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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유명한 안과병원 호칠드 파운데이션.
 파리의 유명한 안과병원 호칠드 파운데이션.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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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10년 전 봄 일이다. 단체 관광으로 파리를 구경하던 한국 여대생 하나가 교통사고로 얼굴을 긁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파리 시내 셍 미셀 도로는 버스가 일반 자동차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여학생이 한 쪽 방향만 쳐다보다가 반대 방향에서 거침없이 달려오던 버스에 얼굴을 치인 것이다.

이 여학생을 통역해 줄겸 노트르담 성당 옆에 있는 오텔 디외 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다행히 상처가 큰게 아니어서 응급치료를 하고는 바로 나올 수 있었는데 병원비를 내려고 하는 여학생에게 병원 측에서는 주소만 적어놓고 가라며 나중에 집으로 청구서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얼굴이 된 여학생 결국 돈 한 푼 안내고 치료를 받았는데 나중에 청구서를 한국에서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사례 2] 기자가 2년 전 겨울 스키장에서 넘어져 인대를 다쳤을 때 여러 의료 혜택을 받았다. 들것에 실려 스키를 탄 응급 구조원에 의해 스키장 마을까지 실려가기, 응급 치료원이 달려들어 혈압을 잰 후 마을 병원으로 이송하기, 병원 의사에 의해 응급 처리하기... 나중에 파리에 돌아와서 MRI 촬영, 인대가 늘어졌다는 사실 확인 후 8개월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의 재교육 등 의 의료혜택을 거의 무료로 받았다. 경황이 없던 상황에서 스키 마을 병원에 놓고 온 돋수 있는 선글라스까지 무료로 새로 해주겠다고 했으나 귀찮아서 그냥 이전의 선글라스를 찾아 쓰고 있다.

[상상] 돈 한 푼 없는 노인이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철철 흘리며 대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병원 측에서는 환자의 상태보다 환자가 막대한 수술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고 이 노인처럼 돈 한 푼 없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되돌려 보낸다.

한국인의 반응 : 담담하다. 아무 반응이 없다. 돈이 없으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대다수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 수도 없이 일어나서 담담한 건지, 이들의 반응이 담담해서 이런 상황이 수시로 일어나는지는 마치 알과 닭 중 어느게 먼저인지 묻는 것과 같다.

프랑스인의 반응 : 흥분한다. 화를 낸다. 인간의 생명이 더 급한 상황에서 돈부터 생각하는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냐며 언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한 생명을 구하지 않은 것은 살인자와 마찬가지라고 흥분할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런 상황이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지는 않다. 이들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에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프랑스의 공무원 뮈티엘 MGEN 사무실 입구.
 프랑스의 공무원 뮈티엘 MGEN 사무실 입구.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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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열악해지는 프랑스 의료환경

프랑스는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의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나라다. 2차 대전 이후에 설립된 사회보장 제도 덕으로 모든 국민이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선진국이 되었는데 이 무료 혜택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에게까지도 돌아간다. 20여 년 전, 프랑스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무료 의료혜택을 받았을 때 꿈을 꾸는게 아닌가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수십 년째 지속되는 사회보장제도의 적자로 프랑스 정부가 사회보장 긴축 정책을 쓰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까지 겹쳐 무료의료 혜택은 점점 먼 옛날의 얘기가 되고 있다.

프랑스의 의료보험은 국가와 기업주가 부담하는 의료보험과 개인이 부담하는 뮈티엘(Mutuelle) 등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의무적으로 들게 되어있는 의료보험은 사회보장제도 협약에 정해진 규정대로 환불을 해준다.

예를 들어 일반의 진료비가 23유로인데, 의료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은 70%로 16.1유로만 환불이 된다. 나머지 30%에 해당하는 6.9유로는 뮈티엘이 부담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뮈티엘은 의무 사항이 아니어서 뮈티엘이 없는 사람은 30%에 해당하는 환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진료비는 의사 마음대로 인상할 수가 있어서 파리 등 대도시의 경우 시내에 위치한 일반의 진료비가 100유로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도 의료보험이 부담하는 비용은 23유로여서 나머지 차액은 뮈티엘의 부담이 되는데 좋은 뮈티엘일수록 환불률이 좋다.

