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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이 점점 구조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벗어나는 길은? 간단합니다. 학교를 벗어나면 됩니다. 요즘 홈스쿨링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학교만 벗어나면 다 되는 걸까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아이와 함께 홈스쿨링을 결정하긴 했지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막막합니다." "홈스쿨러 모임, 어디 없나요?" 이렇게 관심은 높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데는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 전반의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교육과 삶을 추구하는 교육단체들이 공동으로 강좌를 기획했습니다. 홈스쿨링 가정들이 서로 연대하여 지평을 넓혀가는 '홈스쿨링 가정연대', 대안교육 관련하여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격월간 잡지 <민들레>, 탈학교 아이들에 대한 다양한 배움터와 어울림터를 제공하는 '학교너머', 우리나라 다양한 대안적 배움터들의 연대체인 '대안교육연대'가 함께 내용을 채웁니다. 오는 5월 18일 첫 강의를 앞두고 '홈스쿨링'에 대해 네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간지 11년째. 제법 시간이 흘렀다. 중학교 일학년을 다니다 그만둔 큰 아이는 대학조차 가지 않고 이제 25살 어른이 되었다.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를 한 달쯤 다니다가 그만두었으니 이제 18살 청소년.

학교를 안 다니면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고 성장할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근데 아이들을 가까이 지켜보는 나 역시 궁금하다. 그 이유는 그만큼 아이들 하루가 변화무쌍하기에 그렇다고나 할까. 이는 우리 아이들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많은 홈스쿨러들이 그렇다.

홈스쿨링이 뭐냐고 정의를 내린다면 나는 '삶이 곧 교육'인 교육방식이라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니 부모가 아이를 하루 종일 끼고 가르친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이 세상에서 제 자식을 끼고 가르칠만한 부모가 과연 있을까? 나는 거의 없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부모 뜻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되어서도 안 되지 않을까?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병아리만 해도 모두가 잘 자라고자 하지 않나? 생명 본성을 잘 살려야 한다.
 병아리만 해도 모두가 잘 자라고자 하지 않나? 생명 본성을 잘 살려야 한다.
ⓒ 김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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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며 성장하는가. 그리고 부모인 나 자신은 이 과정에서 무얼 하며, 무엇을 느끼는가.

내가 믿는 건 아이들이 갖는 생명 본성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그 누가 뭐라 하기 전에 스스로 잘 자라고 싶어한다. 병아리도 그렇고, 새끼 고양이도 그렇다. 짐승만 그런가. 곡식도 풀도 나무도 다 그렇다.

'잘 자랄 수 있는 환경만 갖추어 준다면' 사람이 할일이란 그저 기다리는 것뿐. 벼를 많이 먹을 욕심으로 좁은 곳에서 빼곡하게 심으면 위로만 웃자라다가 병들거나 비실비실하다가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한해살이를 마감한다. 그러나 적당한 간격으로 적당한 포기를 심으면 저 알아서 가지치기를 하면서 마음껏 자란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나? 학교 폭력이 구조화하고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가장 보편적이 이유를 들자면 교육환경이라 하겠다. 좁은 교실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무한경쟁을 시키는 교육시스템이야말로 아이들을 지치고, 거칠게 하며 더 나아가 병들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이런 제도교육의 아픔과 한계를 벗어나고자, 적지 않은 부모와 교사들이 대안학교들을 세웠고, 일정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홈스쿨링 역시 대안교육의 한 흐름이면서 어쩌면 가장 오래된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 홈스쿨링은 가장 오래된 미래교육이다. 옛날식 자녀교육이란 대부분 부모 곁에서 어깨너머로 이루어졌으며, 조금씩 자라면서는 마을이 아이들을 키워왔다. 이런 교육 환경이라면 아이들은 얼른 어른이 되고자 한다. 사춘기만 되면 설레는 마음 안고 이성을 찾게 되고, 짝을 이루어 가정을 꾸리고자 했다. 부모조차 논 한 뙈기 물려줄 여유조차 없으면서도 자식을 결혼시키고자 했다. 제 밥 그릇 타고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러니 아이들은 일찍이 독립된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우리 교육에서 가장 많이 빠진 부분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그건 바로 독립적인 힘을 가진 어른 되기. 이를 달리 말하자면 뭐든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교육의 나비효과

