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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에서 알려드립니다. 멸종위기종 붉은발 말똥게의 일부가 여전히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살거나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제주도청이 13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과는 사뭇 달라 논란이 예상됩니다.

본래의 색을 잃은 잿빛 붉은발 말똥게. 사람이라면 폐병에 걸릴 것 같다.
▲ 먼지를 뒤집어 쓴 붉은발 말똥게 본래의 색을 잃은 잿빛 붉은발 말똥게. 사람이라면 폐병에 걸릴 것 같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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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오후 2시였습니다. 해군기지사업단 정문이라고 표기하고 실제로는 공사차량이 드나드는 강정천 옆 사업단 입구에서 중년의 아저씨 한 분과 여성 두 분이 나옵니다. 왠 통을 덜렁덜렁 들고 나오시는데 눈썰미 좋은 제 친구가 "붉은발 말똥게다!"라고 제게 속삭입니다. 제 옆을 지나 금세 사라질 것 같은 그 분들을 향해 뛰어가 실례를 했습니다. 정말 붉은발 말똥게입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니 "알 것 없다"고 말하십니다. 제발 한번만 더 보여 달라고 사정했지만 야멸차게 차에 타고 '쌩'하고 사라집니다.

폐병에 걸릴 것 같구나. 네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 잿빛 붉은발 말똥게 폐병에 걸릴 것 같구나. 네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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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봤습니다. 저는 그 통에 붉은발 말똥게 두 마리가 든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사진 상에 보이는 것만 다섯 마리입니다. 불쌍하게도 3마리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그 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이 게들은 공사장 내 먼지가 가득한 곳에서 발견된 듯합니다. 저 게가 사람이었으면 폐병 걸려 금세 죽어버릴 듯 처참한 모습입니다. 그나마 공사장에 버려두지 않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요.

제가 갑자기 5일 전에 찍은 사진을 찾아보게 된 것은 다음 기사를 읽어서입니다. 13일 조선일보 기사인데, 제주도 청정환경국장인 오정숙님이 WCC 기간 중에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오정숙 국장은 "반대 측이 주장하는 멸종위기종인 붉은발 말똥게, 맹꽁이, 제주새뱅이 보호 문제에 대해서는 정밀조사와 보호 대책을 세운 뒤 ... 이식하여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니다. 게다가 오 국장은 "환경영향평가서는 ...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설명했다는군요.

하지만, 과연? 제 눈앞에서 발견된 붉은발 말똥게들은 그다지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멸종위기종인 붉은발 말똥게의 이식과 관련하여서는 그간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약천사로, 또는 오정숙 국장의 말처럼 영산강 일대로 옮겼다는 발표는 있는데 그 뒤에 어떻게 산다는 말은 없었지요. 또 미처 옮기지 못한 붉은발 말똥게들은 어떻게 한다는 발표도 없지요.

이주시켜 살려주겠다는 정부 대신에  붉은발 말똥게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군요. 우린 여전히 저 구럼비 해안가에 남아서 살고 있다고. 여기 붉은발 말똥게가 있다고.  척 보기에도 공사장에서 굴러다니는 시멘트 통 같은 것에 대충 담겨져 가는 저 붉은발 말똥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요. 그리고 저 공사장에 여전히 남아있는 멸종위기 종들은 안녕한지요.

구럼비에서 살던 붉은발 말똥게
▲ 건강한 붉은발 말똥게라면... 구럼비에서 살던 붉은발 말똥게
ⓒ 강정마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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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구럼비 해안에서 붉은발 말똥게 한 마리를 발견하면 다들 신이 나서 말똥게가 바위 틈으로 완전히 숨어 버릴 때까지 지켜보곤 했습니다. 차마 말똥게에게는 손도 못  대고 쉬쉬 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불러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곳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으니까, 구럼비 해안에 대한 발파도 일부 진행했으니까. 이 아이들의 이런 모습도, 또 더 처참한 모습도 충분히 상상가능 했는데 실제로 확인하니 충격적입니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더 합니다. 그리고 어디로 옮길 수도 없이 이 마을, 강정에서 살아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하는군요.

WCC(세계자연보존총회)의 해군기지결의안 채택 투표를 앞두고 제주도청은 12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해군기지건설과정에서 환경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14일 저녁엔 '해군기지결의안 상정 철회'가 WCC의 긴급안건으로 올라와 부결되기도 했습니다. WCC가 뭔지도 몰랐던 제 입장에선 되려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WCC 총회의 마지막 날인 15일, 제주해군기지결의에 대한 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적어도 붉은발 말똥게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될 만한 결과가 나오길 빌어 봅니다.


태그:#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붉은발 말똥게, #W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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