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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 바스티유 대광장에 모인 멜랑숑 후보 지지자들.
 지난 3월 18일 바스티유 대광장에 모인 멜랑숑 후보 지지자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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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 1월, 좌파 성향이 짙은 프랑스 친구들 몇 명에게 들은 말이다.

"참 이상해, 멜랑숑 집회에 가보면 사람들이 득실득실한데 언론에서는 한 마디도 없으니."

언론에서도 별 말이 없으니 기자가 멜랑숑에 대해 아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사실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불어 교사와 지역 신문 기자를 잠시 하다가 정치에 입문, 사회당에 가입하여 조스펭 정부 시절인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직업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8년 사회당을 탈퇴, 공산당과 함께 좌파전선(Front de Gauche)을 형성하여 대선 후보로 나서고 있다.

3월에 대선후보들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진 책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행복이 뭐냐고? 사르코지 답변 깨네) 그가 역사, 철학 등에 광범위한 지식을 갖고 있고 거침없는 달변으로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됐다.

멜랑숑의 보디가드 중 한 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근육질의 거대한 남자가 아닌 키 170cm에 몸무게 65kg밖에 안 되는 카라테 검은 띠 유단자다. 그는 철학 박사로, 멜랑숑은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그와 철학적 대화를 나눈다고 3월 15일자 <리베라시옹>은 밝히고 있다.

이렇게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멜랑숑. 언론에서 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드디어 벌어졌다. 지난 3월 18일, 1871년 파리 코뮌 항쟁이 일어난 날을 기념하여 바스티유 광장에서 멜랑숑의 집회가 열렸다.

'제6공화국 건설'을 외치며 역사적으로 시민 항쟁의 대표적인 장소인 바스티유를 점거함으로써 투표를 통한 시민반란을 이루자는 구호 하에 이 날의 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은 이 날 3만 명의 군중을 예상했다.

그러나 당일, 비가 구질구질 내린 일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2시 나시옹에서 시작된 도보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오후 5시쯤 바스티유 광장에 모여든 인구는 무려 12만 명에 달했다.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온 인파도 많았다. 기자도 이날 바스티유 광장에 갔었는데 속속 모여드는 인파로 광장에 바늘 하나 심을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멜랑숑 후보 지지자들이 나시옹에서부터 바스티유 광장으로 걸어서 행진하고 있다.
 멜랑숑 후보 지지자들이 나시옹에서부터 바스티유 광장으로 걸어서 행진하고 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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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무려 12만 명이 광장으로

서로에게 밀리고 밀치면서도 서로 웃어가며 "혁명" "국민을 위한 더 나은 사회" 등의 구호를 외치는 등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도보 행렬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운데 빨강 넥타이와 왼쪽 가슴에 노동 운동의 상징인 빨간 카네이션을 단 멜랑숑 후보가 바스티유 광장 중앙에 마련해 놓은 연단에 올라서서 20여 분간 연설을 했다. 연단 뒤쪽에 있었던 기자에게는 그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관중 속에서 '인터내셔널가'와 '마르세이유' 국가 제창이 이어졌다.

멜랑숑의 바스티유 대집회가 성공리에 끝나자 언론에서도 드디어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러 채널에서 다투어 멜랑숑을 초대했는데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극우파인 국민전선(FN) 대선 후보인 마린 르 펜을 가차없이 비난하고 있다.

프랑스인의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며 현재 프랑스 실업문제가 이민자들 때문이라는 르펜을 "정신이 반 나간 미친 사람"이라고 가차없이 비난하기도 했다. 2월 말 르 펜과 벌인 국영 TV 토론 자리에서 르 펜이 이 사실을 거론하면서 자기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과 토론하는 것을 거부하자 멜랑숑은 "그래도 나머지 정신 반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얘기니까 그리 섭섭해하지 말라"고 즉각적으로 대응하여 관객을 웃겼다.

지난 3월 27일 프랑스 북부 도시인 릴에서 열린 집회에서 멜랑숑은 다시 한 번 저력을 발휘한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랑 팔레(대궁전)에서 열린 집회는 발 디딜 틈이 없이 꽉 찼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5000명의 인파가 밖에 선 채로 멜랑숑의 연설을 들어야 했다. 이 날 모인 사람 수는 2만 3000명. 지방 도시로서는 대대적인 숫자이다.

4월 5일 열릴 툴루즈 집회에 좌파 전선은 5만 명의 인원을 예상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항상 예상을 '터무니 없이' 초월한 실적을 보아서는 더 많은 인원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툴루즈는 최근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총격 사건이 일어난 도시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을 견제하며 수시로 치안을 강조해왔던 사르코지 대통령과 반이민 정책을 쓰고 있는 극우파 마린 르 펜의 지지도가 약간 올라가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며칠 동안 프랑스를 떨게 했던 이 사건 후 대선 캠페인이 며칠간 중단되고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하여 올랑드, 바이루, 르 펜 등 대다수의 대선후보들이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멜랑숑은 혼자서 예정된 캠페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장례식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바스티유 대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 중인 멜랑숑 후보.
 바스티유 대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 중인 멜랑숑 후보.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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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장-축구 선구 보수 상한 정해야"

이렇게 많은 인파를 동원하는 멜랑숑의 힘은 무엇일까?

