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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사람 냄새>
ⓒ 보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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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백혈병'이란 게 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며 얻은 백혈병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말까지 생겨나 회자되고 있음은 그만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얻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노후라인으로 불리는 3라인에서만 백혈병 환자와 희귀병 환자가 5명이나 나왔다. 삼성 여러 분야의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백혈병과 같은 병으로 죽었다. 최근 악성뇌종양으로 죽은(2012년 5월 7일) 이윤정씨까지 알려진 사망자는 55명이다.  

심지어는 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황유미씨와 이숙영씨)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백혈병으로 죽었다. 이는 누가 봐도 산업재해(이하 산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삼성 측은 산재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은폐하려고만 한다. 피해자들이 이런 삼성 측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삼성백혈병'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더욱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은 이 삼성백혈병의 원인, 즉 삼성반도체의 작업 실태나 환경을 비롯하여 삼성백혈병의 피해자들, 삼성 백혈병의 책임자인 삼성의 오만함과 비도덕, 오늘날의 삼성을 가능케 한 우리 사회의 이중성과 부조리 그 실체를 다룬 시리즈 만화다.

시리즈인 이 두 권의 공통주제는 삼성반도체의 희생자들이나 이야기 전개는 약간 다르다. <사람 냄새>는 황유미씨의 죽음과 가족들의 비극을 다루는 한편, 황유미씨 죽음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묻히고 만 이유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처음 시작한 게 2007년 11월 20일이에요. 황상기 아버님이 문제를 제기해서 시작된 거죠. 2011년 현재 제보자(삼성 혹은 반도체 피해자)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명단을 모아보니 100명이 넘었습니다. 100명이라고 치면 30명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고요. 열에 아홉은 암입니다. 이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중후반에 암에 걸린 분들인데요. 이분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은 40대입니다. 암은 보통 65세가 넘는 노인들이 많이 걸리는 병인데…. 암 중에는 백혈병, 림프종 등의 혈액암, 골수에 문제가 생기는 쪽이 가장 많고요. 난소암, 뇌종양, 피부암, 직장암 같은 다른 쪽 암들도 제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 <사람 냄새>에서

'국민기업', '무노조 신화' 삼성의 실체는?

고 이윤정씨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엄수된 노제에서 고인의 시어머니 김정숙씨가 오열하며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고 이윤정씨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엄수된 노제에서 고인의 시어머니 김정숙씨가 오열하며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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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일한 지 2년여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죽은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다.

황유미씨는 고3 재학 중인 2003년 10월, 학교의 추천으로 친구들과 함께 삼성에 입사, 심사와 교육 이후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 배치된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2년쯤 지난 2005년 5월 말, 골수 이식 수술까지 받지만 2007년에 결국 죽고 만다.

황상기씨는 딸의 치료 때문에 수원 아주대병원에 드나들던 2007년 7월, 같은 병원에 또 다른 삼성 반도체 직원이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결국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딸의 백혈병이 산업재해임을 확신하고 삼성 측에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삼성은 '개인의 질병'이라 주장하는 한편, 치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끔 회유하려 든다.

이 책의 또 한 줄기는 삼성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반도체 공장이 황유미씨의 몸에 백혈병을 불러왔듯, 삼성은 암세포처럼 우리 사회 전체에 스며들어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만화는 한국사회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경제학자로서 자신 있게 말한다. 삼성 하나 없어져도 아무 문제없다. 세계 일류 삼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 우리는 우리 몸속에서 자라는 암세포를 부추길 뿐이다. 우리 스스로가 삼성이라는 암세포를 도려내려 노력할 때 고 황유미씨도 비로소 편안히 눈감을 수 있을 것이다. - 정태인(새로운 시대를 여는 연구원 원장) 추천사 중에서(<사람 냄새>)

황상기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승인해줄 수 없다 한다. 이에 재심사 절차를 통해 거듭 산재 신청을 한다. 그러나 거듭 거절당한다. 그러자 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한 산재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산업재해 인정 행정소송을 한다. 피해자인 황상기씨가 원고가 되고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정부기관이 피고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이 삼성 때문에 피고가 된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삼성에 요청했고, 이에 삼성은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여러 명 고용해 그 변호사들이 피고측 보조참가인이라는 자격으로 삼성을 변론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피해자가 삼성의 돈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한 공공보험인 산재보험에서 보험금을 받겠다는 건데 삼성이 왜 그렇게 많은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하면서 산재 보험 타는 것을 막고 있을까?

