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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우리는 99%다", "매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 등의 구호를 외친 뒤,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파크)까지 행진했다. 지난달 17일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우리는 99%다", "매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 등의 구호를 외친 뒤,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파크)까지 행진했다. 지난달 17일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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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믿을 수가 없다.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조 잭 리노(34)씨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로어 맨해튼 시티홀 북쪽 여권접수처 건물 계단 꼭대기에서 길 건너편 폴리스퀘어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리노뿐만이 아니다. 수십 명의 언론사 기자는 물론 수백 명의 시민들도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5일(현지 시간) 오후 4시 40분경, 폴리스퀘어를 가득 메운 수천 명의 시위대는 "우리는 99%다", "매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구호가 끝나면 무대에서는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뒤편에서는 악단의 연주가 시작된다. 그러다가 또 중간에 있던 시위대가 노래를 부른다. 언뜻 보면 축제나 난장이 벌어진 듯 어수선해 보이지만, 구호를 따라하거나 음악에 맞춰 손팻말과 깃발을 흔드는 모습은 일사불란하다.

특히 이날 시위에 조직력을 갖춘 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대거 가세하면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이날 시위에서는 일부 진보적인 한인들이 부산 한진중공업 크레인 85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의 연대를 호소하는 유인물을 돌리는가 하면, 한미FTA 반대 손팻말도 등장했다.

▲ 분노한 미국 시민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매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 등의 구호를 외친 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까지 행진했다.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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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시민단체, 대학생 등 대거 가세... 평화 행진 뒤 경찰 폭력 논란

이미 집회가 시작됐지만, 시티홀쪽에서 폴리스퀘어를 향해 밀려오는 사람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시위대는 폴리스퀘어를 가득 메우고도 남아 옆에 있는 토마스페인공원까지 넘쳐났다. 어느 순간부터 계단에 있던 시민들도 구호를 따라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몇 명은 손팻말도 들고 있다. 시위를 구경하러 온 일반 시민들과 폴리스퀘어에 들어가지 못하고 길 건너편까지 밀려나온 시위대가 섞여 있다.

시위대가 전부 모이자, 집회가 마무리되고 행진이 시작됐다. 목표는 19일째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파크). 폴리스퀘어를 빙 둘러 쳐져있던 경찰의 바리케이드 한쪽 부분이 치워지면서 시위대가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은 도로 한 차선만을 내준 채 별다른 제지 없이 이들의 행진을 허용했다. 다만 경찰 헬기 1~2대가 맨해튼 상공에 떠서 시위대를 감시했다. 수천 명의 사람이 한 차선만을 이용해 행진을 하다 보니, 굼벵이처럼 여간해선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시위대는 불평 한마디 없이 구호를 외치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이어갔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하면서 시작된 미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조직력을 갖춘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가세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모인 1만5000여 명의 시위대.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하면서 시작된 미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조직력을 갖춘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가세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모인 1만5000여 명의 시위대.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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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인 존과 함께 시위에 참석한 사라 리빈(16)씨는 학교에 다니면서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는 "우리 부모님은 매우 오랫동안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세금도 정직하게 내는 99%"라며 "그러나 1%는 세금도 내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 부모님이 일한 대가를 가로챘다"고 분개했다.

