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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도착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비교적 쉽게 적응해 갔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호주에서 처음으로 구한 내 집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웨스트엔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휴일의 아침. 웨스트엔드에서.
 휴일의 아침. 웨스트엔드에서.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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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westend

웨스트엔드는 내가 처음 집을 구했을 때부터 와가마마에 취직해 3존 첨사이드로 이사하기까지 쭉 5개월 정도를 살았던 동네다. 처음 은경이와 함께 집을 보기 위해 걸어가면서 도로 옆으로 죽 펼쳐진 빵집과 카페, 개성 넘치는 펍 들을 보며, '이런 동네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게다가 1존에 위치해 시티도 걸어서 20분이면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도 좋았고, 브리즈번 강 옆 사우스 뱅크에 있는 학교와도 가까운 거리였기에 나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가까운 거리로만 이사를 하면서 이 동네에 눌러 살았다.

웨스트엔드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웨스트엔드 마켓이었다. 집을 구하면서 친해진 은경이가 지나가는 말로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은 집 근처의 주말 마켓에서 장을 보면 된다고 얘기하기에, 시장을 좋아하는 나는 눈을 번뜩이면서 그곳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었다.

웨스트엔드의 예쁜 중고책 서점.
 웨스트엔드의 예쁜 중고책 서점.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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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 아침, 나는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일단 은경이가 알려준 대로 집 앞 길을 따라 걸어가보긴 했는데 도무지 마켓이라고 할 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뺑뺑 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덕분에 작은 도서관, 꼭 가보고 싶은 중고 책 서점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한 차례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마침 은경이가 집에 놀러 와 있었다.

"아니 도대체 웨스트엔드 마켓은 어디 있는 거야?"
"뭐? 못 찾았어? 집에서 아래 쪽으로 내려 가면 바로 나오는데?"

푸념 섞인 내 얘기를 들은 은경이는 못 찾은 게 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랑 같이 가보자. 근데 이제 곧 폐장 시간이라 빨리 가야 돼."

이렇게 해서 나는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웨스트엔드 마켓에 가게 되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웨스트엔드의 빈티지 옷가게.
 아기자기하게 꾸민 웨스트엔드의 빈티지 옷가게.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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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있는 커다란 공터가 바로 마켓이 열리는 장소였다. 이 근방에서는 큰 시장이라는 말을 뒷받침 할 만큼, 간편한 복장을 한 호주 사람들이 커다란 장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둘러보니 트럭에서 얇은 피자를 직접 구워 파는 아저씨들도 보이고, 각종 화분이며 손수 만든 수공예품,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문고본 책까지 안 파는 물건이 없다. 꿈에 그리던 외국의 시장다운 시장을 보며 고개가 아프도록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은경이가 장 좀 봐야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좀 더 안쪽에는 양상추, 가지, 아보카도, 사과, 당근 등등 각종 채소와 과일들을 쌓아 놓고 파는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가격도 콜스나 울월스 같은 체인 할인점보다도 훨씬 싼 것이 아닌가! 게다가 대부분 직접 가꾸거나 산지에서 배송해 온 지역 농산물이라 싱싱하기까지 하다. 신이 난 나는 커다란 바나나 한 송이며 사과, 토마토에 싱싱한 버섯까지, 가져 간 장바구니가 가득 찰 때까지 장을 보았다. 그런데도 워낙 저렴해서 얇은 내 지갑에도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레모네이드를 파는 아저씨. 직접 만든 케이크나 빵,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도 있으므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다.
 레모네이드를 파는 아저씨. 직접 만든 케이크나 빵,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도 있으므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다.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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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의 웨스트엔드 마켓은 꽤 유명한 편이라 유학생들이나 외국인들도 많이 찾곤 하는데, 현지 사람들의 특산물과 공예품,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저렴한 값에 농산물들을 구매할 수 있으니 여기서 일주일치 장을 보고 다음 주말까지 기다리는 편이 경제적이다. 웨스트엔드 마켓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오후 두시 이전에 폐장하므로 휴일이라도 일찌감치 일어나 집을 나서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느 시장이나 그렇듯이, 마감 시간에는 과일이나 채소류를 더 할인 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사실!