책은 삼성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비극, 투병 및 산재신청 소송과정에서 황상기씨가 겪는 것들을 바탕으로 혹자들에게는 노조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우수한 근무 여건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무노조 경영, 투병 중인 직원들에게 내미는 '백지 사표',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끈질긴 회유책,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인식 등 삼성의 어두운 진실들을 들려준다.

삼성에서 딸과 남편을 잃은 가족들의 비극적 '현실'

<먼지 없는 방>
 <먼지 없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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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숙영, 황유미가 수동으로 한 작업은 대단히 위험해요. 불산, 황산, BOE 등을 다뤄요. 기계화된 화학물질이 숨 쉴 때 코로 들어와요. 마스크 같은 보호 장비는 효과 없어요. 제대로 된 보호 장비는 바이어나 VIP만 썼어요. 작업자가 그걸 쓰면 작업능률이 떨어져요. 엔지니어들은 설비 클린할 때 챔버를 열고 작업하면서 열과 가스의 부산물들을 코로 들이마시게 돼요. 폐액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엔지니어는 부산물을 들이마셔요." - 어떤 삼성 엔지니어의 말(<먼지 없는 방>)

"삼성에서도 일하고, 외국에서도 일해 본 분이 있는데 해외에서는 가스 교체할 때 산소마스크 쓴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일하는 동안 그런 엔지니어 본 적이 없어. 고과로 너무 경쟁을 시켜. 아무도 위험하다고 말 안 해." - 어떤 삼성 출신 노동자의 말(<먼지 없는 방>)

<먼지 없는 방>의 한 부분이다. 삼성에 현재 근무하기 때문에 자신의 제보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밥줄이 위험하기 때문에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접촉으로 제보하게 된 한 엔지니어와 삼성에 근무했던 어떤 사람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반도체 산업의 실체와 작업자들을 백혈병을 비롯한 각종 암과 희귀병으로 몰아가게 한 삼성반도체의 어두운 작업 현장을 집중적으로 알려주는 한편, 엔지니어 황민웅씨의 죽음과 남겨진 가족들의 비극 등을 다룬다.

황민웅씨는 황유미씨가 일했던 삼성반도체 기흥작업장의 1라인에서 설비기사로 일하던 중 백혈병으로 죽었다. 그가 일했던 1라인은 황유미씨가 일했던 3라인, 그리고 2라인과 함께 작업자들 사이에 노후라인으로 불리었던 라인이었다.

그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은 신혼의 단꿈이 깨지기도 전. 아내가 둘째를 출산한 직후까지 투병을 하다 어린 두 아이의 아빠로 죽었을 때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백혈병으로 죽은 황유미씨와 황민웅씨, 황유미씨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업을 했던 이숙영씨 모두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노후라인으로 불린 제1~3라인에서 근무했는데 이들이 작업을 할 당시에는 장치에 뚜껑이 없어 작업자들이 수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됐다고 한다.

이에 황상기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작업현장 공개를 요구했으나 삼성은 이들의 요구를 무시해 왔다. 그러다가 2010년 4월 15일 기흥작업장을 언론에 공개한다.

삼성이 이때 작업장을 공개한 목적은 유족들의 산업재해 주장이 터무니없는 거짓임을 증명하고자 함이었다. 책에 따르면, 삼성은 공개에 앞서 문제의 노후라인(1~3라인)을 다 없애고 4~5라인의 설비들을 바꾸는가 하면 황유미씨 등이 호소했던 숨쉬기조차 답답했던 환경 등을 서늘한 상태로 바꾸는 등과 같은 일련의 일들을 한 후에 공개를 하게 된다.

