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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론들의 실시간 생중계를 통해 온 국민에게 보여진 '통진당 사태'.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한 사진이 떠돌았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로 보이는 대학생이 조준호 전 공동대표의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하필 여학생이었다. 사진이 화제가 되자, 어느 트위터 유저는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멘션을 올렸고 격한 반응은 꼬리를 물었다.

"이름 공모합니다. XX녀... 무슨 녀가 딱 맞으려나?"
"머리끄댕이녀 어때요?"
"끝장녀 합시다!"

문득 'OO녀'라는 딱지를 붙이기 이전에, '대학생'이나 '청년 당원'으로 그를 볼 수는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 학생이 남학생이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국물녀, 무릎녀, 대변녀... 세기도 힘든 OO녀들

많은 언론에서 'OO녀'와 'OO남'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 포털에 띄우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 인기검색어 코너에 '지하철 OO녀, XX동 OO녀' 등의 검색어가 오르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최근 두 달간 언론과 SNS를 통해 이슈화된 OO녀들을 짚어 봤다. '국물녀' '나체녀' '주말 개통녀' '분당선 대변녀' '택시 막말녀' '버스 무릎녀' '지하철 담배녀', 결국 허구로 밝혀진 '압구정 가슴녀'까지. 참 많다. 최근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하철 등에서 '녀'님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번엔 'OO남'들을 한 번 볼까? '팔꿈치 성추행남'과 '성희롱 할아버지' 등 OO남으로 불리진 않지만, 어쨌든 있다. 간간이 트위터에 "나 오늘 지하철에서 막말하는 남자 봤어"라는 내용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기사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지난 두 달간 '남'님들은 '녀'님들보다 성적이 부진(?)하시다!

이 'OO녀'라는 호칭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여성이 그 일을 했기 때문에 OO녀라고 불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OO녀'가 'OO남'보다 빈번히 이슈가 되는 걸까? 원래 그런 여자들이 많아서? 이 안에는 조금 더 복잡한, 성에 대한 고정적인 시선과 단단한 성억압적 결이 실려 있다.

인터넷과 언론에서 'OO녀'가 유독 뜨는 이유

'OO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크게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우선 여성의 행동이 사회통념과 부정적으로 어긋날 때 'OO녀'가 생겨난다. 대개 무개념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대상이 되지만, 특히 여성의 행동이 평소 여성에 대한 이미지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것은 특이한 '기사 거리'가 된다.

이런 여성이 '남성보다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선입견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하철 OO녀'를 다룬 기사가 OO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바로 여성에게 더 엄격한 사회적 잣대를 들이댄 결과다. 사회나 공공장소에서 무개념적으로 행동한 '개똥녀', '지하철 대변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때 떠오른 OO녀는 사회적 비난과 신상추적의 대상이 되며, 성적 욕설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와 반대로 여성이 사회통념보다 긍정적으로 비칠 때도 'OO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투표 개념녀'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투표한 여성연예인이나 독려운동을 한 여성은 '광화문 개념녀'나 '개념 아이돌' 등으로 떠올랐지만, 남성은 투표를 해도 '개념남'으로 크게 뜨지 못한다. 왜일까? 이 역시 뒤집어 생각하면 '여성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으니 더욱 바람직하게 독려해야 할 존재'라는, 전혀 균형적이지 못한 시선의 결과가 아닐까?

이 표현에 여성들이 불편해하는 이유 역시 그를 '개념녀'라고 판단하는 주체가 결국 남성 혹은 남성중심적 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념녀' 또한 '무개념녀'를 가려내는 편파적 기준에 의해 걸러진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총선 무렵 논란을 일으켰던 '투표 개념녀'포스터. '왜 하필 여성만을 대상으로 '개념녀'로 묘사했는가'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 포스터를 가지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이 서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총선 무렵 논란을 일으켰던 '투표 개념녀'포스터. '왜 하필 여성만을 대상으로 '개념녀'로 묘사했는가'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 포스터를 가지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이 서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 투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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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이런 메시지가 공익광고의 이미지가 되거나 언론에서 기사화되는 순간, 시선의 폭력성은 더욱 커진다. 총선 당시 투표 독려용으로 만들어졌지만 '나, 투표한 여자야. 그대, 개념녀인가?'라는 문구로 논란을 일으켰던 투표 개념녀 포스터가 이에 해당한다.

괘씸하거나, 혹은 예쁘거나... 여성 대상화가 만들어낸 OO녀

성적 욕망을 담은 개념으로 여성을 부르는 경우를 살펴보자. 비판의 의미로 쓰이는 표현을 제외한 나머지의 OO녀와 OO남 표현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2006년 월드컵 당시 '엘프녀'가 외모로 눈길을 받으면서 연예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OO녀'들이 언론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이슈화를 노린 마케팅 목적으로 몇몇 업체가 예쁜 모델을 고용해 고의적으로 'OO녀'를 띄우기도 했다.