마켓 한쪽에서 작은 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마켓 한쪽에서 작은 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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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럽게 꾸며진 간이 미용실. 마켓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고풍스럽게 꾸며진 간이 미용실. 마켓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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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에서 9개월을 보내고 시드니로 떠나기 전 마지막 주말, 느지막이 잠에서 깬 나는 카메라 하나를 어깨에 맨 채 집을 나섰다. 바로 웨스트엔드 마켓에 가기 위해서. 이미 정오를 훌쩍 넘겨버린 마켓은 폐장 분위기가 만연했지만, 나는 천천히 사람들과 가게가 세워진 거리 사이를 걸어 다니며 그 모든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화려하게 세워진 임시 미용실, 주섬주섬 남은 채소와 과일들을 정리하는 사람들, 꼭 한 번 사 먹어보고 싶었으나 자금의 압박으로 외면했던, 직접 따온 벌꿀을 파는 아저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타클로스를 닮은 할아버지 가게에서 얇게 밀어 편 밀가루 반죽을 튀겨 만든 랑고스 한 접시를 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 본 랑고스는 생각보다 꽤 느끼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직접 먹어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니까. 이 웨스트엔드 마켓에 와 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훗날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되는지조차도 몰랐을 테니까. 그저 오늘이 지나면 이 거리와 이 사람들과 이 모든 것을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무언가가 목구멍에 얹어진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바닥에 앉아 연주를 하던 소년
 바닥에 앉아 연주를 하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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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Francesca

브리즈번 웨스트엔드의 모습.
 브리즈번 웨스트엔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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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했던 거리를 걸어
스테이트 라이브러리로 향하던 길목에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여가수를 만났다.
라바짜 커피 회사 로고의 무대에서 키보드를 치며
자신의 노래를 부르던 그녀.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이런 게 노래고, 가수라고 생각한다.
아이돌에 빠져 보낸 학창시절도 있었지만,
그래서 그런 음악도 물론 여전히 좋아하지만.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자신의 손과 마음으로 만들어 낸 노래.

길지 않은 그녀의 공연이 끝나고
EP를 판다는 말에
지갑 속 쌈짓돈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10불을 내밀고
서먹하게 인사를 하며 싸인을 청했다.

왜냐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 짓은 그냥 일찌감치 저질러 버리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느지막이 돌아와
그녀의 음악을 다시 듣는 지금,
내가 옳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Dear, Francesca.

효율적으로 장보는 방법

낯선 땅에서 잘 먹고 사는 방법.
 낯선 땅에서 잘 먹고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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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데에는 의식주가 필요하다. 정말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낯선 나라에 도착하면 머릿속부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뭘 먹어야 하지?' 물론 여행을 온 것이라면 그 지역의 특산물만 먹고 가기에도 시간이 빠듯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1년 이라는 시간을 약속하고 온 나는, 당장 무엇을 먹어야 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일단은 마트에 가자. 호주의 대표적인 마트로는 콜스와 울월스(나중에 '세이프티 웨이'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형 할인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도시의 어느 곳에 가나 이 할인점들이 한 두 개씩은 꼭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파는 물품들도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할인하는 상품의 가격이 모두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번 주는 콜스가 바나나가 더 싸고, 다음 주는 울월스의 쇠고기가 훨씬 싸더라는 식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소비를 하고자 한다면 집으로 날아오는 전단지를 비교해 보거나 매장을 둘러보고 각각 싸게 파는 물건들을 고르면 된다.

