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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사추이 아침 풍경.
 침사추이 아침 풍경.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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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침사추이에서 아침을 맞았다. 몸과 마음은 이미 여행자 모드.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어젯밤 늦게까지 괴롭혔던 다리 통증이 사라진 것만 같다. 평소 같으면 벌써 앓아누웠을 텐데…. 멀쩡하다. 놀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하루 만에 달라졌다. 우선 대화가 달라졌다. 서로에게 '잘 잤느냐, 괜찮으냐'는 안부를 묻고, 아침으로 '뭐 먹을지' 의견을 묻고…. 서로를 살폈다. 결혼 9년 차, 부부면 좀 이해할 것이다. 남녀 간의 애틋한 마음, 연애감정을 기대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그냥 가족인 거다. 하지만 신기하게 하루 만에 연인 사이가 됐다.

"술 적게 마셔라", "너나 잘해라", "내가 아이들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너만 힘드냐" 등 폭탄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으로 몰고 가던 말들이 나올 법한 상황이 몇 번 있었지만 아직까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말을 안 하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안도와 위안을 주다니…. 그동안 너무 막말한 것 같아 살짝 미안해지기도 했다(이건 여행 때까지 만의 마음가짐). 하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여전하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메신저로 '술 먹고 늦게 들어온 어제 상황'을 두고, 한바탕 한 상태.

서론이 너무 길었다. 결혼 9년 차다 보니, 이런 관계가 어색하여 자꾸 서술을 붙이게 되는가 보다. 그건 그렇고, 우리에겐 숙제가 있었다. 바로, 숙소 문제. 어제 무작정 놀다가 부랴부랴 숙소를 구하니, 돈 가치도 안 되는 곳을 비싸게 주고 잔 것 같아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했다.

홍콩 지하철.
 홍콩 지하철.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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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에드머럴티역으로 향했다. 그곳에 호텔이 많을 것 같았다. 순전히 '감'이다. 하지만 우리의 '감'은 묵은 것. 가이드는 3년 전에 발간했던 이 책 한 권뿐이었다. 어쩌겠는가. 아무 준비 없이 왔으니….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고.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고.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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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딜 가나 보이는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숙소를 찾아다녔다. 어젯밤, 우리 눈에 유일하게 보였던 단 하나의 게스트하우스, 생존처럼 매달렸던 게스트하우스는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에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수는 없었다. 좀 씻고 싶었고, 밤에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었다. 아침부터 호텔을 다녀봤지만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호텔비도 우리가 전날 묵은 게스트하우스에 2~3배 값이었다. 그 와중에도 고르고 있다니…. 아직 정신을 덜 차렸다.

버스 타고 오션파크로 GOGO~
 버스 타고 오션파크로 GOGO~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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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까지 와서 숙소 때문에 아침 시간을 날렸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전화로 구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 한마디가 잡고 있던 정신 줄을 놓게 만들었다. 놀고 싶은 마음이 앞서려던 찰라, 우리는 오션파크로 가는 버스 629번을 타고 있다.

홍콩 여행 중 나에게만 생긴 일~

오션파크.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덕분에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오션파크.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덕분에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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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날씨는 초가을이 막 시작된 것처럼 따뜻하면서도 시원했다. 서울은 춥다던데…. 아이들은 학교에 잘 갔을까. 이곳은 반발 티셔츠만 입고 돌아다녀도 시원한 느낌인데, 아이들은 내복을 챙겨 입고 나갔을까. 놀러 와서는 집안 걱정 안 하는 쿨한 아줌마가 이상하게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오션파크가 놀이동산 같은 곳이라서 더욱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나나 보다.

이곳 오션파크는 대형수족관과 유원지, 놀이동산을 짬뽕해 놓은 듯했다. '우리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겠는데…'라는 생각으로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나만 그런가. 두고 온 아이들만 생각나서 다른 아이들 표정만 보게 된다. 남편은 옆에서 미처 구하지 못한 숙소 때문에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찰리브라운 케이크.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왈칵~
 찰리브라운 케이크.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왈칵~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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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올라가니 여러 가지 인형을 따는 게임들이 가득하다. 낚시게임, 탁구공 던져서 구멍에 맞춰 넣기, 축구 골대에 공 넣기 등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인형을 준다는 거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축구 골대에 공 넣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성현이가 있었으면 꼭 했을 텐데…. 아이들이 자꾸 생각나, 남편 몰래 눈물을 살짝 훔쳐냈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할 때도 있었는데, 돌아가면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감사했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많다. 오랫동안 줄을 서서 청룡열차 한 번, 배 한 번 탔다. 다리가 묵지근해 온다. 그래도 돌고래 쇼를 보고 가야 한다며 돌고래 쇼장으로 향했다.