삼성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나와 상관없는 얘기일까 

고 이윤정씨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엄수된 노제에서 한 시민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 이윤정씨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엄수된 노제에서 한 시민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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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은 이런 과정들을, 이제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삼성반도체 작업현장과 반도체 생산과정을 삼성반도체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황민웅씨를 만나 결혼한 정애정씨나 이들처럼 근무했던 사람들, 근무하고 있는 일부 제보자들의 증언을 통해 들려준다.

책을 통해 만나는 인간 냄새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누가 봐도 산재인 책임은 나 몰라라 하면서 투병 중인 사람과 그 가족에게 '백지 사표'를 종용한다거나,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사전에 막고자 검은 돈을 내밀며 끈질기게 회유하는 등과 같은 처사들은 너무나 어이없다.

반도체산업은 청정하다?
반도체산업을 기업 스스로 '청정산업'이라 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전한 산업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는다. '청정'이란 말이 사람에게 좋은 쪽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청정'은 반도체 칩이 먼지로부터 청정하다는 뜻이다. 가로 세로 높이 30Cm 정육면체 안에 먼지 하나가 클래스(청정 정도) 1이란다.

중요한 사실은 반도체산업이 매우 많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경우 한 라인에서만 무려 99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한다고 한다. 클린룸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에는 직접적인 발암물질(벤젠, 산화에틸렌, 트리클로로에틸렌, 아르신, 비소화합물, 포르말린 등)도 있고, 화학물질들끼리 반응해서 발암물질이 부산물로 나오기도 한다.

참고로 위에 직접적인 발암물질로 언급한 화학물질들 모두 공통적으로 백혈병과 림프종을 발생시키는데 여기에 산화에틸렌은 간암과 신장염까지, 트리클로로에틸렌은 간암, 아르신과 비소화합물은 피부암과 폐암까지 발병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사실들은 이런 물질들이 암을 발병시키는데 30년이나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벤젠이나 블루엔 같은 유기용제는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유기용제에 금속을 담가 오염된 걸 제거하거나 세척한다. 최첨단산업이라고도 하는지라 모든 설비가 최신식 자동일 것 같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황유미씨는 이처럼 위험한 유기용제에 금속판을 직접 넣어 세척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어디 황유미씨 뿐일까. - 책에서 정리
그동안 간혹 뉴스를 통해 접했던 '세계 최초 개발'이나 '시장 점유율 1위' 등과 같은 화려한 언론 보도 속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숨죽이며 땀과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머릿속은 여전히 상당 부분 기업이나 언론이나 기관 등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분노와 불쾌함이 엉켜들기도 했다.

이 두 권의 책은 삼성백혈병 문제를 직접 다루는 한편, 삼성이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비롯하여 그간 보도 등을 통해 접했던 삼성특검과 같은 무거운 주제부터 일반인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무노조 경영신화나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등과 같은 말의 진실 등까지 누구나 읽기 쉬운 만화로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그간 이해하기 힘든 '삼성문제'를 정리해볼 수 있었다.

혹자들에게 이 책들이 다루고 있는 삼성백혈병 문제는 삼성반도체나 삼성에 근무하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로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 냄새>나 <먼지 없는 방> 그 일부만이라도 읽은 사람들이라면 삼성백혈병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쉽게 느꼈으리라. 우리가 삼성백혈병이나 이 책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까지도 말이다.

때문에 나와 같은 40대보다, 더 많은 날들을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이 이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삼성백혈병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이 책 속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은(또 겪고 있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삼성처럼 큰 회사의 실정이 이런데 다른 회사들은 오죽할 건가?'와 같은 생각 또한 들었음도 덧붙이고 싶다.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김수박 지음, 보리(2012)


태그:#삼성백혈병,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황유미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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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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