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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알고도 놓치는, 혹은 숨어 있는 85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지금 85를 생각하려는 것일까. 멀리 보이는 85호 크레인과 우리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 팔십오는 김진숙이 버티고 선 85호 크레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알고도 놓치는, 혹은 숨어 있는 85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지금 85를 생각하려는 것일까. 멀리 보이는 85호 크레인과 우리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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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팔십오 개를 넘나드는 악몽 안에서 허우적댄다. 꿈이란, 일상으로 되돌아오면 흐릿해지지만, 흐릿해져야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다가온다. 일상을 교란한다.

하물며 자면서 꾸는 게 아니라, 깨어 있을수록 또렷해지는 악몽이라면, 어찌해야만 할까. 꿈에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현실에서 좌판을 펼 때(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엊그제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느새 17명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악몽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김남주는 도처에 널린 악몽을 '삼팔선'이라 불렀다. 그의 낮고 쩌렁쩌렁한 음성이 귀를 파고들 때, 삼팔선은 정말이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이미 알았던 삼팔선, 알고도 외면했던 삼팔선, 내 안의 삼팔선, 네 속의 삼팔선, 삼라만상의 삼팔선이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우글댔다. 그 시는 말하자면 삼팔선의 목록이자, 악몽의 목록이었다. 시인의 외침은, 바로 '그것을 보라!'는 것이었다. 김남주를 변주한다.

팔십오는 김진숙이 버티고 선 저 거대한 크레인에만 붙어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이 온종일 서서 일하는
대형마트 계산대에도 있고
간밤의 피로에 겨우 일어나 바라보는 여덟시 오분! 아 지각! 야속한 시계에도 있다
가까이는
더럽고 힘겨운 한 달 노동으로
간신히 만지는 팔십오만원에도 있고
멀리는
안락한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 버튼 하나로
계좌를 들고나는 팔십오억원에도 있다
바다너머 강정마을 처참히 부서지는 구럼비 바위에도
은빛모래 눈부신 내성천의 어두운 미래에도 있다
낮게는
시퍼런 문신을 뽐내며 한진중공업을 에워싼 용역아이들의 팔뚝에 있는가하면
더 낮게는
살겠다고 올랐다가 죽어 내려온 용산참사 형체 잃은 시신에도 있고
높게는
거대한 컨테이너 산성으로 작은 촛불 끄려던
뼛속친미 완벽도덕 각하의 꼼수에도 있다
그분 앞에서 굽실굽실 시기적절
심심찮게 벌이는 쇼쇼쇼
의원과 검사와 스폰서와 목사님들의 애국파티에도 있다
뿐이랴 팔십오는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첨단 금융기법의 나라 아메리카 나스닥과 다우와 에스엔피오백 지수에도 있고
저들이 주고받은 한미에프티에이 사랑편지에도
포퓰리즘 절대반대 시장님의 매끈한 얼굴에도 있다 노동을
유연화의 개기름으로 처바르고 경제여 성장이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최루액을 쏘아대는 이스라엘산 물대포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삽질과 몽둥이와 비정규노동으로 넘실대는 도가니
팔십오는 김진숙의 트위터와 경찰소환장에도 있고 침묵의 벽
우리 가슴에도 있다

나의 팔십오는 무엇인가, 너의 팔십오는 무엇인가.
우리의 팔십오는 무엇인가. 그들의 팔십오는 무엇인가.

겨울에 올라갔던 그녀가 다시 겨울의 길목인데, 아직도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85개의 85 + α>의 이미지와 글로 엮는 창고형 박물관
'저마다의 팔십오'로 김진숙을, 아니 오늘의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85개의 85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85세 할머니의 얼굴과 살아오신 이야기를, 누군가는 85학번 40대 중년의 일상을, 누군가는 8시 5분을, 누군가는 85번 버스를, 누군가는 85개의 머리카락을, 누군가는 85개의 단어로 엮은 시를, 누군가는 85권의 책을 이야기하겠답니다.

이런 상상도 해 봅니다. 잘 구운 85개의 커피콩을 사진에 담고, 그걸 곱게 갈아, 뜨거운 물로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떠오른 아주 짧은 생각. 김진숙에게 트위터로 배달하는 한 잔의 커피! 응원의 한 마디!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요. 어느 요리사가 찍어 보내온 85개의 숟가락! 85개의 떡볶이, 85분짜리 영화, 85만 원의 월급....

이 프로젝트는 숫자에 연연합니다. 매우 연연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85에만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지나쳤던 85, 숨어있는 85, 즐거운 85, 슬픈 85, 그 모든 85를 환영합니다. 직접 찍어 보내시면 아주 좋고, 솔직담백한 글이 덧붙으면 금상첨화고, 그럴 수 없다면, 아이디어라도 환영입니다. 기발할 수록 더 좋습니다.

대기중인 소수의 사진가들이, 가능한 선에서 그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구현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찾아낸 85들이, 소금꽃이 웃음꽃으로 바꾸는 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참여방법

1. 여러분 주변에 어떤 85가 있는지 살펴주십시오. 관찰한 85도 좋고, 만들어낸 85도 좋습니다.
2. 사진을 찍고(휴대전화로 찍은 것도 무방), 짧은(길어도 무방) 글과 함께 85archive@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3. 85개의 85프로젝트 블로그 http://85archive.tistory.com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블로그에 댓글로 아이디어를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4. 이 아카이브는 배타적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퍼가셔도 좋고, 나눠주셔도 됩니다. 블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작업을 발견하시거든, 트위터 등으로 나눠주시고, 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독려해 주십시오.



태그:#김진숙, #85개의85,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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