또 호주는 각 브랜드마다 일반 대기업들의 물건보다 약간 싸게 파는 자체 상품들이 있다. 그 규모가 화장지부터 케첩, 참치캔 등의 식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물건에 해당 될 만큼 다양하다. 가격은 일반 기업의 제품보다 저렴하지만 질은 떨어지지 않으므로, 알뜰한 소비를 하고 싶다면 이 상품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호주에 도착한 첫날 밤, 콜스에 갔다. 당연히 온통 영어가 적혀 있었고, 뭐 하나를 사려고 해도 자꾸 망설여졌다. 그래서 만만한 요거트와 빵, 오늘과 내일 먹을 과일 약간을 사서 백팩커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렇게 먹은 지 만 하루가 지났을까. 아침에 방을 나와 브리즈번 다리를 건너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거다. 잠깐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너무 힘이 들어 급히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앓다가 나왔다. 원래 빈혈이 있기는 했지만 그 때 비로소 정말 먹는 것만큼은 잘 먹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는 날마다 계란이며 고기 등 단백질은 빼놓지 않고 채소와 야채도 최소한의 양은 꼭꼭 먹을 만큼 잘 챙겨 먹었다. 혼자 살 때의 식사란, 정말 중요한 거였다.

간단히 먹은 저녁. 탄수화물과 단백질, 과일과 야채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간단히 먹은 저녁. 탄수화물과 단백질, 과일과 야채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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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농산물은 위에서 얘기했듯, 웨스트엔드 마켓처럼 자신이 머무르는 각 지역의 마켓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호주는 땅이 넓고 자연도 쾌적하므로 농산물의 질도 좋고 없는 과일과 채소가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나는 호주에 있을 때 아보카도를 즐겨 먹었는데, 한국에서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낼 그 아보카도를 단 돈 몇 불에 마음껏 사 먹을 수가 있었다. 또 한국에서는 늘 병조림 된 새빨간 체리만 보다가 체리가 많이 나는 계절에 한바구니 사가지고 와서 입에 물이 들도록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어느 날 불현듯 한국음식이 그리워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다. 나의 경우는 엄마가 해 주시는 겉절이 김치가 그랬다. 평소 날김치를 가장 좋아해서,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그 옆에 지키고 앉아 있다가 아- 하고 입을 벌려 받아먹는 그 맛이 그리워 한국에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시내에 있는 한국 마트나 한국 음식점에 간다.

외국인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호주의 음식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외국인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호주의 음식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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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것 이외에는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도 크지 않았고,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한국 음식점에 즐겨 가지는 않았다. 그 나라의 방식대로 식생활을 즐기는 것도 또 다른 문화 체험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외국 친구들과 함께라면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도 보여줄 수 있고 서로 음식으로 인한 끈끈한 정이 생기기 때문에 다 같이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한국음식을 예상보다 너무 좋아해서, 헤어지기 전까지 몇 번을 더 방문했던 기억도 있다.

아무래도 호주의 한국 음식 가격은 국내에 비해서 조금 비싼 편이다. 그래도 김, 라면, 조미료 등등 어지간한 한국 식품들은 한국 마트에서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살 수 있고, 배추나 무 같은 채소들은 호주 현지의 마켓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므로 간단한 음식들은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내 친구 한명은 어머니께 배워 직접 김치도 만들어 먹을 정도였다. 나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오이를 이용해 오이 무침을 몇 번 해보고 자신이 생겨 엄마가 호주 가면 꼭 해먹으라며 당부 하시던 '양배추 김치'에 도전해 봤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김치를 담그지 않았다. 

호주의 전통 디저트 '래밍턴'을 비롯한 다양한 디저트들.
 호주의 전통 디저트 '래밍턴'을 비롯한 다양한 디저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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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호주엔 스테이크와 피시 앤 칩스를 빼고는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모르시는 말씀. 호주는 음식 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편이고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만큼 어디서나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스시와 베트남의 쌀국수, 태국요리 등은 이미 대중화가 되어 있어 쉽게 접할 수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 친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우리나라 음식이 현지인들에게는 생소하다는 점이 무척 서운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역적으로 행사를 개최해 음식 문화를 알리거나,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어 한국 음식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직접 체험하게 하는 등의 단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듯 싶다.

이름모를 펍(Pub)에서 먹었던 스테이크.
 이름모를 펍(Pub)에서 먹었던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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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카지노란?