안과나 치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전문의 진찰비는 평균 70-80유로이고 의료보험이 부담하는 부분은 일반의 진찰비 23유로의 30%인 6.9유로로 환불률이 턱없이 낮다. 기자처럼 공무원 뮈티엘(남편이 공무원인 관계로)을 갖고 있는 경우 뮈티엘이 같은 금액인 6.9유로를 부담한다.

결과적으로 70유로에 대한 전문의 진찰비에서 환불되는 금액은 13.8유로인데 여기에서 다시 1유로를 제외한 (몇 년 전부터 각 진찰 건마다 정부가 1유로를 회수하고 있다) 12.8유로가 실제 환불금으로 굉장히 미미한 수치다. 참고로 공무원 미튀엘인 MGEN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뮈티엘로 현재 3백만 명 이상의 프랑스인들이 가입되어 있다.

프랑스 정부는 사회보장기금의 적자를 덜기위해 몇 년 전부터 노력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부담이 점점 개인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르몽드>의 작년 10월 15일 '뮈티엘을 포기하는 프랑스인'이란 기사에 의하면, 2005년과 2011년 사이에 정부는 개인 부담 뮈티엘을 5배 이상 인상하였는데 이것은 사실상 740%의 인상을 의미하며 개인당 1년에 평균 75유로가 인상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뮈티엘을 포기하는 프랑스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6%의 프랑스인에 해당하는 400만 명이 뮈티엘을 갖고 있지 않다. 당연히 이들의 병원 출입은 드물어지고 초기에 고칠 수 있는 병도 늦게서야 발견되어 프랑스의 공공건강이 위협받는 상태에까지 이르고 있다. 결핵이나 옴 등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주 발생하는 병이 최근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이다.

파리의 한 소아과병원 접수대.
 파리의 한 소아과병원 접수대.
ⓒ 네커병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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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5명 중 1명이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

가난한 대학생들에게도 병원에 간다는 것은 이제 하나의 사치가 되었다. 학생 뮈티엘 LMDE가 작년 5월에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작년에 20%에 해당하는 대학생들이 경제적 이유로 필요한 약이나 치료를 포기했고 34%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의사 진찰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2005년의 24%에 비해 10% 오른 수치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질문에 응한 학생의 반이 한 달에 400유로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의 19%가 뮈티엘이 없어서 50% 미만의 환불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이 혼자 사는 학생보다 의료 혜택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들의 10%가 치료 받아야 할 사항에도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의 경우는 이 수치가 19%로 올라간다고 이 조사는 밝히고 있다.

노인들의 경우도 피해 심각

노인들의 경우에도 상황은 심각하다. 나이가 많을수록 본인이 부담해야 할 뮈티엘 금액이 늘어나는데 특히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사항이 많은 노인들에게 의료비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위의 <르몽드> 기사에 의하면 노인들이 의료비로 지출해야 할 비용이 일반인보다 2.5배라고 밝혔다.

2011년 8월에 INSEE(경제 통계 조사기관) 조사 결과에 의하면 프랑스인들의 13,5%에 해당하는 780만 명이 빈곤자에 속하는데 여기서 빈곤자라 함은 월 소득이 954유로(대략 152만6000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들 중의 반 정도가 뮈티엘이 없어서 이들은 의료혜택을 가장 적게 받는 층에 속한다.

1인당 월 소득이 648유로(103만6000원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극빈자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CMU (보편의료보상) 혜택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 외에 공식 체류서류가 없는 외국 이민 극빈자에게는 국가가 부담하는 특별 의료보험인 AME(국가의료보조)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작년 3월부터는 30유로의 가입비를 내도록 되어 있어 이들의 이용에 제한을 가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모든게 뒤로 후퇴하는 프랑스 사회에서 올 4월에 이루어질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자들이 어떤 정책을 들고 나올지에 모든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태그:#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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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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