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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리 능파대,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
 문암리 능파대,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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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은 대체로 바닷가에 서 있는 바위들과 관련이 있다. 삼척시 추암해변의 촛대바위가 그렇고, 양양군의 하조대에서 볼 수 있는 암석 해안이 그렇다. 바다로 돌출한 거대한 바위들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바위들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풍경 중에 하나로 꼽힌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강릉시 주문리의 소돌공원과 고성군 문암리의 능파대에서 볼 수 있는 바위들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바위들은 독특한 것으로만 따지자면, 사실 촛대바위나 하조대에서 볼 수 있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개성이 강하다.

소돌공원은 어느 공룡의 화석과도 같은 바위들이 바닷가에 우뚝 서 있는 광경이 기이하다. 능파대에서는 속이 둥글게 파인 바위들이 계란 껍질처럼 부서지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바위가 전혀 바위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 까닭에 동해에서는 바위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그 바위들이 바닷가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그 바위들은 바닷가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동해에 가서 바다만 바라보고 돌아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 봐도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색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는 걸 알 수 있다.

강원도 자전거여행 세 번째 이야기는 동해에서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풍경들을 찾아나서는 데서 시작한다.

문암항. 항구 뒤로 살짝 올려다 보이는 바위가 능파대.
 문암항. 항구 뒤로 살짝 올려다 보이는 바위가 능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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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대, 바위를 떡 주무르듯이 해 놓은 파도와 바람

문암리 능파대는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문암항에 가려서 바닷가 바위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항구 뒤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해서 이곳에 이런 바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바닷가의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항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신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암리 능파대는 추암해변의 능파대와 이름은 같지만 그 모양은 확연히 다르다.

그곳에는 마치 밀가루로 반죽을 하다 만 것 같은 바위가 있는가 하면, 둥근 홈이 잔뜩 파인 게 마치 벌집을 만들다 만 것 같은 바위도 있다. 표면에 고대문자라도 새긴 것처럼 빽빽하게 빗금을 친 바위가 있는가 하면, 방금 새가 부화라도 하고 나온 것처럼 속이 텅 빈 알처럼 생긴 바위도 있다. 바닷가 화강암이 소금기 짙은 바닷바람에 노출돼, 오랜 세월 풍화를 거치면서 이런 모양의 바위들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자연이 한 일이라고는 잘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문암리 능파대, 구멍난 바위.
 문암리 능파대, 구멍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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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대에서 북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모래사장이 백도해변이다. 그 끝에 보이는 항구는 백도항이다. 백도항으로 가는 바닷길에서도 능파대에서 보는 것과 같은 바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모두 문암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그러니까 이 마을에서는 이 바위들이 신앙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능파대 올라가는 길가 연분홍 해당화.
 능파대 올라가는 길가 연분홍 해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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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대의 '능파'는 '파도와 같은 물결 위를 걷는다', '미인이 가볍고 아름답게 걷는 모습'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 능파대에 서 있으면 바위 아래로 파도가 넘실대는 것이 아닌 게 아니라 파도 위에 서 있는 것 같이 몸이 위태롭다. 그 위에서는 자연히 미인이 걷는 것처럼 걸음이 조심스럽다.


능파대는 원래 바닷가 가까이에 있는 돌섬이었다. 능파대 남쪽 문암천으로 흘러내린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이 되었다고 한다. 능파대는 선계에서나 볼 수 있는 그 바위들 때문에 과거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대신 문암항에는 낚싯배를 타러 오거나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다 좋은데 능파대 바위 위에 높이 올려 세운 조명기구들이 눈에 몹시 거슬린다. 여기에 이런 별스런 도구들이 서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능파대 한쪽에 '과거 침투 지역'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다.

마을의 오랜 추억을 오롯이 간직한 16m 거대 농부

문암천 자갈길.
 문암천 자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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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대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너무 늦지 않으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문암항을 벗어나 도원리휴양지로 방향을 잡는다. 도원리휴양지는 문암항에서 서쪽으로 10여km 떨어진 계곡에 있다.

자전거를 타고 문암천을 따라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대로 휴양지까지 갈 수 있다. 문암천은 마산봉의 한 계곡에서 발원해 토종면의 너른 논과 밭을 적시며 문암항 남쪽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다. 문암천이 시작되는 계곡 입구에 도원리휴양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문암천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길이 나 있다. 남쪽은 시멘트 포장길이고 북쪽은 비포장길이다. 자동차들이 다니는 아스팔트 도로는 하천에서 좀 떨어져 있다. 휴양지까지 하천에 바투 붙은 길을 따라서 올라가려면 북쪽 비포장길로 들어서는 게 좋다. 하천 길로 들어서려면 7번 국도를 가로질러야 한다. 문암교에서 북쪽으로 100m 떨어진 지점에 도로 아래를 지나가는 굴다리가 하나 있다. 그 굴다리를 이용하면 굳이 7번 국도를 건너지 않고도 곧바로 하천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갈 수 있다.