돌고래 쇼.
 돌고래 쇼.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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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몰려가는 곳, 그곳에 돌고래 쇼장이 있었다. 오픈형 돌고래 쇼장, 돌고래가 물고기 만하게 보이는 장소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중국 할머니들 사이에 껴서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벌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센트럴역으로 향했다.

무계획, '무데뽀', 무식으로 안 통하면 돈으로 해결해라

크리스마스 분위기 오션파크. 숙소는 못 구했어도, 우리는 즐거워요.
 크리스마스 분위기 오션파크. 숙소는 못 구했어도, 우리는 즐거워요.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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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결국 한국 여행사에 전화했다. '호텔 예약 좀 잡아달라고….' 하지만 당일 예약은 어렵다며 나머지 이틀만 예약했다. 결론은 오늘 밤, 숙소는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 불길 해, 이제 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다.

급하게 잡은 호텔 비용은 이틀에 50만 원이 넘는단다. 돈 아껴 보려고 '아줌마 잔머리' 굴리다가 당했다. 한국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잡았으니 그 비용에, 한국으로 전화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일 처리한 남편을 구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우선 날 탓했고, 남편도 자신을 탓했다.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무계획, '무데뽀'였으니 이 무식을 어찌 당할 수 있나, 그냥 돈으로 해결할 수밖에…'라며 웃어버렸다.

홍콩 지하철에서 발견한 PC. 반갑다, 네이버~
 홍콩 지하철에서 발견한 PC. 반갑다,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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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홍콩 지하철에 감탄했다. 홍콩 지하철은 지하철 구분이 잘 되어 있어 색깔만 구분한다면 찾기가 쉽고, 환승도 눈에 보이는 곳에서 바로 탈 수 있다. 또 지하철 내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밤 호텔을 구하는 것은 포기다. 다만 게스트하우스 중 좀 더 저렴하고 깨끗한 곳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 하지만 무슨 수로 게스트하우스를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인터넷만 할 수 있다면….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PC방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지하철 내에서 인터넷 PC를 사용하는 홍콩 시민을 봤다. 이건 정말 우연, 한국에서도 지하철에서 인터넷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이곳에도 있다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PC 앞에 서서 '네이버'를 검색했다. 기적, 한국말이다. 반갑기 그지없었다. 홍콩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찾았다. 전화해 보니, 방이 있단다. 어제 묵은 방보다 가격은 절반이나 싸다.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센트럴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침사추이로 다시 갔다. 그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민박집을 찾아가는 길에 코리아타운을 발견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분식집, 청계천 한식집 등 모두 한국말로 쓰여 있었다. 그간 영어 간판만 봐와서 답답했는데, 뻥 뚫리는 느낌이다. 한국말 간판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다니…. 홍콩 중심가에 '청계천'이라고 쓰인 우리말을 보고 한없이 웃었다. '청계천', 웃긴 말도 아닌데, 소리 내어 웃으니 남편도 따라 웃었다. 이건 뭔가?

홍콩 YMCA 호텔 로비.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홍콩 YMCA 호텔 로비.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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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좀 작고, 뚱뚱한 한국인 아저씨가 길을 안내했다. 그를 따라 들어간 방은 어제보다 더 심각하게 우울했다. 이곳은 홍콩 서민들이 사는 집인가. 관리도 전혀 안 하는 듯해 보인다. 침대보는 언제 간 것일까, 퀴퀴하고 찜찜했다. 오늘은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어쨌든 내일은 호텔에서 지낼 수 있으니, 편안하겠지…. 하루만 버티자.

남편은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의 사과, 어젠 익숙하지 않아 대답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것은 안 미안해" 하라며 웃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미안해", "괜찮아?" "재밌어", "이거 하자" 등 일상에서 잘 쓰지 않은 말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우리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평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재미가 떨어졌나요? 다음 편은 더 재미나길~)

덧붙이는 글 | 홍콩은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홍콩, #침사추이, #오션파크,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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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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