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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야에서 울산 가시내와 머스마
▲ 파타야에서 울산 가시내와 머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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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의 둘째 날. 우리들은 아침 일찍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해변도시인 파타야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내륙에서 메콩강만 따라다녔으니, 바다도 보고 수영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서 생각해보니 조금 우습다.

파타야까지는 차로 3시간. 거리로 치면 서울에서 강릉 정도다. 단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 당일치기로 강릉에 다녀온다? 제주에 사는 나는 자전거로도 15분이면 옥색 함덕 바다에 다다를 수 있으니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서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어이가 없어 웃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3시간 정도면 가뿐한 수준이다. 아이들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이동하는 날이면 적어도 대여섯 시간은 기본이고, 온종일 걸리거나 밤을 새우기 일쑤니까 말이다.

시간 개념이란 아주 객관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상대적이다. 특히 여행자의 시간은 더욱 그렇다. 자기 자리를 떠난 세상의 시간은 지형과 기후에 따라, 혹은 문명에 의해 서로 다른 시침과 분침으로 돌아간다. 그뿐 아니라 일상을 벗어난 여행자의 시간 자체가 온전히 여행자의 취향과 주관에 의해 재단되고 존재한다.

수영복 없이 수영하는 아이들

1월의 바다... 정호의 명상
▲ 1월의 바다.. 정호의 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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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여행은 공간 이동만이 아닌 시간 이동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긴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낯설어진 일상의 시간 앞에서 그동안 나 자신이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내다 온 사실을 늦게나마 간파하곤 한다.

우리 여행학교 아이들도 10대의 어느 겨울에 만난 일상과는 다른 시간의 경험을 오랫동안 추억하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그들의 삶의 시간이 혹시 팍팍하고 건조해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면 여행학교에서 경험한 다른 색깔의 시간을 기억하고, 시침이든 분침이든 자신의 취향과 주관대로 다시 맞춰보면 좋을 것 같다.

파타야 바다는 예쁘면서도 생기가 넘쳤다. 식당도 많고, 사람도 많고, 해변은 길면서, 바다는 넓었다. 우리는 모래해변에 대충 자리를 잡고 곧장 바다에 들어갔다. 성호·정호 형제도 수영을 곧잘 했지만, 역시 희경·수경 자매를 비롯한 제주 아이들의 수영 실력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친구도 수영복을 가져온 친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내와 나를 제외하고는, 반소매 티셔츠나 남방에 반바지나 체육복 바지를 걷어 올리고 수영을 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비물 목록에 '수영복'이라고 분명히 공지했고, 꼭 가져가야 하느냐고 문의가 올 때마다 '방콕에서 바다에 갈 것'이라고 답했는데도 그렇다.

두 손 맞잡은 아이들... "애들, 장난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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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바다를 만나 논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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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이들이 바다에서 수영하고 노는 것을 싫어하거나 덜 좋아해서가 절대 아니다. 결국 해석하자면 수영복 챙기는 것을 잊어버려서가 아닌 것이다. 또래들 앞에서 수영복 입기가 부끄러운 모양인데, 이건 아마도 수영복을 수영을 하기 위해서 입는 옷이 아니라, 몸매를 자랑하기 위한 것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날 파타야 바다에선 수영복을 입지 않은 건 우리 일행뿐이었고,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신기하게들 쳐다봤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신나게 놀았다.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하고, 돌아오는 길. 해변길을 따라 걷는데 언뜻 뒤를 돌아봤더니 정호와 도솔이가 서로 손을 맞잡고 걸어오고 있다. 내가 잘못 봤나? 방콕에 돌아와 하영이에게 물었다.

"하영아, 쟤들 언제부터 저래?"
"아유~ 삼촌, 말도 마세요. 요즘 애들이 장난이 아니에요."
"왜?"
"에이~, 쟤네 둘만이 아니에요."

중학교 3학년 동갑내기인 정호와 도솔이만이 아니라고 했다. 막내인 영준이와 동갑내기 서희도 마찬가지. 영준이가 서희에게 곰 인형을 사주면서 두 사람 사이 역시 급 진전 중이라는 설명이다. 진즉에 내가 알아차린 '겁 없는 고딩' 희경·성호 연상연하 커플까지 합하면 총 세 커플이 이번 여행에서 엮어졌거나 엮이고 있는 셈이다.

방콕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피곤에 지친 아이들
▲ 방콕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피곤에 지친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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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여행학교라고 해야 하나, 연애학교라고 해야 하나...

부모님들이 여행하라고 보냈더니, 연애만 하고 왔다고 뭐라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래도 뭐 어떤가 싶다. 여행이든 연애든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발견하고,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제민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김향미&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 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습니다.



태그:#라오스, #여행학교, #태국, #방콕, #파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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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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