급기야 'OO녀'를 매주 생산하는 TV프로그램까지 나오기 시작하면서 OO녀는 사실상 '예쁜 외모'의 한 지표가 되었다. 이때 해당 여성의 정체성은 남성의 은밀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제한되어 버린다. 남성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초콜릿 복근의 '짐승남'부터 시작해서, 얼핏 보면 성격만 말하는 것 같은 '차도남'과 '까도남'등의 호칭에도 사실 괜찮은 얼굴과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춰야 그렇게 불릴 수 있다는 차별적이고 외모를 중시한 의미가 들어있다.

결국 어느 과정으로 불리든, 'OO녀'라는 호칭은 이미 여성(및 남성)을 대상화하고 고정시키는 사회적 시선이 부여된 개념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부를 때 각 성별에 대해 기대하게 되는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고 고정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 특히 이슈와 유행어를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언론사 기자들이 대놓고 앞다퉈 이러한 수식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여대생' '여경' '여선생'... 굳이 여성성을 부각할 필요 있나?

굳이 'OO녀'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이미 뉴스 헤드라인 중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해당 기사의 주인공이 여성일 경우, 기사 제목이나 키워드에서 '20대녀'나 '여선생'과 같은 단어의 사용횟수가 월등히 높다.

지난 10일자 <한겨레>에는 "가난한 여대생 자취방에 날아든 벌금 200만원 날벼락"이라는 기사가 떴고, 이지은 경감이 검찰을 향해 시위했던 지난 4월 28일에는 여러 언론사가 "현직 여경 1인시위"라는 헤드라인을 택했다. <오마이뉴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4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관련 기사에는 "여대생 욕설 '뭐야 이 아줌마, 아줌마는 빠져!'"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러나 기사를 읽어보면 과연 그러한 표현이 기사의 내용이나 주제와 큰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다. '여대생'이나 '여경'이란 표현을 굳이 왜 썼을까? 그냥 '대학생'이나 '현직 경찰 1인시위'라고 적어도 기사 내용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대학생' '경찰'이라는 '직업'을 강조해야지, 당사자가 '여성'이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18일 오후, 네이버 포털을 검색해서 여성 키워드가 얼마나 등장하는지 봤다. 톱뉴스를 포함하여 각 컨텐츠별로 상위 2개 기사 중 한개 꼴로 여성을 제목에서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일 오후, 네이버 포털을 검색해서 여성 키워드가 얼마나 등장하는지 봤다. 톱뉴스를 포함하여 각 컨텐츠별로 상위 2개 기사 중 한개 꼴로 여성을 제목에서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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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여성의 신체나 여성성은 눈길을 끌게 만드는 '선정적인 키워드'라는 게 밝혀진다. 해당 기사의 주인공이 남성일 경우에 주로 일반 명사를 쓰지 '남대생' '남자 경찰'이라고 쓰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은 더 명확해진다.

결국 언론사가 기사 제목을 뽑아내는 과정에도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투입되며, 여성성은 클릭수를 늘리는 기폭제로 이용된다. 내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클릭수를 위해 강조되다니.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

백혈병 피해노동자 사망에 고작 '30살女'라니?

이런 시선이 언론에 있을 때, 상당히 당혹스러운 제목들이 등장하게 된다. 삼성의 백혈병 노동자였던 고 이윤정씨의 노제가 열린 지난 10일, <경향>은 "30살女 시신, 삼성사옥 앞에서 오갈데없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도대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인 고인이 '30살'이나 '여성'이라는 말로만 요약될 수 있는 사람인가?

많은 비판이 일었고, 한 누리꾼은 "故 이윤정씨가 30살녀 시신으로 표현되는 것이 씁쓸하네요. 꼭 저렇게 표현해야만 하는지? 이렇게 하면 조중동이나 경향이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통합진보당 김재연 당선자에게 '진보당 얼짱녀'라는 선정적인 키워드를 달아 비판받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눈물펑펑 진보당 얼짱女에 네티즌 분노 이유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문제의 본질은 언론사들이 이슈를 위해 무분별하게 용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남성 중심 시선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몇년 전부터 꾸준히 'OO녀'를 생산해온 언론들은 스스로 만들어내 선정적이고 성억압적인 시선에 대해 이제 자숙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뿐 아니라 수많은 누리꾼 역시 'OO녀'와 'OO남'이라고 딱지 붙이기 전에 이 말들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5월의 어느 날, 인터넷 포털을 켰다가 뉴스목록을 본 한 누리꾼의 감상을 인용해 본다.

"2일 오늘의 네이버 메인 탑뉴스 1면 제목 8개 중 4개 "아양 떨던 여고생..." "운동장 김여사..." "숙녀가 된 소녀 '매운 맛 보여주겠다'" "란제리녀, 파격 속옷 거리활보" 역사적 사료로 남기고 싶다." - @sunshine_Jung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희대학교 교지<고황> 83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00녀, #00남, #이슈메이킹, #선정성,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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