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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를 읽으며 나는 저자 안병식이 왜 달리는지 궁금했다. 그가 달려온 4대 사막마라톤대회 그랜드슬램은 일반인들이 접하기에는 꽤 먼 나라의 이야기다. 너무 극한적일 뿐 아니라 진기한, 남들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사람들의 호사스러운 취미 같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 안병식은 왜 달려야만 했는지' 더욱 궁금했다. 마라톤에 과한 그의 화려한 수상경력은 더욱 범상치 않다.

- 2010년 제주 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 한라산 트레일런 148km 우승
- 2009년 제주 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 한라산 트레일런 148km 우승
- 2008년 북극점 마라톤 대회 42km 우승
- 2007년 남극 마라톤 대회 130km 3위
- 2006년 이집트 사하라 사막마라톤 250km 3위
- 2006년 중국 고비사막마라톤 250km 우승

저자의 마라톤 관련 프로필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 외 경력은 '미술학원 강사'밖에 없다. 그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덕분이다. 이 말인 즉슨 그는 줄곧 달렸으며, 지금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에서 그의 내면을 읽어내고자 했다. 그가 왜 달렸는지, 아니 왜 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는지를 읽어내고자 했다. 달리거나 걷거나, 혹은 오르거나 뛰어내리거나... 나는 그 점이 가장 궁금했다. 그것은 매주 어느 산길을 헤매고, 어느 바위에 매달려있는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당신은 왜 뛰는가' 질문하지만, 결국은 '나는 왜 산 속에, 바위벽에 매달려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생뚱맞게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저자는 화실에서 느낀 고독을 들판으로 끌어냈고, 인생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면 그것은 우연이지만 숙명같기도 하다.
 
그는 제주에 잠깐 머물던 외국인 강사를 우연히 만나 따라 뛰기 시작한 이래 아직도 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뛸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뛰어온 거리는 무려 1만km. 지구 한 바퀴다. 그런 그에게 '지구를 달리는 자'라는 별명은 아주 적절하다.

결승 라인은 새로운 출발

모든 달리기에는 터닝 포인트가 있듯이 그의 달리기 인생에서 첫 번째 터닝 포인트는 2005년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 대회였다. 저자는 최악의 지형을 달리며 만신창이가 됐지만, 마지막 구간에서 그간의 경쟁자들과 친구가 돼 손을 잡고 결승 라인을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경쟁이 아닌 모두 함께 1등을 할 수 있는 전혀 다른 경쟁을 경험했다."(131쪽)
 
저자는 순위만을 놓고 경쟁하는 마라토너를 넘어선 것이다. 이것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명백한 확장이다.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100마일 런(Run)에 참가했을 때 저자는 다시 한 번 자아를 마주쳤다. 저자는 달리면서 스스로 왜 달리는지를 알아갔다. 그것은 우리네 평범한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왜 사느냐는 답을 알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형언할 수 없는 장면들은 언제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며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일깨워 주었다. 세상과 일정 부분 타협하며 탐욕을 추구하던 내 모습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자연의 솔직한 모습에 이끌려 나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세상'을 향해 이토록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51쪽)

실존적 트레일 러너로서 다시 태어나다
 

결국 그에게서 마라톤은 인생과 다를 바 없으며, 종국에는 이렇게 고백하기에 이른다.
 
"지구 한 바퀴를 달리고 난 후 나는 알았다. 젊은 시절 방황하면서도 찾아내지 못했던 그 무엇. 달리기는 내 삶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그래 그렇다. 저자는 애초에 유명 대회 입상을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라 달려야 하는 말(馬)처럼 '그 무엇'을 향해 달렸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그 무엇'은 있는 법이다.

물론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에는 '지구를 달리는 자' 안병식의 실존적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그의 책에는 세계 유명 익스트림 마라톤 대회에 관한 소중한 정보들도 있다. 너무도 생소한, 그래서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정보들이다. 하물며 그가 직접 참가한 대회들이니 정보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저자는 이런 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수많은 익스트림 러닝 대회를 참가하면서 깨우쳤을 것이다.
 
또한 책에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이들의 살가운 인터뷰도 실려있다. 저자 안병식 뿐 아니라 벽안의 그들이 왜 달리는지 함께 엿볼 수 있다. 마라토너가 됐든, 트레일 러너가 됐든 혹은 아직도 모호한 인생의 '그 무엇'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그의 책은 훌륭한 교양서가 될 것이다.
 

안병식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사람이 나면 한양으로, 말은 제주로 보낸다고 하지만 그의 책을 읽다보니 그가 제주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 같다. 그의 책에서 제주 오름의 산길과 들판, 아름다운 바닷가 모래톱을 달리는 한 마리의 말을 봤기 때문이다.

"고향 제주에 트레일 러닝 대회와 같은 달리기 축제를 만들겠다"는 그에게 아름다운 길이 열릴 것을 기원해본다. 아름다운 길에 뭇사람들이 달리고 달려 내가 왜 달리는지 성찰하게끔 하는 참된 길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 (안병식 씀 | 씨네21북스 | 2012.05 | 1만4천 원)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

안병식 지음, 씨네21북스(2012)


태그:#안병식,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 #사막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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