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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의 홀. 한복을 입은 북한 여인들이 눈에 띈다.
 공연 시작 전의 홀. 한복을 입은 북한 여인들이 눈에 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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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음악당에서 들리는 북한 사람들의 목소리

14일(프랑스 시간) 오후 8시 30분, 파리 최고 음악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옐 음악당(Salle Pleyel)에서 정명훈 감독의 지휘 하에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북한의 은하수 관현악단의 합동 공연이 열렸다.

일주일 전부터 파리의 라디오 방송에서 공연을 알렸고 공연 이틀 전에는 여러 언론에서 대대적인 선전이 나간 탓인지 기자가 오후 7시 50분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공연장 입구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초대장을 찾으러 줄 선 사람들, 현장에서 막판 표를 사려는 사람들, 표를 손에 들고 공연장에 입장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들 중에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여인들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다가가보니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옆에 서 있었는데 가슴에 작은 원형 배지를 단 것으로 보아 북한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원형 배지에는 김일성 사진이 얼핏 보였다. 여기저기서 하나같이 검은색 정장을 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에는 북한 억양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북 출신의 부모를 둔 기자에게 90이 다 되신 고모가 아직도 갖고 있는 이북 억양을 오리지날로 듣는다는 것은 무척 생소하면서도 뭔가 뭉클한 것이 느껴지게 하였다.

기자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이 열렸을 때 통역으로 자원 봉사를 하면서 처음 북한 사람들을 접해 본 이후로 이번이 두번째다. 그들을 접하는 감동은 여전했다. 20여 년이 지났어도 상황이 변하지 않은 것도 여전했다.

북한의 20대 젊은이들로 구성된 은하수 관현악단이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교향악단과 어울려 멋진 공연을 펼쳤다. 사진은 한복을 차려 입고 나온 가야금과 해금 연주자들이 최종리허설을 하고있는 모습.
 북한의 20대 젊은이들로 구성된 은하수 관현악단이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교향악단과 어울려 멋진 공연을 펼쳤다. 사진은 한복을 차려 입고 나온 가야금과 해금 연주자들이 최종리허설을 하고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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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명의 북한 은하수 관현악단... 평균 나이 20세

공연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공연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은하수 관현악단이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들어섰다. 75명의 음악인으로 구성된 이들의 평균 나이는 20세로 매우 젊은 층에 속했다. 검은색 유니폼을 똑같이 차려 입은 이들이 자리를 잡자 장-뤽 에스 라디오 프랑스 대표와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부 장관의 개회사가 이루어졌다.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북한 오케스트라 합동공연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이 열리고 있었다.

공연의 1막은 은하수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졌는데 우리 전통곡인 <그네 타는 아가씨>와 해금과 가야금을 동반한 산조 음악 등이 연주됐다. 북한 지휘자의 지휘로 우리 민족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친숙한 곡이 공연장 구석구석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음악 속에서 남북이 하나가 됨을 느꼈다.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첫번째 곡이 끝났다.

두번째 산조 곡은 가야금과 해금이 동반됐는데 가야금을 무릎에 올려놓지 않고 의자 위에 세워서 연주했다. 같이 간 친구 말에 의하면 중국식 연주법이라고 한다. 화려한 한복을 입은 아리따운 북한 여인에 의해 연주된 산조 곡에 프랑스인들이 완전히 매료되는 듯 했다.

이어서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씨오조>가 연주되었는데 정명훈씨가 '프랑스 엥테르' 라디오 방송과 한 인터뷰에 의하면, 프랑스 음악가인 생-상의 곡을 연주하게 된 것은 우연으로 북한 관현악 팀이 문경진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를 소개하기 위해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하수 오케스트라와 같이 연습공연을 한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한 연주자는 북한 연주자들이 매우 성능 좋은 악기를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이 프랑스 제품이고 특히 문경진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는 모두가 선망하는 이탈리아 제품 스트라디바리우스 1686년 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하수 관현악단을 소개하는 책자.
 은하수 관현악단을 소개하는 책자.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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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계신 부모님이 가보라고 했다"

막간에 옆에 앉은 젊은 동양인에게 반응을 물었다. 일본어를 하는 걸로 보아 일본 유학생인줄 알았더니 재일교포 2세라고 한다. 39세인 김주리씨는 파리에서 사회과학과 경제학 마스터 2 과정에 있는데 도쿄에 살고 있는 부모가 도쿄에서 연주 소식을 듣고 가보라고 해서 친구와 같이 왔다며 매우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아사히 신문> 등에서 이 공연 소식이 전해졌다고 한다.

