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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 유허
 손순 유허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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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여왕릉에서 돌아나와 서경주역을 동남쪽에 둔 채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농로인 듯 도로인 듯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길이 잠깐 이어지다가 곧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손순(孫順)을 제사 지내는 문효사(文孝祀)가 있는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다. 이 마을 623번지에 경상북도 기념물 115호인 그의 유허가 간직되어 있다.

손순은 누구인가? 혹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를 기억해낸다면 누구나 다들 '아! 그 손순!' 하면 찬탄을 하게 될 것이다. 이미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 실려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두루 알려진 교훈적 실화이기 때문이다.  

835년(흥덕왕 10), 손순은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을 팔아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다. 손순의 어린 아이는 늘 할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다. 손순이 아내에게 말했다.

문효사(손순 재실) 마당에 신라 때 손순 부부가 발견한 종을 본떠서 근래에 만든 돌종이 놓여 있다.
 문효사(손순 재실) 마당에 신라 때 손순 부부가 발견한 종을 본떠서 근래에 만든 돌종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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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다시 얻을 수가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소. 그런데 아이 때문에 어머니가 굶주리고 계시오. 아이를 땅에 묻어 어머니의 굶주림을 해결해야 하오."

결국 부부는 아이를 업고 산으로 들어가 땅을 파다가 이상한 돌종(石鐘)을 얻었다. 놀란 부부는 종을 잠깐 나무 위에 걸어 놓고 시험 삼아 두드려 보았는데 그 소리가 은은하였다. 아내가 말했다.

"우리가 이런 종을 얻은 것은 이 아이의 복이 아닐까요? 아이를 묻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남편도 그렇게 생각했다.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종을 들보에 매달고 두드렸다. 그 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 흥덕왕이 종소리를 듣고 좌우를 보며 말했다.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도 멀리 들리는 것을 보면 보통 종이 아니다. 빨리 가서 조사해 보라."

왕의 사자가 손순의 집에 왔다. 사실을 확인한 신하가 왕에게 전말을 아뢰자 왕이 말했다.

"옛날 곽거(郭巨)가 아들을 땅에 묻자 하늘에서 금솥을 내렸다. 이번에는 손순이 그 아이를 묻자 땅에서 석종이 솟아나왔다. 지금 지난 세상의 효도와 후세의 효도를 함께 보는구나."

왕은 상으로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손순 부부의 순후한 효성을 숭상했다. 손순은 지금까지 살던 집을 절로 삼아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석종을 모셔 두었다. 하지만 896년(진성왕 10), 후백제의 횡포한 도둑이 쳐들어와서 종을 가져가 버렸다.

손순을 제사 지내는 문효사
 손순을 제사 지내는 문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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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의 실화는 겉으로는 지극한 효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시대상을 살펴 읽으면 눈물을 금할 수 없는 슬픈 이야기다. 노모의 아사(餓死)를 막기 위해 어린 자식을 땅에 파묻겠다고 생각하다니, 어쩌면 이토록 비인간적인 부모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을 만들어낸 시대는 또 얼마나 비참한 세상이었단 말인가.

삼국사기는 832년(흥덕왕 7),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 빈 땅이 속출하였'고, '8월에 흉년으로 곳곳에서 도둑이 일어났으며', 833년에도 '나라 안에 큰 기근이 들었고, 겨울 10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다시 피었으며 백성들이 역질에 걸려 많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흥덕왕은 재위 3년(828) '한산주 표천현의 요술하는 사람이 스스로 빨리 부자가 되는 술법을 가르쳐준다면서 뭇사람들을 자못 홀리자 "사도(邪道)로 무리를 미혹하는 자에게는 벌을 주는 것이 선왕 이래의 법"이라면서 그 자를 먼 섬으로 귀양 보낸 임금이다. 왕은 또 흉년이 들자 '스스로 음식을 줄였고', 왕후가 죽자 혼자 살면서 궁녀들도 가까이 하지 않는 채 심부름도 남자 시종에게만 시켰다. 그러나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과연 진리였는지, 손순 같은 사람이 생겨날 만큼 왕의 시대는 가난하고 힘든 세월이었다.    

