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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서귀포 시장 내 놀이터에서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11월 6일, 서귀포 시장 내 놀이터에서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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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 1991년, 대선을 1년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노태우 정권은 토지 강제수용 등의 내용이 담긴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국회 의석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던 집권 민자당은 도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해 12월 18일 심야를 기해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한편, 이에 앞선 1991년 11월 7일에는 제주도개발특별법에 반대하는 여론에 불을 끼얹은 사건이 제주 서귀포에서 일어났다.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 회원이었던 양용찬(당시 25세) 열사가 청년회 사무실 건물 3층에서 '제주개발특별법 반대,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여 산화해간 것. 민주화운동의 불모지였던 서귀포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양 열사에 관한 소식은 전국으로 강한 충격파를 전했고, 야당, 종교계, 제주도향우회 등을 중심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을 저지하기 위한 운동의 열기가 타올랐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이 의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집권세력의 탐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제주의 가을 들녘을 가득 채운 억새다. 고정국 시인은 1991년 11월의 상황에 대해 억새의 고백을 빌어 '하나 같이 무지몽매한 피고인'이라고 표현했다.
 제주의 가을 들녘을 가득 채운 억새다. 고정국 시인은 1991년 11월의 상황에 대해 억새의 고백을 빌어 '하나 같이 무지몽매한 피고인'이라고 표현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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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사랑하는 '슬픈 반역의 시인' 고정국은 비에 젖은 억새꽃의 고백을 통해 당시의 비통한 심정을 시로 적었다.

저는 피고인입니다.
오랜 침묵시위 행렬이 여기에 와 맺고
머리카락마다 비릿한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몇 달 전부터 마을을 내려다보던 산들이
시름 속에 얼굴을 묻으며
가느다란 새 울음소리
빗줄기 사이로 흘려보냅니다.


어디 하나 고갤 드는 이 없고

1991년 늦가을에 하나 같이
무지몽매한 피고인의 모습입니다,
한사코 묻는 말에조차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 고정국 시, <비오는 날의 억새밭>


그런데 억새꽃이 상징하는 민초들의 눈물은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었다. 당시 도내 3개 의석을 모두 차지하던 민자당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음은 물론이고, 노태우도 퇴임 후에 재벌기업으로부터 받았던 수천억대의 비자금이 드러나서 재산을 몰수당했다.

권력 집단의 말년이 보여준 '사필귀정'의 역사에서 위로를 받을 만도 하지만, 그러기엔 역사의 궤도를 바로잡기 위해 산화해간 청춘들의 목숨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답다.

양용찬 열사의 분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이 특별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야만의 역사가 휩쓸고 간 지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양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활동이 그의 고향마을과 지역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20주기을 맞는 금년 11월 6일에는 그가 산화해간 건물 옆에 자리 잡은 놀이터에서 그를 기억하는 동료들, 이웃들, 강정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추모했다. 제주도 공동체가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할 만큼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 다채로운 방식으로 그의 정신을 기렸다.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 다채로운 방식으로 그의 정신을 기렸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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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야만의 역사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개발'이라는 망령된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비극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09년 서울 용산에서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망루에서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이 경찰 특공대에 의해 진압을 당하는 과정에서 불에 타 숨지는 야만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최근 명동 재개발 지구에서는 철거로 인해 살길이 막막해진 상가 세입자들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다가 용역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백주대낮에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말이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주민들 압도적 다수가 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있음에도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해군지지를 건설하고 있다. 주민들은 4년 넘게 생업을 뒤로하고 공권력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당국은 구속영장과 벌금고지서를 남발하고 있다.

고정국 시인이 일찍이 "1991년 늦가을에 하나 같이/ 무지몽매한 피고인의 모습"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20년이 지난 2011년 대한민국은 사회적 약자들 앞에 너무도 "무지몽매한 피고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 열사가 산화한 지 20년이 지난 오늘이 너무나 허무한 이유다.


태그:#양용찬, #제주도개발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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