1층에 내려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프랑스 여인에게 어떻게 왔냐고 물었더니 친구에게서 초대장을 받아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매우 역동적이고 활기차면서도 동양의 은은한 선율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25분간의 막간 시간이 끝나고 제 2막이 시작되었다. 무대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은하수 오케스트라 인원 140명으로 꽉 찼다.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이 연주됐다. 이 곡은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고 할 정도로 베토벤 교향곡의 연장선에 있는데, '왜 교향곡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 9 교향곡을 선택하지 않고 브람스 곡을 선택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명훈 감독은 "나중에 남북한 합동공연을 위해 베토벤 교향곡을 남겨 두었다"고 밝혔다.

정명훈 감독은 당초 남북 오케스트라의 합동공연을 위해 북측과 접촉해왔으나, 최근 남북관계 등을 들어 북측이 난색을 표하자 일단 프랑스와 북한 오케스트라의 협연에 자신이 지휘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간의 승리로 끝나는 브람스의 제 4악장이 끝나자 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공연장 안을 메웠다. 공연장의 열기가 달궈질 대로 달궈진 상태에서 정명훈이 앙코르 곡으로 선택한 '아리랑'이 공연장 안에 울려 퍼졌다.

모든 한국인이 읊조리는 아리랑이 북한과 프랑스 오케스트라에 공연된다는 사실, 정명훈씨의 말 대로 모두가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거기엔 남북한 사이의 국경도, 프랑스라는 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북한과 프랑스 교향악단의 합동공연에 갈채를 보내는 프랑스 관객들.
 북한과 프랑스 교향악단의 합동공연에 갈채를 보내는 프랑스 관객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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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베토벤 교향곡은 남북 합동공연 때 연주하겠다"

정명훈씨는 연주 전에 이 곡을 작년에 돌아가신 이북 출신의 어머니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하늘 나라에서 이 곡을 들으며 행복해 하실 거라는 말에 기자는 10여 년 전에 끝내 이북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두번째 앙코르 곡으로는 프랑스 관객을 위해 비제의 카르멘 중 토레아도. 곡이 끝나자 다시 공연장이 떠나갈 것 같은 박수소리가 터지고 모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무대에서는 정명훈씨가 북한의 두 지휘자를 얼싸안았고 셋이서 같이 관객의 환호에 답했다. 역사적인 이번 합동 공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공연은 '프랑스 엥테르'와 '프랑스 음악' 두 라디오 방송에서 직접 생중계 했다.

정명훈씨는 공연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한 합작 공연은 오랫동안 가졌던 꿈이었는데 작년 9월에 작끄 랑 전 문화부 장관의 도움으로 북한 방문이 가능했고 이번 북한과 프랑스 합동 공연도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남북 합동 공연이 이루어지기 위한 하나의 중간 단계로 조만간 서울에서건 평양에서건 남북 합동 공연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모두 염원하는 통일, 전쟁 세대가 서서히 사라지는 현 시점에서 더 늦지 않게 가능한 빨리 남북한의 음악인들이 합쳐져 베토벤 9번 교향곡을 같이 연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파리 공연을 위해 지난 11일 베이징을 경유해 파리에 도착한 북한 음악인들은 북한 가이드들의 엄중한 경호 하에 베르사이유, 씨테 드라 뮤직(음악 박물관), 파리 음악원 등을 관람했다. 그리고 12일부터 공연 당일인 14일까지 집중적인 연습을 거친 후 어제 저녁의 훌륭한 공연을 이루어냈다.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관객들.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관객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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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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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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