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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올해도 변함없이 수능이 다가왔다. 떨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험생들은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대학입시를 바라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아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도, 실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자신의 적성을 의심하게 되거나,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여기, 5수라는 긴 입시생활 끝에 자신에게 딱 맞는 진로를 정한 학생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5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경악하겠지만 그녀는 지난 5년 동안 지옥 같은 수험생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진로도 바꾸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에 진학을 앞두고 있는 윤해인(23, 여)씨다.

윤씨는 수험생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께 너무 많은 폐를 끼쳤다며 요즘 한창 알바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수험생 시절에는 2, 3월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나머지 시간들은 부모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윤씨는 지난 2008년 2월에 서울예고를 졸업했다. 당시 고3이었던 윤씨는 서울대와 한예종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수능성적이나 실기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입시 때문에 무기력증에 우울증까지... '내 삶을 갉아먹는구나'

해인씨(사진 가운데)가 작업 도움 친구들과 의논하고 있다.
 해인씨(사진 가운데)가 작업 도움 친구들과 의논하고 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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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1년 길게는 몇 년 동안 입시만 바라보고 준비하는데 그 짧은 입시 기간 동안에 내 모든 노력이 평가되는 거잖아요. 정말 열심히 했지만 저는 실전에 가서 항상 떠는 스타일이었고, 항상 운이 없게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죠."

윤씨는 재수, 3수를 할 때까지 조소를 전공했다. 그러다가 4수를 하면서 진로를 바꾸게 됐다.

"고3때는 나는 뭐라도 될 거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있었는데 재수할 때는 그게 좀 줄었고 삼수할 때는 내가 뭐가 되겠냐는 이런 마음이 돼 버렸어요. 막 스스로 주눅들고, '입시가 내 삶을 갉아먹는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지요. 4수 할 때가 되니까, 무기력증에 빠지고 우울증까지 왔었거든요.

미술 좋아서 부모님 괴롭혀 가면서 여기까지 온 건데 나중에는 내가 미술을 왜 해야 되나, 난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걸 내 의지대로 할 수 없고 스트레스를 받았죠. 당연히 의욕도 생기지 않았고요. 재수, 3수처럼은 하기 싫었어요.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죠."

그래서 평소에 좋아하던 것을 간간이 하려고 마음먹은 윤씨는 재즈댄스 공연을 찾았다. 그것은 그녀가 진로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기력증에 빠진 자신에게 동기 부여 할 것을 찾던 차에, 삶의 여유를 갖고 한숨 돌리기 위해 찾은 재즈댄스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다.

"재즈 공연을 처음 갔는데, 자기들끼리 눈짓하면서 웃으면서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거 자체가 정말 순간순간 만들어지는 음악이잖아요. 그게 너무 생생했어요. 그 공연을 보는데 심장이 콩콩콩콩 뛰었어요. 평소에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그렇게까지 심장이 뛰고 하니까 아! 나도 살아 있구나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저는 원래 저의 이야기를 시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순수미술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재즈 공연의 무대 에너지에 압도당한 경험 이후, 내 얘기만 하는 작가로 살기보다 실질적으로 내가 미술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작업을 할 수도 있고. 소통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것이 무대미술이에요."

운명 같은 끌림... 경험뿐 아니라 사람도 얻었다

해인씨(뒷줄 왼쪽에서 두번째)의 서울예대 재학시절 모습이다.
 해인씨(뒷줄 왼쪽에서 두번째)의 서울예대 재학시절 모습이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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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가 압도당했던 그 공연은 재즈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무대였다. 그 운명 같은 이끌림 때문에 윤씨는 지금 박주원씨의 온라인 클럽장까지 맡을 정도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윤씨는 입시생활 동안 좋은 경험뿐 아니라 사람도 얻었다고 한다.

그녀가 추구하는 '소통하는 미술'을 어느 정도 실천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무대미술은 무대·공간을 다루는 미술이어서 정말 좁게는 연극무대부터 콘서트 무대, 넓게 보면 광고미술, 영화 세트, 인테리어, 공연 등 영역이 무궁무진하단다.

'어딜 가서라도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마음먹었다는 그녀는 4수 이후 서울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안에 전공 실무를 배우다보니, 이론과 자신의 시각을 더 넓혀 줄 수 없었다.

그래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한예종 시험에 '마지막으로' 도전했고 합격했다. 한예종 시험은 일반 대학교의 입시와는 따로 진행되어 수능을 보지 않으며 자체적으로 필기와 실기시험을 두고 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해 열정과 애정을 갖고 있다.

모르는 것은 뭐든지 배우고 싶어졌다는 것이 예전과 달라졌단다. 예전엔 힘들기만 했다면 이젠 힘들기보단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그걸 항상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사람마다 계기는 다르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은 그 고민을 정말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가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그걸 학교에서 못해 주니까요."

덧붙이는 글 | 류소연 기자는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수능, #입시,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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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대학생입니다. 항상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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