생가터의 최제우 유허비
 생가터의 최제우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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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하늘이다

손순 유허를 보고 나서 곧장 927번 도로를 타고 경주 시내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신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색다른 유적지 한 곳이 남았다. 목적지는 도로 반대편인 북서쪽에 있다. 현곡면 가정리 일대에 있는 최제우 유적으로 가는 길이다.

최제우, 동학의 창시자이다. 1971년에 세워진 선생의 유허비가 가정리 315번지에 있다. 그곳은 옛집 복원이 예정되어 있는 수운(水雲)의 생가 자리이다. 그는 1824년 10월 28일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유년 시절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17세에 세상을 떠나자 수운은 세상을 떠돈다. 그러다가 36세에 이르러 고향으로 돌아와 구미산에서  수도 생활을 한다. 이윽고 1860년 4월 5일 용담정(龍潭亭)에서 도를 깨우친다. 용담정은 가정리에서 나와 927번 도로 맞은편으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40만 평 너른 땅의 동학 성지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산속에 있다.

용담정의 모습. 최제우가 득도를 한 곳으로, 사진의 건물은 물론 당시의 것이 아니라 복원한 것이다.
 용담정의 모습. 최제우가 득도를 한 곳으로, 사진의 건물은 물론 당시의 것이 아니라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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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하늘'임을 주창하면서 많은 백성들의 마음을 달랬지만 조정은 그에게 '사교(邪敎)를 일으켜 민심을 혼란하게 했다'는 죄목을 붙여 처형한다. 때는 1864년 3월 10일, 곳은 대구시 중구 남산동 관덕정. 관덕정은 평소 죄수들을 죽이기도 하고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이기도 했던 아미산 언덕 일대를 가리킨다.

제자들은 그의 주검을 거두어 용담정 아래에서 장례를 치른 뒤 가정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미산 중턱에 묻었다. 구미산은 용담정과 동학 성지 뒤편에 꼭대기를 두고 선생의 생가터를 향해 둥글게 뻗어내리다가 927번 도로에서 산세를 멈춘다. 묘소는 대략 도로를 사이에 두고 생가터와 대칭되는 지점에 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대략 1km.

지금도 선생의 묘소에는 동학의 후예들이 성지로 믿으며 끊임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일반인 참배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누구든 꼭 한번 가보아야 한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사방을 남김없이 아득하게 내려보는 곳에 편안히 누워계시는 선생을 보노라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가르침의 참뜻이 저절로 깨우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살아 생전 이루시려던 인간 평등, 민족자존의 꿈은 기득권 세력과 외세에 가로막혀 완성하지 못하셨지만, 누워계시는 지금 이곳의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것을 보니 '저승에서라도 무에 거칠 것이 있으시랴' 싶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최제우 묘소. 저 아래로 선생의 생가터가 보인다.
 최제우 묘소. 저 아래로 선생의 생가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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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성지에서 북쪽으로 도로를 타고 나아가면 금세 남사리에 닿는다. 이 마을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 집들을 다 지나친 후 왼쪽 방향으로 산비탈을 타고 오르막 논길을 줄곧 가면 이윽고 논이 사라지고 산기슭이 시작된다. 현곡면 남사리 234-2번지에 있는 (남사리 절터의) 보물 907호 탑이다. 9세기 말 작품.
 동학 성지에서 북쪽으로 도로를 타고 나아가면 금세 남사리에 닿는다. 이 마을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 집들을 다 지나친 후 왼쪽 방향으로 산비탈을 타고 오르막 논길을 줄곧 가면 이윽고 논이 사라지고 산기슭이 시작된다. 현곡면 남사리 234-2번지에 있는 (남사리 절터의) 보물 907호 탑이다. 9세기 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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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에서 경주로

연재 졸고 '경주 여행'은 지난 24회부터 지금까지 경북 영천에서 경주로 들어오면서 답사할 만한 곳들을 여정에 따라 소개했습니다. 다시 정리하여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정혜사터 13층 석탑 - 국보 40호 (2) 독락당 (3) 옥산서원 - 세계문화유산
(4) 흥덕왕릉 (5) 나원리 오층석탑  - 국보 39호, 신라 팔괴 중 하나 (6) 진덕여왕릉
(7) 손순 유적 (8) 최제우 생가터, 최제우 묘소, 용담정 - 최제우 득도 장소




태그:#손순, #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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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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