우선 그의 대선 프로그램에 있는데 사회당의 올랑드나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 후보가 이렇다 할 대선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멜랑숑의 대선 정책은 디테일하고 가려운 국민의 등을 긁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비판 정신을 강화하는 교육을 강화하고 교육 현장을 잠식하고 있는 지나친 상업주의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래 사회의 주역인 학생들이 단순히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업을 찾기 위한 단계로서의 학교 생활이 아니라, 학생들이 웃을 수 있고 노래할 수 있으며 시를 지을 수 있는 학교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이 정치 권력과 자본가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부의 배분이 골고루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의 소득이 무한정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기업 사장이나 축구 선수 등의 보수는 무한정 치솟고 있다며 이들 고소득자의 소득 한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에 36만 유로 이상을 버는 소득자의 초과소득은 100% 과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에 해당자들이 세금을 피해 과세율이 적은 나라로 이주할 가능성이 많은데 그럴 경우에도 미국처럼 이주국에서 내는 세금과 프랑스에서 내야 할 세금 차이를 따로 내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한 현재 월 1254유로인 최저임금을 1700유로로 인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기본 하에 그는 임신 중절권, 안락사 가능성, 동성애 결혼 허용 등을 주장하고 사법의 독립을 위해 사법을 국회의 보호 하에 둘 것,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모든 외국인들은 프랑스 국적을 가질 수 있는 권리, 지구 보호를 위해 원자력 에너지가 아닌 다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연구, 프랑스가 NATO에서 탈퇴하고 아프카니스탄에 파견된 프랑스 군사를 철회해야 하며 미국에 의해 야기되는 전쟁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멜랑숑 혁명, 올랑드를 물리칠 수 있을까?'. 지난 4월 1일자 <일요신문 Le Journal du Dimanche>에 실린 멜랑숑 후보.
 '멜랑숑 혁명, 올랑드를 물리칠 수 있을까?'. 지난 4월 1일자 <일요신문 Le Journal du Dimanche>에 실린 멜랑숑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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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1등까지 해버려?

누가 멜랑숑에 표를 던질까.

급진좌파, 공산당 등 전통적으로 좌파 성향을 갖는 유권자들이 당연히 멜랑숑에 표를 던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좌파에 속했던 노동자들이 그동안 우파로 전환한 경향이 많았는데 이번에 다시 많은 노동자들이 멜랑숑에게 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사회당 유권자 중에서도 올랑드의 선이 확실치 않은 대선정책, 즉 우파와 차별화되지 않은 정책에 실망한 자들이 멜랑숑에게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3월 29일자 <르몽드> 기사에서 지금까지 계속 사회당 후보에 표를 던졌다는 유권자 이반씨는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멜랑숑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그의 친구인 세바스티앙은 대선 예선에서 사표(死票) 방지를 외치며 사르코지를 격파하기 위해 올랑드에게 표를 던지라고 하나 자신은 멜랑숑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프랑스가 미국처럼 대립되는 주요 당파 2개만 존재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소수당이야말로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소수당이 존재할 수 있게 이들에게 표를 던져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선을 3주 앞둔 현 시점에서 멜랑숑에게는 3개의 목표가 있다. 첫번째 목표는 극우당 후보인 마린 르 펜을 앞서는 것. 이 목표에는 거의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지금까지 올랑드와 사르코지를 잇는 서열 3위의 르 펜은 현재 멜랑숑과 거의 같은 서열에 등급해 있다. 지난 1월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6%의 지지율을 받았던 멜랑숑은 3월 말 현재 14%의 지지율로 놀라운 성장을 한 반면에 마린 르 펜은 여전히 15%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멜랑숑의 두번째 목표는 사르코지를 권력에서 추방하는 것이다. 지금껏 반사르코지 열풍에 힘입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당의 올랑드는 무서운 기세로 올라오고 있는 멜랑숑 폭풍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멜랑숑은 초기에 자신의 유권자들에게 결선에서는 올랑드에게 표를 주라고 해왔지만 지금은 투표를 통한 '시민반란'을 일으켜 올랑드를 추월할 3번째 목표를 갖고 있다.

멜랑숑의 부상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가 따로 있다. 사르코지다. 멜랑숑의 급속한 등장으로 사회당 후보의 위치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어 예선에서 자신이 승리할 가능성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멜랑숑은 사회당을 포함한 좌파를 분열시키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동안 우파가 전횡한 프랑스 사회에 새로운 좌파 분위기를 형성할 다크 호스인가. 오는 22일 대선이 밝혀줄 것이다. 멜랑숑은 올랑드가 대선에 당선될 경우에도 그 밑에서 장관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태그:#멜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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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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