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표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혁명은 거기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들은 읽었습니다. 읽어버린 이상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쳐 읽은 이상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읽은 것은 굽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쓰기 시작해야 합니다. 반복합니다. 그것이, 그것만이 '혁명의 본체'입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사사키 아타루·자음과모음)은 박하사탕을 입에 넣었을 때 입안에 싸하게 박하향이 번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장을 열자마자 몇 구절 읽기도 전에 책에 반했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됐다. 첫째 밤-문학의 승리, 둘째 밤,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 셋째 밤,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무함마드 하디자의 혁명, 넷째 밤, 우리에게는 보인다-중세 해석자 혁명을 넘어, 다섯째 밤, 그리고 380만 년의 영원이 그것이다.

첫째 밤, 비평가와 전문가라는 두 가지 지(知)의 나쁜 현상에 대해, 또한 이런 지(知)의 존재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로서 '읽는 것'에 대해, 읽고 쓰는 기법의 일반으로서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둘째, 밤,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에서는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이다'이라고 적혀있다. 저자는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이라 한다. 루터는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으며 읽고 썼으며 번역하고 설교했다. 그는 또 노래하고 논쟁했다.

종이 생산량의 상승과 안경의 보급, 활자 인쇄술의 등장은 루터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그 유명한 95개의 반박문을 낸 그는 이겼다. 라틴어로 글을 읽을 수 있었던 사람은 1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었으나 '마치 천사 자신이 사자가 된 것처럼'그의 글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루터는 황제 카를 5세가 기다리는 보름스 국회의 소환에 응했다. 거기서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서의 증언이나 명백한 이유를 가지고 따르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내가 든 성구를 따르겠다. 나의 양심은 신의 말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이나 공의회는 자주 잘못을 저질렀고, 서로 모순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확실하기는 해도 득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작가 고토 메이세이가 '왜 소설을 쓰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어버렸으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혁명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루터는 문학자요, 사상 최대의 혁명가였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것,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 이야기하는 것을 둘러싼 혁명이고 언어에서의 언어 변혁이었다.

'셋째 밤,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무함마드와 하디자의 혁명'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무함마드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넷째 밤, 우리에게는 보인다-중세해석자 혁명을 넘어'에서는 유럽에서 발생한 12세기 최초의 혁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중세해석자혁명은 정보 기술혁명이었다는 것. '텍스트가 문서가 되고 텍스트가 정보의 그릇이 되는, 정보만이 법이나 통치, 그리고 규범과 관련된 것이 되는 혁명. 즉 데이터화할 수 있는 세계다. 다섯째 밤에서는 문학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스 철학, 그 0.1퍼센트의 승리, 즉 고전 그리스문학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99.9퍼센트는 사라지고 0.1퍼센트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리스 문화는 이슬람 문화를 키우고 유럽을 창출했고, 세계의 초석이 되었듯이.

"우리가 문자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문학, 이것은 은총입니다. 기적입니다. 흔해빠진, 몇 번이고 반복되어 온, 그러나 한없는 쇠퇴를 빠져나온 인류역사상 아름다운 꽃, 빛나는 섬광, 한순간의 기적인 것입니다."(본문 257쪽)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한 마디로 책 읽기가 곧 혁명이라 설파한다. 그들은 책을 읽었다. 읽고 말았다. 읽고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오늘도 여전히 읽은 자들이 있고 읽어버린 자들이 있기에 다시 쓰고, 고쳐 쓰는 일은 계속 된다. 읽어버린 이상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고쳐 읽은 이상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읽은 것은 굽힐 수 없다. 그렇다면 쓰기 시작해야만 한다. 그것이 그것만이 '혁명의 본체'다.

이 책에서 나는 저자가 말하는 혁명가들과 저자가 읽고 읽어버렸던 혁명가들보다는 저자한테 더 주목했다. 그 역시 책의 사람이고 읽은 사람 읽어버린 사감이기에, 그가 읽어버린 후 그의 삶엔 어떤 혁명과 변화가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저자가 말하고 그가 읽은 인물들을 통해, 그리고 저자가 조금씩 흘리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주목해 보았다.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인 저자는 책과 혁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 책에 담았다. 책을 읽고 읽어버리고 만 사람들의 책을 그는 읽었다. 그리고 그 글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에 이끌려 그대로 해왔다.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고 경박한 이 시대의 정보들을 차단하고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 과묵과 고독의 시간을 살았고 살고 있다. 그가 '회임'한 시간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읽고, 읽어버렸고, 고쳐 읽고 고쳐 쓰고, 쓴 것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회임'의 긴 과묵 끝에 깊은 우물에서 끌어올린 두레박에 담긴 정수처럼.

젊은 날 그는 깊은 침묵에서 니체의 글을 읽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하였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자기 아래로 조망하려고 하는 것에서 달아났다. 그저 책을 읽었다 읽고 말았다. 그가 '사고하고 쓰는 행위에 도전하려고 할 때 니체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읽고 말았습니다. 읽고 만 이상,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이상, 그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은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한 행의 검은 글자, 그 빛에"(본문 33~34쪽)

저자에게 큰 영향을 준 니체의 <서광>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오오, 여러분, 세계 정책의 대도회에 사는 가련한 이여! 여러분. 젊고 재능이 넘쳐 명예심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모든 사건에 - 항상 뭔가가 일어나므로 - 한마디 하는 것을 의무라고 알고 있다!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먼지를 일으켜 떠들어대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여러분은 늘 귀를 기울이며 늘 한마디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으므로 진정한 생산력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설사 여러분이 아무리 큰 일을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회임의 깊은 과묵은 결코 여러분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시대의 사건이 여러분을 곁겨처럼 따라다닌다. 여러분은 사건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저자가 읽어버렸던 사람들, 니체와 베게트와 첼란, 헨리 밀러,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발레리, 푸코, 르장드르, 들뢰즈, 라캉... 결국 그들은 저자가 읽은 이들이고 그들의 이야기이며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엮어진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여기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친구의 발소리를 위로삼고 온 길 끝에서 책으로 나왔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던 겁니다.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습니다. 밤중에 계속 길을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요. 발소리를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지요"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천국에 가서 공로대로 상급을 받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갖가지 상을 받을 때, 신조차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다른 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할 만큼 책읽기는 매력적인 일이다. 그보다 더한 벗도 없더라. 그러니 나 또한 읽고 쓰고 읽고 쓴다. 읽고, 다시 읽고, 고쳐 쓰고, 쓴다. 읽은 자는 쓴다. 곧 '발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배겨나지 못한다.

'왜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는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던가. "그것은 읽어버렸기 때문입니다"라고. 공감되는 대목이다.

"베게트나 첼렌이나 헨리 밀러나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 발레리가 없었다면 저는 여기에 없을 겁니다. 니체나 푸코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 있어주어 다행입니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습니다.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요. 발소리를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지요"(본문 271쪽)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다는 것이고, 책을 고쳐 읽는다는 것은 고쳐 쓴다는 것이며, 고쳐 쓴다는 것은 쓴다는 것이다. '그것은, 읽어버렸기때문'이다. 그리고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한다, 문학이 혁명이다'.

덧붙이는 글 |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손을>
저자: 사사키아타루
출판: 자음과모음
값: 13,500원
2012. 8.10.초판3쇄 발행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이룸)(2012)


태그:#잘라라 기도하는 그손을, #사사키 아타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