큰 아이가 <열두 달 토끼 밥상> 책을 내고 아이들과 요리를 한 뒤 기념 촬영.
 큰 아이가 <열두 달 토끼 밥상> 책을 내고 아이들과 요리를 한 뒤 기념 촬영.
ⓒ 김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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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려 한다. 덩달아 집중을 잘 하게 되고, 성취동기도 높다.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게 뭘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거다. 잘 먹는 거 하나만 보자. 잘 먹자면 음식이 이전에 먹고 싶은 몸과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거나 배고프지 않으면 먹히지 않는다.

또한 땅과 물, 그리고 공기 오염이 심한 곳에서 화학비료를 주어서 키운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라면 잘 먹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잘 먹는 그 근본을 파고 들다보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게 된다.

우리 큰 아이가 중학교를 그만두고, 새롭게 관심을 보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먹을거리였다. 한창 차라는 청소년이다 보니 부모보다 먼저 배가 고프다. 이럴 때 부모가 밥상을 차려주길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스스로 차리기 시작했다.

잘 먹는 비법 가운데 하나는 남이 차려주는 밥상보다 손수 차리는 게 더 맛나다는 사실. 게다가 냉장고에 오래 들어있는 재료들보다 본인이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나 쑥갓이 한결 더 맛나다는 걸 두루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과 앎은 다시 삶에 대한 의욕을 더 북돋운다. 잘 먹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나 배움이나 일에 대해서도 역시나 의욕이 솟게 마련. 밥을 맛나게 먹는 법을 알아가면서 자기 방만한 크기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는 글쓰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조금씩 글쓰기에도 관심을 갖고 일기를 쓰곤 했다.

차츰 경험이 쌓이고, 부모가 곁에서 조금씩 도와주자, 아이는 열일곱 나이에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어린이 잡지에 요리 이야기를 연재하게 되었다. 어린이들한테 인기가 좋아서인지 꼬박 3년을 연재했고 이를 묶어 <열두 달 토끼 밥상>이라는 어린이 요리책을 내게 되었다. 만 스무 살이지만 책을 내었으니 이제는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그래서는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교육의 나비효과'라 부른다. 아이가 갖는 아주 작지만 소중한 관심 하나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살려간다면 그 효과는 나비 날갯짓이 태풍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보기가 아닐까.

'사회적 부모'로 거듭나기

사회적 부모가 되어 내 아이만이 아니라 그림이 관심 있는 아이들에게 두루 가르쳐주는 모습.
 사회적 부모가 되어 내 아이만이 아니라 그림이 관심 있는 아이들에게 두루 가르쳐주는 모습.
ⓒ 김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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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이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건 아니다.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건 누구나 재미가 없는 법. 자아실현의 과정은 아마도 끝이 없지 싶다.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서 성장하다 보니 자랄수록 관심 분야 역시 점점 더 넓고 깊게 바뀌는 거 같다. 이를테면 어느 날 그림에 흥미가 생기니 이 역시 틈 날 때면 조금씩 익혀가기 시작했다. 그림이라면 글쓰기와 달리 우리 부부는 거의 젬병에 가깝다. 근데 아이가 그림에 관심을 갖자, 도와주겠다는 어른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심지어 아이가 아무 생각이 없을 때조차 아이한테 자극을 주고 도움을 주고자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되돌아보자면 큰 아이가 14살 무렵,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이 우리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이가 학교를 안 다니니까 시간이 많고 또 친구들도 사귀고 싶어서인지, 자연스레 두 번에 걸쳐 보름 정도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걷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아이는 많은 이들을 사귀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만화가였고, 우리 아이한테 그림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언제든 오라고 격려해주셨다. 걷기 운동이 끝난 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이한테 그림에 대한 욕구가 새록새록 올라왔나 보다. 그 만화가 선생님한테 연락을 하니 기꺼이 만나 주었고, 많은 도움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아이 그림 실력이 한꺼번에 나아지지는 않았다. 도움말을 토대로 몇 번 그려보다 더 이상 발전이 없자, 잠시 그림을 접었다. 그러다가 또 한 해 정도 흘러, 이번에는 미술 선생을 하시다가 귀농을 한, 또 다른 어른을 만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솟아나게 되었다. 

