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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9일 오후 1시 50분]

2007년 10월 1일, 청운의 꿈을 갖고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1년 동안 일하고 놀고 여행도 다닐 터전이로구나.'

10여 년 전부터 터전을 잡고 계신 삼촌 덕분에 바로 집에 들어가 외국인들과(대만인+한국인) 쉐어를 하고 다음날부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돈 많이 벌어야지! 지금 기억으로,당시 호주 최소 시급은 17달러(당시 약 1만5000원)이었지만 난 한국인 밑에서 일하게 되어 12달러를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힘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6시간 동안, 대형마트 두 곳을 두 명이서 청소하는 일이었다. 기존에는 3명이었는데 하필 내가 가면서 2명으로 줄었다. 초짜인 나까지 2명이니 뭐 할 말 다한 거였다. 그렇게 2주... 이미 호주에 대한 환상은 깨진 지 오래되었고, 이틀째부터 집에 가고 싶어지더니 이주째부터는 참을 수 없었다. 정해져있던 6시간 작업은 거의 10시간으로 늘어나, 매일 일이 끝나면 아침 해를 보았던 것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삼촌께 죄송해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그만두어 버렸다. 당시 10월 중순이었다.

카지노를 방문하다

나에게 기쁨, 슬픔, 분노, 허무, 기대의 마음을 품게 했다. 사실 지금도 살짝...
▲ 브리즈번 카지노 건물 나에게 기쁨, 슬픔, 분노, 허무, 기대의 마음을 품게 했다. 사실 지금도 살짝...
ⓒ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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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의 자유시간이 생긴 나는 룸메이트와 카지노에 한번 들어가 보았다. 말로만 듣고 티비로만 보던 카지노! 건물은 상당히 세련되었고, 전혀 퇴폐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낮의 방문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다들 즐기는 분위기였다. 종종 한국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나는 구경만 했고, 앞으로 집에 돌아갈 때까지 구경만 하기로 다짐했다. 카지노 카드를 만들면 매일 음료수 두 잔을 공짜로 줬기 때문에 가끔와서 카페처럼 이용할 생각도 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돈이 없으면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점차 초조해졌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데나 무조건 들어가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한 달여동안 수십군데를 돌아다녔고, 이번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자리를 잡게 되었다. 브리즈번 유일의 중국집 주방보조!

'인생 살고 볼 일이야. 내가 중국집에서 주방보조를 해보다니. 그런데...중국집 주방보조 엄청 힘들다던데..."

걱정반, 기대반으로 11월 초부터 일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쁜 점심시간 때는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처음에는 그러려니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갔고, 역시나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차마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얻은 일자리인데...

끊임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참기 힘들었던 나는,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털어놔 위로를 받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카지노에 슬슬 발을 담기 시작했다. 처음엔 10달러로 시작했다. 순수하게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땄다. 일정 금액이 되면 바로 돈으로 바꿔서 집으로 향했다. 짭짤했다. 이것저것 먹을 것도 사고 쇼핑도 했다.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 했던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전략(?)을 짜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늪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타짜가 되다

언젠가부터 '타짜'가 되어 있었다. 주로 '블랙잭'을 했는데 옆사람들과의 호흡, 전체적인 분위기, 딜러의 능력 등을 읽고 조율해가며 할 수 있게 되었다.

초반엔 스스로 정해놓은 선을 지켰다. 그런데 집에 와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노트북을 가져 오지 않아서 인터넷이나 게임을 할 수 없었고, 집에 있는 티비에서는 호주 방송만 나왔다. 별 수 없이 계속 밖으로 나갔고, 밖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카지노로 향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12월이 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올수록 외로움이 점점 커져만 갔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물론 친구들이 있었지만 대화에 한계가 있었고, 유일한 한국인 친구인 룸메이트와는 사이가 틀어져 있었다. 너무너무 외로웠고 카지노로 향했다. 파멸의 길로 가는 줄 알면서도...

12월 초중순의 어느 토요일, 이미 돈이 거의 바닥나 있었고 나는 절박했다. 계속 이력서를 넣었음에도 역시 나를 찾는 이는 없었다. 후회했지만 늦었다. 그래서 승부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 당시 심정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처음엔 100달러로 시작했다. 남은 돈 1400달러.

'이정도는 괜찮아~ 두 달은 버틸 수 있을 거야'(당시 집세가 한 달에 300달러)

100달러를 잃고 이번엔 200달러로 도전했다. 200달러를 따야 본전이니까. 남은 돈 1200달러. 이번엔?

'그래, 여기서 잃으면 깨끗이 승복하고 집에 가자!'

다 잃었다. 토요일 밤이라 술도 한잔하면서 아주 통쾌하게 잃었다. 기분이 묘했다. 박카스(술의 신)가 나를 인도하는 것인가, 카이지(유명일본 만화 '도박 묵시록 카이지' 주인공)가 나를 이끄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그만 달랑 남아있는 1200달러에서 900달러를 뽑아버렸다. 그래도 2주는 버틸 수 있는 돈은 남겨두었다.(집세를 2주마다 냈다) 일생 일생의 승부였다.

'다 나오라 그래! 이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남자가 말이지. 지를 땐 질러야지!'

나의 완패였다. 하늘이 노랬다. 처음에 빼놓은 집에 가는 차비 10달러를 제외하고, 890달러를 잃었다. 빈털털이가 된 것이다. 이제 한 달 안으로 꼼짝없이 집에 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1000달러를 넘게 썼으면 재밌게라도 놀았어야지, 1%도 재미를 못 느꼈다. 절박함속에서 2시간도 못채운 채 카지노를 뒤로 했다.

다시 카지노를 찾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12월 23일 일을 구하게 되었다. 역시 한국인 사장이었지만, 자부심이 있었다. 브리즈번 최고의 아시아 슈퍼마켓!

좋은 동료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내며 도박으로 잃었던 돈을 다시 차곡차곡 성실하게 모았다. 그런데! 친한 친구이자 동료가 카지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몇번 같이 가게 되었다. 살짝 맛보기만 보고 나오며, 순수하게 즐겼다. 그러다가 혼자서 몇 번 찾아가 보았다. 스트레스로 인해 오게 된 것이 아니어서 부담없이 즐겼다.

덧붙이는 글 |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응모



태그:#브리즈번,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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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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