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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리 고인돌
 문성리 고인돌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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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라면 아무래도 '신라'다. 설총, 김유신, 최치원을 모시는 서악서원(서악고분군 옆), 경북 도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주향교(반월성 옆) 등도 있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조선 시대 유적들인 탓에 시간의 무게로 잴 때 '형(신라 유적)들'과 비교 대상이 못 되는 까닭이다.

그 반대로, 억울한 것들도 있다. 고인돌이다. 아득한 선사 시대의 유적이니 '동생(신라 유적)'들에게 밀려서 잊혀져가는 현실이 억울할 법도 하다. 실제로 경주 지역에는 고인돌이 제법 많다.

시내에서 가까운 것으로는 용강초등학교 옆의 고인돌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경주가 보여주는 고인돌의 압권은 역시 안강읍 문성리와 칠성고개의 것들이다. 문성리의 것은 크기가 웅장하다는 점에서, 칠성고개의 것은 수가 많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문성리 고인돌의 크기는 그 옆에 선 자동차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문성리 고인돌의 크기는 그 옆에 선 자동차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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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마을의 고인돌은 넓은 들판 가운데에 있다. 그래도 그냥 찾아나서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포항시 기계면의 새마을운동기념관을 먼저 찾고, 그 오른쪽 들판에서 찾는 게 좋다.

기계면 소재지 앞을 지나는 도로에서 봐도 새마을운동기념관은 너무나 잘 보이니 거기까지는 바로 달려갈 수 있다. 문성리 고인돌은 기념관 앞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홀로 서 있는 커다란 당수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그 아래에 있다. 나무는 서 있고, 고인돌은 나무 그늘 아래에 편안하게 쉬고 있는 듯하다.

안내판에는 '신석기 고인돌'로 표기되어 있다. 소재지는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151번지다. 있는 곳이 포항시인데도 경주 기행에서 다루는 것은 문성리 오른쪽부터 산을 넘어 이어지는 기타 고인돌들의 주소가 경주이기 때문이다.

문성리 고인돌의 '지붕'처럼 자라있는 고목 당수나무는 수령 200년의 팽나무다. 거대한 거석을 판돌 위에 얹은 이 남방식 고인돌은 길이 5m, 폭 2.5m, 높이 3m의 웅대한 면모를 자랑한다. 안내판은 '남방식 계통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특이한 방패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태라 매장 구조나 기타 사항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고 설명한다.

또 안내판은 '거대한 규모와 독특한 형태 그리고 다른 고인돌에 비해 암질이 우수하고 독특하며 칼로 자른 듯한 면들이 여느 고인돌과 다르다. 신석시 시대 이곳 기계면 일대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사람의 무덤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인다.

상계1리 칠성고개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본 고인돌 중 하나. 청동기 시대의 무덤 뒤로 현대의 묘소가 보인다.
 상계1리 칠성고개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본 고인돌 중 하나. 청동기 시대의 무덤 뒤로 현대의 묘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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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고인돌은 문성리의 거대 '물건'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로 오른쪽 마을인 상계리 뒷산 칠성고개 곳곳, 그리고 산을 넘어 노당리까지 이어진다. 고인돌이 일곱 개 나란히 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 칠성고개는 예전부터 재 넘어가는 이 길을 사람들이 신성시했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이 지역에 왜 이렇게 고인돌이 많을까. 노당리 들판을 보면 궁금증은 이내 풀린다. 들판이 넓으니 먹을거리가 풍부했고, 청동기 시대 들면서 제법 강력한 지배층이 대두했을 터이다.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그들이 큰 무덤을 축조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라 6부 촌장들과 그 뒤를 이어 나타나 왕이 된 혁거세 세력을 이기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의 무덤은 능이나 총이 될 수 없었다. 임금이 된 후 죽어야 능이 되고, 주인공은 알 수 없어도 대단한 부장물을 보여줘야 총이 되는 법인데, 그들의 과시는 고인돌에서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의 고인돌들은 점점 잊혀졌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주시에 들지만, 많은 국보와 국가지정 사적을 거느린 천년 왕국의 서울에서 삼십여 기의 산재한 고인돌 정도로는 두드러진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래서 찾아오는 이들도 거의 없다. 아무려면 구경꾼은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게 마련이니까.  

노당리 들판. 이렇게 넓은 들판이 있으니 당연히 세력가가 등장했을 것이고, 그래서 고인돌이 생겼을 터.
 노당리 들판. 이렇게 넓은 들판이 있으니 당연히 세력가가 등장했을 것이고, 그래서 고인돌이 생겼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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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졸고 경주여행 연재도 33회로 끝을 냅니다. 오랫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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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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