이 이웃은 입시 위주의 그림보다는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게 가장 좋다며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도움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는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자신한테 도움말을 주겠다는 어른들을 만나면 기꺼이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을 성장시켜갔다.

그러더니 지지난해인가 들녘 출판사 주간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 우리 아내가 지은 <자연달력 제철밥상> 개정판 작업을 상의하려고. 근데 출판사 주간은 우리 큰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개정판 책에 삽화를 그려줄 것을 제안했고, 아이는 기꺼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아이가 이렇게 그림을 배우고 또 사회활동으로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게 떠오른 이미지가 '사회적 부모'였다. 우리 부부가 우리 아이한테 전혀 도와줄 수 없는 몫을 다른 누군가 했을 때 이분들을 나는 사회적 부모라 부른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성장의 자양분을 듬뿍 주신 분들. 어쩌면 아이들은 이 분들에 대해 부모와 마찬가지로 고맙게 여기리라 믿는다.

'홈스쿨링 가정연대'를 함께 꾸리며

'홈스쿨링 가정연대' 행사 가운데 하나인 2박 3일 '성장잔치 한마당' 과정에서 음악회 모습.
 '홈스쿨링 가정연대' 행사 가운데 하나인 2박 3일 '성장잔치 한마당' 과정에서 음악회 모습.
ⓒ 김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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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새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 누군가에게 사회적 부모 노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사회적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해줄 수 있다 싶은 것들을 들어보자면 농사와 글쓰기 정도. 아니면 이것저것 두루 하는 전인적인 삶. 그리고 홈스쿨러 아이들끼리 두루 어울릴 수 있게 모임을 만들고 꾸리는 것. 다만 이런 것들이 제대로 힘을 가지자면 아이가 소중한 뭔가를 배우고 또 어울리자면 아이 스스로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렇게 사회적 부모라는 개념을 정리하고 나니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 모습이 조금씩 그려진다. 사회란 꽤나 복잡한 거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 최소 단위는 가정이라 하겠다. 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키우듯이 남 아이도 그렇게 같이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이때 조금 조심스런 부분이 없지 않다. 그건 바로 홈스쿨링을 해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개별 가정의 특색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부모가 어떤 환경과 어떤 철학을 갖느냐에 따라 자녀가 무척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점 때문인지 한동안 홈스쿨러들은 모임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많이 돌았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가정은 크게 늘고 있으며, 이제는 어울릴 수 있는 물이 넉넉하다 보니 그룹들도 다양하게 생기게 된다.

우리 역시 처음에는 모임 확대를 바라지 않고 내실을 기하기로 했다. 세 가정만으로 비공개 모임을 가졌다. 6개월쯤 지나자 조금씩 자신이 생겨, 그 다음부터는 모임을 확대했다. 열 일곱 가정으로 늘리고 반공개로 일년을 함께했다. 그러다가 올 초 학교 폭력이 심해지고 또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가정들이 급속히 늘면서 모임을 좀더 개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가정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가정들의 동기나 모습이 너무나 다양하기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정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전국에 흩어져 잇는 여러 가정이 모인다는 건 서로 힘이 되지만, 어려움도 많지 않겠나. 누구나 느끼듯이 사람 관계가 쉽지 않음을… 그것도 개성이 강한 사람들의 모임.

