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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다섯 번째, 이번엔 광주·전남·전북입니다. [편집자말]
시골 마을마다 보건지소(보건소는 시군의 중앙에 있는 상급기관이고, 각 면마다 하급기관인 보건지소가 존재)가 있다. 의료인들이 대체복무의 일종인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는 직장이기도 한 보건지소는, 근처에 의지할 의료기관이 없는 주민들을 위해 국가에서 설치 운영하는 공공보건시설이다.

의료 기관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접근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그 하나에만 매달리는 것은 나무는 보지만 숲은 못 보는 경우가 될 수 있다. 전남 고흥에서 올해로 3년째 공중보건의로 근무한 경험으로, 가까이 있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느낀다. 집 앞에 있는 보건지소가 그림의 떡으로 보이는 환자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가 없는 나는 읍내를 갈 때나 도시로 나갈 때 시골버스를 이용하게 되는데, 인구가 감소하는 시골의 특성상 버스 노선은 자꾸 줄어든다. 보통 한 시간에 한 대. 그나마 면소재지가 그렇고, 깊숙한 마을은 하루에 네다섯 대가 있을 뿐이다.

남양면 망주리는 나름 큰 마을이지만, 면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다. 마을 주민 전제순 할머니(74)는 중풍 후유증으로 오른다리에 힘이 없다. 조기 치료 덕택에 혼자서 걸어 오실 만큼 건강하긴 하지만, 교통편이 없어서 반나절을 각오하고 와야 한다.

오전에 와서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가려면 오후 1시 차를 타야 한다. 남들 점심 먹을 시간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뒷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다. 자가 운전자가 많아져서 버스 노선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차를 굴릴 여유가 없는 노인들은 그만큼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분들
▲ 집으로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분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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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서, 아파서, 바빠서... 쉽게 올 수 없는 보건지소

자연환경이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남양면 근처에는 우도라는 섬이 있는데, 경기도의 제부도처럼 하루에 두 번 간조 때마다 물길이 열린다. 길이 생겼을 때 빨리 나와서 용무를 보고 급히 돌아가야 한다. 물때는 날마다 조금씩 변하는데, 일과시간에 썰물이 한 번만 끼어 있을 때는 보건지소까지 올 여유가 없다. 나는 그 분들이 오시면 진료기록부에 '섬나라에서 오신 분'이라고 적어 놓는다. 몇 달 전에 오고 깜깜 무소식인 그들을 오늘도 기다려본다.

걸어서 올 만큼 가까운 거리에 사는 분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남양보건지소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정류소 겸 슈퍼가 하나 있다. 슈퍼 주인 최선순 할머니(72). 시골 마을의 허름한 슈퍼지만, 드문드문 버스표나 간식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손님이 언제 올지 몰라, 잠깐의 짬을 내기 힘들다. 추석 즈음에는 아들이 내려와 있어 편하게 맡기고 침을 맞으러 오셨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전에는 급하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갑자기 오금 근처에 이상이 생겨서 걷기가 영 불편하다고 한다. 평소보다 걸음걸이를 저는 게 보인다.

"슈퍼는 어떻게 하시고 오셨어요?"
"내가 아파 죽겠는데…. 신경도 안 쓰고 왔네."

진찰을 했더니, 슬와부 근처 대퇴이두근건과 주변 인대에 이상이 생겼다. 일반 침을 쓰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아 화침(火針)과 칼텐보른(Kaltenborn) 수기법을 적용했다. 유침(침을 꽂아두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술시간이 짧은 것이다. 치료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가시려는 모습에 한마디 했다.

"어머님, 그렇게 급하게 가면 다리에 무리 생겨요. 천천히. 천천히. 알았죠?"

손님은 거의 없어도 슈퍼는 슈퍼인가 보다.

"그렇게 바빠서 치료나 제대로 받겠습니까?"

동네에서 가장 젊은 새댁 중 한 명인 제갈혜숙씨(30)는 농사일을 하느라 오른 손목이 부었다. 동네에서도 손꼽힐 만큼 밭이 큰 데다가, 남편은 먼 데 돈 벌러 나가서 농사일은 온전히 자기 차지다. 진료를 받는 도중에도 "선생님, 얼마나 걸려요? 오래 걸려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렇게 바빠서 치료나 제대로 받겠습니까?"라고 톡 쏘아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손목 치료하고 또 삽질하러 간다는 말에 급히 테이핑을 붙여주었다. 테이핑요법은 혈액과 림프의 순환을 도와주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치료효과가 지속되는 특징이 있어서 일할 때 약간이나마 통증을 줄이려고 붙인 것이다.