이후로는 한동안 하천 바닥으로 난 자갈길을 달린다. 이곳에 사는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 하천 바닥 풀숲에는 "고라니가 수도 없이" 많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갑자기 고라니를 만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중간에 운봉교에서 다리를 건넌다. 그때부터는 문암천을 따라서 아스팔트 도로를 달린다. 이후로 학야2교를 건넌 뒤에는 '도원리휴양지' 표지판을 따라간다. 길은 계속해서 문암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16m 거대 농부상. 절반은 동상, 절반은 건물인 특이한 모양의 건축물.
 16m 거대 농부상. 절반은 동상, 절반은 건물인 특이한 모양의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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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도학초등학교 앞에서 16m 거대 농부상과 마주친다. 이제 막 모내기를 막 끝낸 논들 한가운데에 왜 이런 동상이 서 있는지 의아하다. 그 큰 굴삭기도 이 농부 앞에서는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한 농부가 지게에 장독 여러 개를 지고서 이제 막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무슨 동상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독에 창문이 달려 있고, 그 아래로는 장독 밑으로 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그러니까 이 농부상은 반은 동상이고 반은 건물이다. 농부는 동상이지만 장독은 건물인 셈이다. 이 건축물은 복합문화예술센터 사무실과 전시실, 그리고 마을회관 등의 용도로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 건물에는 그 옛날, 이곳의 마을 주민들이 장독을 만들어 산 너머 장에 내다 팔던 시절의 역사와 추억이 담겨 있다. 주민들은 이 건물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추억을 심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건물은 6월 말 준공 예정이다. 지금은 건물 앞과 뒤로 조경 공사가 한창이다. 특이한 걸로 따지자면 이 건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곳에서 얼마 안 가 도원리휴양지다. 도원리휴양지는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계곡이다.

문암리 모내기를 끝낸 들판.
 문암리 모내기를 끝낸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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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사는 동네, 신선이 되고 싶어 찾아오는 인간들

도원리 마을 입구 표지석.
 도원리 마을 입구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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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리휴양지로 들어서기 전에 호수나 다름이 없는 넓은 저수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휴양지로 가려면 이 저수지 둘레를 빙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도원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연유한 마을 이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름을 '무릉도원'에서 따왔다고 해도 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휴양지를 형성하고 있는 계곡이 무릉도원이나 마찬가지로 깊고 외진 데다, 신선이 사는 곳이나 마찬가지로 별천지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계곡 안이 온통 하얀 바위투성이다. 그 바위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흰 빛을 띠고 있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누군가 일부러 바위 표면을 수없이 갈고 닦은 것처럼 보인다. 그 바위들이 지상으로 내려 온 신선들이 유유자적 자리를 잡고 앉아 하루 종일 바둑을 두다 가는 곳이라고 해도 좋은 만큼 넓고 깨끗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곳 도원리휴양지의 바위들도 문암리의 능파대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데가 있다.

도원리휴양지, 거대한 바위들.
 도원리휴양지, 거대한 바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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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양 편 언덕 위로 나무숲이 짙게 덮여 있다. 그늘이 서늘하다. 계곡으로는 얼음장처럼 맑고 찬 물이 흐른다. 도원리휴양지는 이 지역에서 여름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이 계곡을 새카맣게 뒤덮는다. 아이들이 몸을 담그고 놀기에 적당한 곳이 많다. 하지만 개중에는 수심이 3m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한여름에는 마을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해야 휴양지로 들어갈 수 있다.

휴양지 계곡을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마산봉 산 중턱을 이리저리 돌아서 내려오는 임도가 나온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왔다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길이다. 오늘은 휴양지 계곡에서 여행을 끝낸다. 신선이 따로 없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려니, 내가 마치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자꾸 시간이 늦어진다. 지금은 굳이 자전거를 타고서 산을 올라가야 할 이무런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도원리휴양지, 하얀 암반이 인상적인 계곡.
 도원리휴양지, 하얀 암반이 인상적인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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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능파대, #도리원휴양지, #16M 거대 농부, #고성, #문암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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