그리하여 우리 모임에 회원이 되자면 거치는 절차가 있다. 운영위원들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추천을 받자면 홈스쿨러 가정을 위한 '사랑방 강좌'나 '기획 강좌' 또는 운영위원이 주관하는 지역 모임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절차들이 꽤나 복잡한 거 같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기에 큰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

우리는 오프 모임을 위한 <홈스쿨링 가정연대>( http://cafe.daum.net/homestogether )라는 온라인 공간도 갖는다. 일상은 온라인에서 소통을 하고 오프에서는 또래별, 관심분야별, 지역별 모임을 가진다. 또한 전체가 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로는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성장잔치 한마당' 행사가 있다.

가정을 토대로 '사회적 형제애'를 키워가기

보통 학교에 안 다니면 친구를 어찌 사귀지? 친구 관계가 너무 좁아지는 거 아니야?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점에서는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홈스쿨러들에게 친구는 또래 친구만을 뜻하지 않는다. 친구(親舊)는 말 그대로 서로 친한 사이다. 우리네 일상적인 삶을 돌아보아도 사실 또래 친구보다는 서로 잘 통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친구라고 할 때 또래 친구를 넘어, 서로 잘 통하는 사이라고 분명히 정의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홈스쿨러들은 친구를 사귀는 데도 특색이 있다. 첫째가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롭기에 나이와 지역을 넘어 친구들을 사귄다는 점이다. 홈스쿨러들이 친구를 사귀는 두 번째 특징은 뭘까? 바로 자기 자신이 친구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학교가 선택이듯이 친구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학교는 또래 아이들 몇 십 명을 인위적으로 모아놓는다. 이때는 아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친구도 사겨야하는 어려움에 놓인다. 보고 싶지 않는 아이들과 한 반에서 같이 오래도록 생활한다는 건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특히나 개성이 강한 아이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나 학교 폭력이라 하겠다.

여기 견주어 홈스쿨러들은 친구를 선택하며 사귄다. 자기 가정 안에서 사람 관계가 충분히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친구를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때가 온다. 친구를 사귀고 싶고 그리워하는 때가. 친구를 빨리 그리고 여럿 필요로 하는 아이는 자기 관심에 따라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귄다. 요즘은 학교 밖에도 이런저런 모임이 있고, 캠프 형태의 행사도 많다. 사춘기 나이만 되도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훌쩍 떠나 친구들을 사귄다.

이와 관련해서 좀더 덧붙이고 싶은 건 홈스쿨러들은 '사회적 형제애'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사회는 형제 없이 외동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형제가 함께 커본 경험이 절대 부족하다. 이런 아쉬움과 부족함을 홈스쿨러들은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또래를 넘어 사귀게 되기에 사회적 형제애를 갖게 된다. 사회적 형제는 한 집에서 자라는 형제하고는 다르다. 사실 한 집에서 형제나 자매로 자라다 보면 많이 다투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집을 벗어나 다른 집 홈스쿨러들과 사귈 때는 이런 다툼이 훨씬 덜하다. 그 이유는 정말 보고 싶을 때 보니까 그렇다.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할 때는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외동으로 자라는 홈스쿨러야말로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또래보다는 위아래 고루 사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하다.

어쨌든 이 모든 관계의 토대는 다시 말하자면 가정이다. 가정은 그 모든 관계 맺기의 시작이자, 순환의 고리가 된다. 친구를 만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을 지내기에 그렇다. 마치 어른들이 일터로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하여, 홈스쿨링은 가장 오래된 미래교육이라 하겠다.

☞ [홈스쿨러 부모들을 위한 기획 강좌] 안내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쓴 김광화 기자는 홈스쿨링 가정연대 지기이며, <피어라 남자>의 저자입니다.

☞ 홈스쿨링 강의 접수 및 전화 문의 : 대안교육연대(02-322-0190)



태그:#홈스쿨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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