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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난민, 유랑민의 권리와 차별반대를 위한 글로벌 행동의 날로 12월 18일을 지정하고 있다.
▲ 세계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포스터 이주노동자, 난민, 유랑민의 권리와 차별반대를 위한 글로벌 행동의 날로 12월 18일을 지정하고 있다.
ⓒ (사)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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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은 1990년 12월 18일 유엔총회에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들 가족의 권리보장에 관한 국제협약'이 채택된 날을 기념하는 '이주노동자의 날'이다. 이날은 그동안 전 세계 각지의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 관련 NGO들이 각국 정부에 이주노동자 권리보장 및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날로 자리매김해 왔다.

흔히 '유엔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이라고 불리는 위 협약에서 쉽게 간과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모든'이라는 단어와 '그들 가족'이라는 단어다. 이 협약에서 '모든'이라는 단어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체류 자격에 구분 없이, 가족 구성원을 가진 보편적 존재로서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협약임을 주지시켜주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사회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든 사람은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 '예!' '아니오!'로 답하라 하면 일반적으로 '예'라는 대답이 우세할 것이다. 그밖에도 "모든 사람은 직장을 바꿀 권리와 자유가 있다", "모든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있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모든'이라는 단어 대신에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로 바꾸면 어떨까? "이주노동자는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직장을 바꿀 권리와 자유가 있다", "이주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있다"라는 명제에 대해 선뜻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분명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라고 인정했던 명제에 대해 '이주노동자'라고 바꾸면 왜 '예'라고 답하는데 주저하게 되나?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달라질 수 있나? 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우리 속에 '차별의식'이 깊게 내재돼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어떤 집단을 '모든'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제외시켜 버리는 언행을 하는 이유를 우리는 곰곰이 살펴봐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모든'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차별

세계인권선언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이며….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에 '이주노동자'는 '빼고'라는 말이 없다. 이주노동자 말고도 '장애인, 성적소수자, 병역거부자 등'의 집단을 배제하라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런데 다수에 의해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에서 배제되는 집단이 있다. 사회적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 집단이 그 대상이다.

왜 배제시킬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이야기하라면 만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어딘가 다른데 만만하니까, 굳이 '모든'이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 두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제1조 1항을 보면 그게 왜 차별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이 협약은 별도로 언급되지 않는 한 성,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또는 신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종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국적, 연령, 경제적 지위, 재산, 혼인상의 지위, 출생 또는 다른 신분 등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적용된다.

우리사회가 만일, 이주노동자가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민족, 국적 등이 다르다고 구별한다면 그게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비준, '송출국이나 한다'는 건 편견

'이주노동자'란 그 사람이 국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유급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이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종사하여 온 사람을 말한다.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들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은 2012년 6월 기준으로 46개국이 비준했고, 16개국이 서명했다.

'서명'은 국제협약에서 채택된 안건의 효용성과 필요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비준을 하기에 앞서 국내법 등을 정비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라 법적 강제성이 발효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 '비준'은 조약체결권자인 국가원수가 조약안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행위로, 안건의 법적 강제성이 발효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제협약은 20개국 이상의 비준이 있고 난 후 30일 후부터 효력을 발효하는데,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은 2003년 7월 1일자로 발효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서명도 안 한 상태다.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은 유엔이 체결한 가장 중요한 인권 관련 협약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 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이 이주노동자를 송출하는 국가에는 유리한 반면, 받아들이는 나라에는 아주 불리하게 작성돼 있는 관계로 비준 당사국들이 주로 이주노동자 송출국이라는 이유를 들어 서명마저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정부뿐만 아니라 관련 시민단체들마저 일부 수긍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런 주장은 편견과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국제협약을 이야기할 때 1990년에 유엔에서 채택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들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만을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주노동자 관련 중요 국제협약은 그 외에도 1949년에 채택된 'ILO(국제노동기구) 고용을 위한 이주 협약'(C-97)과 1975년에 채택된 'ILO 이주노동자(보충 규정) 협약'(C-143)이 있다.

이 세 가지 국제협약은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필수적인 법적 틀을 제공하는 보편적 구조만이 아니라, 국가 이주 정책과 이주 통제를 위한 국제협력 등에 대해서도 상호 보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국제협력 비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세 가지 국제협약 전체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2012년 6월 기준으로, ILO 협약 C-97은 50개국이 비준했고, ILO 협약 C-143은 23개국이 비준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은 46개국이 비준했고 16개국이 서명했다. 이 말을 요약하면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이주노동자 관련 국제협약을 비준한 국가가 86개국이고, 서명국까지 포함하면 97개국이다.

여기에서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 국가는 15개국이고, G20 국가는 8개국이며, EU 국가는 11개 국가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터키 등이 모두 포함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비준 당사국들이 이주노동자 송출국들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우리나라가 FTA 체결을 각국과 진행하고 있는데, FTA의 적용범위가 단순히 상품의 관세 철폐 이외에도 서비스 및 투자 자유화 외에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경쟁정책, 무역구제제도 등 정책의 조화부문까지 협정의 대상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FTA를 체결한다는 말은 결국 FTA 체결 상대국이 비준한 국제협약도 준수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말대로 송출국에서나 체결하는 국제협약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비준이나 서명을 한 국가가 전 세계 100여개국으로 너무 많다. 우리나라 무역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부분이 아니다. 우선 EU만 해도 11개국이 비준하고 있는데, 향후 중요 이주노동자 국제협약과 관련한 마찰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비록 이주노동자라는 인적 교류는 적지만, FTA 체결 당사국인 칠레는 비준국이다. 아직 FTA를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와 교역규모에서나 대외 무역관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점차 그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필리핀, 나이지리아, 멕시코, 이집트,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도 역시 비준 국가이다.

가장 눈여겨볼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올 5월 31일에 비준했다. 인도네시아는 2억4000만 명의 인구대국으로, 아세안과 비동맹국의 맹주다.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와 FTA 추진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개시하기로 지난 5월에 합의한 바 있다. FTA 체결 시 아세안 시장 진출 확대 기반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정부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와 FTA 체결 과정에 가장 큰 난제 중 하나가 될 여지가 높은 것은 이주노동자 송출, 노동시장 문제이다. 인력송출이 주요 산업동력인 인도네시아나 아세안 국가들이 노동력 이동의 자유와 권리까지 주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껄끄러워하는 인권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익의 관점에서만 봐도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비준이 송출국의 문제라고 단정 짓고 무시하기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는 하루 빨리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비준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편 비준과 관련하여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어떤 입장일까? 중국은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를 파견하는 나라이자, 우리 국민 역시 가장 많이 진출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중국은 홍콩이 반환될 당시, 홍콩이 비준한 ILO 협약 C-97을 계속해서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서, 사실상 비준국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미국 같은 경우는 '패권국가'라는 특성상 국제협약보다 국내법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패권국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하여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대외정책을 펴는 초강대국이다. 세계와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힘의 우위에 의한 정책을 기본으로 하여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려 하기 때문에 심하게 말하면 '깡패국가'라 불린다. 그런 나라가 국제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고 우리까지 비준하지 않겠다는 것은 '깡패' 어깨 아래서 놀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초강대국들이 비준하지 않는다고 비준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절반의 국가가 비준한 부분을 보면서 이주노동자 관련 협약 비준을 통해 좀 더 폭넓게 세계와 소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태그:#국제협약, #이주노동자의 날,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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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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