다음 날 다시 손목이 부어서 내원했다.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상담만 받고 가겠다고 말을 꺼낸다. 시간이 없는 환자를 위한 응급조치가 필요했다. 아이스팩 출동. 밭에 가는 동안이라도 손목에 아이스팩을 올려놓으라고 했다.

"3분 댔다가 1분 떼고. 이렇게 다섯 번 하세요. 그럼 20분이잖아요. 이걸 하루에 세 번. 알았죠?"

아무리 바빠도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면 괜찮다. 어제는 초진환자가 왔는데, 주소를 보니 근처 마을이라 왜 지금껏 안 왔는지 물어보았다. 이유는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하시는 오정숙 아주머니(53). 요즘에는 소록도로 일을 다니게 되었다. 아침 7시 40분경에 출발해서 저녁 6시에 다시 남양면으로 돌아오는 그녀. 비가 오거나 닫력에 빨간 날만 쉬는 공공근로의 특성상 진료소에 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비가 자주 내리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집도 가깝고 할 일이 없는데도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다. 중풍 후유증으로 오른쪽이 마비된 신야방 할머니(71). 간병인이 휠체어로 모시고 오지 않는 한 보건지소에 올 수가 없다. 예전에 잘 챙겨주던 남편분도 몸이 안 좋아서 그만 한 정성을 쏟기 힘들다.

무릎이 안 좋은 곽형례 어머님 가정 방문
▲ 출장진료 무릎이 안 좋은 곽형례 어머님 가정 방문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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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형례 할머니(80)는 무릎이 안 좋다. 거동조차 못하는 양반이 작년에 있던 공중보건의 선생님께 침을 맞고 벌떡 일어설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농사일이 천직인지라 무릎이 낫는 날부터 양파 수확 작업을 일주일 이상 도와주다가 무릎이 영영 망가져 버렸다. 보건지소에서 예방접종이 있는 날, 무료 접종을 맞으려고 걸어오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렸더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귀띔해 주었다. 보통사람이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다.

이렇게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금요일마다 출장진료를 간다. 한방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을 해서 침도 놓고 뜸도 뜬다. 일주일에 한 번의 진료가 큰 효과는 없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몸이 불편한 신야방 어머님 가정 방문
▲ 출장진료 몸이 불편한 신야방 어머님 가정 방문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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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건 어떨까

가깝다는 장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환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의원이나 병·의원들을 보면, 지역 특성에 맞춰 아침 7, 8시에 문을 열거나, 밤 늦게 야간 진료를 하기도 한다. 물론 공공기관인 보건지소에 정해진 근무시간 이상을 강요할 순 없지만, 아침 7시에 진료를 시작해서 4시에 끝나는 식으로, 탄력적인 시간제를 고민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실제로 대부분의 보건지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환자가 몰리는 경우는 있어도, 4시나 5시 이후에 환자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강제적으로 시행할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활용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7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직원들에게는 고역이 될 테니까.

보건행정에도 현실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내과 진료를 받으면 그날은 한방진료를 못 받는다. 하루에 두 개 이상의 과 진료를 못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런 경우에는 본인이 건강보험공단 부담금까지 같이 내야 한다.

오랜만에 물때가 맞아 나온 우도 주민, 간만에 쉬는 날이라 찾아온 공공근로자는 내과와 한방진료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그럴 때는 편법이긴 하지만, 접수를 아예 안 받고 치료하기도 한다. 환자 수에 상관없이 똑같은 봉급을 받는 월급쟁이의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도 있겠다.

군에서 시행하는 '해피고흥' 사업 중 보건의료 분과에서 펼치는 진료 현장
▲ 보건소 방문보건사업 군에서 시행하는 '해피고흥' 사업 중 보건의료 분과에서 펼치는 진료 현장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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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 '보건소 방문간호사' 이야기가 나왔다. 2007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시작한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은 간호사들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건강관리를 해주는 의료서비스다.

하지만 보건소 예산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10개월이 되면 재계약, 23개월 되면 해고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근로기간이 1년이 되면 퇴직금이 발생하고,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려고 편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간호사는 정들자마자 이별, 환자는 중간 중간의 의료공백을 견뎌내야만 한다.

공중보건의 입장에서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보건소는 가깝지만 먼 곳이 되어 있었다. 거리보다는 마음이 더 가까운 보건소가 만들어지길 바라본다.



태그:#공중보건의, #보건소, #방문진료,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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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지역투어] 2011 시민기자 1박2일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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