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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 책 한 구절에 빠져들다
 깊은 가을, 책 한 구절에 빠져들다
ⓒ 김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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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단풍이다. 그러나 가을이 드리운 모든 곳에 단풍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곡성의 한 공원에서 본 1004종의 장미는 있는 힘껏 올해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었다. 둘러친 단풍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장미를 응원하며, 그곳에 노란 표지로 채색된 '꽃들에게 희망을' 한 권 들고 나들이를 나섰다.

이 책을 처음 본 때는 1991년 까마중 열매처럼 민둥한 머리로 살아가던 고교시절이라, 그저 짧은 내용과 많은 그림에 혹해 단숨에 읽어내려간 경험밖에는 더 떠올릴 것이 없다. 생텍 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반쪽은' 류의, 책이 주는 깊이를 알 턱이 없는 나이다. 이후 삶이 내게 안긴 생채기가 눈을 뜨게 했을까. 그때 그저 읽고 묻어두었던 책들의 구절 구절이 요즘 가끔 튀어올라 날 휘청이게 한다.

거대한 애벌레 탑을 오르다 포기한 노랑애벌레가 고치를 만드는 늙은 애벌레에게 묻는다.

"나비가 되기로 결심하면……무엇을 해야 하나요?"

늙은 애벌레가 대답한다.

"나를 보렴.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버리는 듯 보이지만, 고치는 결국 도피처가 아니야."
"고치는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잠시 들어가 머무는 집이란다."
"고치는 중요한 단계란다. 일단 고치 속에 들어가면 다시는 애벌레 생활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탑을 만들며 경쟁의 중심에 서 있는 애벌레나, 고치를 만드는 애벌레 모두 나비가 되고 싶어 한다. 날아오르고 싶어 한다. 기어다니는 현실을 초월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두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지는 못한다. 나비가 되지 못하는 애벌레는 두 가지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법을 택하거나, 변화 앞에 소심해지거나…….

잘못된 방법을 택하는 애벌레들은 그저 안쓰럽다. 평생 열심히 탑을 기어오르고 다른 애벌레를 밟고 올라서려 안간힘을 쓰지만, 맨 꼭대기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휑~하는 허무함뿐이다. 누구를 탓하랴. 삶을 길게 바라보는 지혜가 없었을 따름이다. 한편, 변화 앞에 소심한 애벌레들은 고치의 세월을 견뎌야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서도 실천의 언저리에서 서성인다. 그동안 세상이 자신에게 가르친 방식과는 너무도 다르기에 송두리째 기존의 패턴을 뒤엎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위의 책 구절은 두 번째 오류를 안고 있는 애벌레들을 위한 조언이다. 눈을 질끔 감고 용기를 내보도록 추어주는 격려이기도 하다. 물론, 고치를 만드는 작업은 변화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변화를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기도 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존의 틀을 부숴야 한다는 이야기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그노시즘의 영적인 신 '아브락사스'까지 끌어들이며 싱클레어에게 답장을 한 데미안은, 또다른 세계를 원한다면 이전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주문한다. 늙은 애벌레의 이야기를 들은 노랑 애벌레 역시 파괴의 열쇠를 들고 문 앞에서 갈등한다. 갈등하는 이유는 하나다. 되돌아가기 버튼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한 순간, 앞만 보며 헤쳐가야 하는 또다른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실컷 걸어온 길을 깡그리 뒤엎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새로운 길의 첫걸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문턱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언제가 변화의 순간인가?'하는 문제는 다분히 주관적이며, 어느 때를 정하든 변화의 순간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삶에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발견하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주관을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변화'에 갈증을 느낀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이들이 세운 변화의 순간은 마치 컵에 가득 채운 물처럼, 넘치기 위해 꼭 한 방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준비는 완료되었다. 출발 신호가 없을 따름이다.

2011년 가을에 읽은 늙은 애벌레의 고치 이야기는, 그저 노랑애벌레만을 위한 조언은 아니다. 늘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제 서로를 밟고 오르며 만들어내는 바벨탑 따위는 지겹지 않은가?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외친 지도 벌써 50년이 지났다. 꽃밭을 일구는 다양한 나비들이 날아오르지 않는 한, 꽃이 만발한 세상이란 없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들의 조용한 혁명을 기다린다.


꽃들에게 희망을 (반양장)

트리나 폴러스 지음, 김석희 옮김, 시공주니어(2017)


태그:#책, #꽃들에게 희망을, #변화, #한 구절,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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