산업용 요금이다. 산업용 값싼 요금은 손보지 않고, 언제까지절전 대책으로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만을 고집한다면 가뜩이나 주름진 서민경제에 부담만 가중될 뿐이다.

낮은 누진제 대상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주택용 전기 사용자를 편가르게 만드는 정부의 이번 누진제 개편안은 그런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전기 밥솥, 정수기 사용마저도 요금 폭탄이 될 수 있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출을 위해서, 경제를 위해 국민들이 희생하고 주택용 전기 사용자가 감내하라는 인식이 새정부에서는 바뀌었으면 한다. 요금 폭탄, 블랙아웃의 공포에서 벗어나고픈 서민들의 바람을 박근혜 정부가 귀담아 듣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태그:#전기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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