호주 브리즈번 시티에 있는 카지노
 호주 브리즈번 시티에 있는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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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 시티에 나가보면, 궁전처럼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뿐인가, 어쩐 일인지 그 앞에는 덩치 좋은 가드들이 어깨를 펴고 지키고 서 있다.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은 브리즈번의 명소, 카지노다. 도박의 개념이 짙은 우리나라의 강원랜드 같은 카지노가, 이 곳 호주에서는 대로변에 떡하니 펼쳐져 있다. 이렇듯 호주의 카지노는 브리즈번, 시드니, 멜번 등 대도시에는 모두 하나씩 있을 정도이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한번쯤 거쳐 가는 명소가 될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과 가까이 닿아있다. 처음 어학원에 갔을 때 같은 반 친구들이 나에게 '오늘 끝나고 카지노 갈래?'라고 물어보기에 깜짝 놀랐었지만 곧 이어진, 호주에서의 카지노는 일종의 오락에 가깝다는 설명에 함께 가기로 했다.

카지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가드에게 여권, 국제 운전 면허증 등의 공인된 신분증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배낭과 샌들처럼 가벼운 캐주얼 차림은 입장이 금지된다. 가드 아저씨에게 어색하게 인사하며 여권을 보여주자, 내 얼굴을 흘낏 보며 여권 사진과 대조해 보더니 들어가라며 허락해준다. 드디어 처음으로 이 안을 볼 수 있다는 들뜬 마음을 애써 감추고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고 안쪽의 홀로 들어가자 오색찬란한 기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줄줄이 늘어서 있고, 한 가운데의 홀에는 이름도 모르는 각종 오락들과 딜러, 그리고 배팅하는 사람들이 어지럽게 모여 있었다.

호주에서의 카지노는 도박이 아니라 일종의 여가를 즐기기 위한 취미 생활에 가깝다. 홀을 걸어 다니다 보면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달칵달칵 소리를 내며 베팅을 하고 계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시간이 날 때 찾아와 즐길 수 있는 만큼만 게임을 하는 모습은, 나에게 카지노가 '가볍게 즐기는 어른들만의 오락'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사실 나와 내 친구들이 카지노에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프리 커피'.  카지노 곳곳에는 게임을 하다가 지치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무료 음료 자판기가 마련되어 있다(카운터에서 카드를 만들면 하루 2잔까지는 무료다). 그 중에는 간단한 탄산음료를 비롯한 카푸치노, 모카 등의 커피들도 마련되어 있는데, 가난한 학생인 우리들은 이 혜택을 이용해 카지노를 우리들의 사랑방으로 만들곤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카지노에 들러서 음료를 한 잔씩 마시며 휴게실의 탁자에 둘러 앉아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다 할 수 없었던 얘기들을 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서로에게 있는 고민들을 이 자리에서 나누곤 했다.

카지노 지하 스낵바의 맛있는 프렌치프라이
 카지노 지하 스낵바의 맛있는 프렌치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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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지하에는 뷔페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스낵바도 있어서 가끔 가곤 했는데, 가격이 저렴한 편이어서 학교가 끝나고 출출할 때 도움이 됐다. 특히 스낵바의 두툼한 프렌치프라이와 6불에 불과한 레스토랑의 피시 앤 칩스는 정말 최고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카지노가 주는 건강한 매력에 관한 것이고, 좋지 않은 점 또한 많이 있다.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주변의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카지노에 빠져 큰 돈을 잃은 사람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와 그동안 자신을 통제해 주었던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주위에 없는 상태에서 카지노에 재미로 한 번 손을 대고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더 많은 돈이 굴러 들어올 것 같아서, 또는 잃은 돈을 따고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가 망가진 사람들의 얘기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자기 스스로가 어느 정도 절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마다 호주라는 나라에 온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저 반짝거리는 불빛과 시끄러운 함성소리에 빠져 이 머나먼 나라에서 돈과 자신의 목표도 잃고, 새로운 것을 찾으러 온 나라에서 '좌절'만을 가져가는 것은 정말, 어느 것보다도 더 비극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007년에서 2008년까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했던 내용입니다. 이 '나의 호주'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 됩니다. 사진이나 이외의 글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http://blog.naver.com/hyukibyul로 오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태그:#나의 호주, #호주 워킹홀리데이, #영어공부, #웨스트엔드 마켓, #먹고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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