그는 이어 "1%의 탐욕스러운 부자들이 부모님의 돈을 도로 내놓아야 한다"며 "이렇게 99%가 모여서 우리의 생각과 희망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남자친구 존도 "우리 모두는 정말 화가 많이 나 있다"며 "우리는 잘못된 것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월스트리트 점령' 측은 이날 행진과 관련 "우리가 함께 이 위대한 불의에 항의해야 한다"며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되살릴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을 함께 외칠 것"이라고 밝혔다. ABC방송은 이날 시위 참가 인원을 1만5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지난달 17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다.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라 로빈(16)과 그의 남자친구 존.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라 로빈(16)과 그의 남자친구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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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진에는 기존 시위대 외에도 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산업노조총연맹(AFL-CIO)과 뉴욕시 교원노조, 자동차 제조업 노조, 운수노조 등 노동계와 시민단체, 대학생 등 40여 개 단체가 대거 참여했다. 특히 2만 명 이상의 뉴욕 시립대 교수와 직원들이 참여하는 뉴욕 시립대 교직원단체와 전국간호사연맹(NNU) 회원들도 깃발을 들고 참가했다.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한 진보적인 온라인 시민정치단체 무브온(MoveOn.org) 회원들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교통노조 대표인 찰스 젠킨스는 이날 시위장에 임시로 마련된 연단에서 "미국은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는데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교통노조는 추위 등과 싸우는 월가 시위대를 위해 지하철 시설을 피난처로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반면 뉴욕경찰이 시위대 체포를 위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노조총연맹 조합원인 찰레스 헬름(75)은 "월스트리트의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이 내 자식들의 의료비와 집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며 "정치인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내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자의 권리, 아이들의 권리, 여성의 권리, 미국인 모두의 권리를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욕심 많은 부자들과 싸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파크)까지 행진했다. 시위대가 '이집트는 봄, 유럽은 여름, 미국은 가을'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아랍의 봄'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파크)까지 행진했다. 시위대가 '이집트는 봄, 유럽은 여름, 미국은 가을'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아랍의 봄'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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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청년들이 중심이 됐지만 이날 시위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참석했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두 아이와 함께 참석한 윌랏 부부는 아이들 때문에 손팻말을 들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구호를 외쳤다. 에이미 윌랏(38)씨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 행진에 참여했다"며 "경제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월가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여기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전에 이렇게 많은 시위대를 본 적이 없다. 희망적이고, 자랑스럽다"며 "우리의 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이 행진 통로를 좁게 허용한 것에 항의라도 하듯 "누구의 거리냐? 우리의 거리다"라는 구호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폴리스퀘어에서 자유광장까지는 약 1.2km 남짓 거리여서 빠른 걸음으로 15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그러나 선두 대열이 자유광장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특히 시민들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행진 대열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 대열이 자유광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가 넘어서였다.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위가 끝나는 듯싶더니, 해가 지면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부 분노한 시위대가 자유광장을 벗어나 뉴욕증권거래소 쪽으로 다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들과 충돌한 것.

경찰은 거리 행진은 허용했지만 뉴욕증권거래소 방향으로의 진입은 아예 차단했다. 특히 시위대가 거듭 진입을 시도하려고 하자, 흰 셔츠를 입은 지도부급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곤봉을 마구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또 시위대를 향해 '페퍼 스프레이'를 뿌리며 진압을 시도, 최소 20여 명의 시위대가 연행됐다. 경찰과 시위대 간의 팽팽한 대치 분위기는 이날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미국 청년들 월스트리트 점령? 김진숙도 한진중공업 점령!"

이날 시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구호는 역시 "우리는 (이득을 독점한 1%가 아니라) 99%다"였다. "월스트리트가 워싱턴을 샀다",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계급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등의 구호도 보였다. 타락한 금융자본가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시위인 만큼 월스트리트를 향한 성토가 주를 이뤘다.

미주 진보한인청년단체 노둣돌 회원 10여 명은 'NO FTA'라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미주 진보한인청년단체 노둣돌 회원 10여 명은 'NO FTA'라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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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 시위에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이 가세함에 따라 표출되어진 불만의 목소리도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일부 참가자는 미국 사회안전망의 실패를 풍자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교육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교사, 허술한 의료보험제도를 규탄하는 의사, 학비 부담을 줄여달라는 대학생 등 다양한 주장들이 터져 나왔다.

특히 미주 진보한인청년단체 노둣돌 회원 10여 명은 'NO FTA'라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미국과 한국, 콜롬비아, 파나마 간의 FTA(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노둣돌 활동가인 홍석종씨는 "FTA로 인해 얻는 수익은 모두 대기업으로 가고, 일반 노동자나 시민들만 피해를 본다"며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 오바마 정부가 FTA를 통과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여기에 와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주 한인들은 이날 김진숙 지도위원의 사진과 함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상황을 담은 유인물을 만들어와 시위대에게 나눠줬다.

유인물에는 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서 280여 일째 고공점거농성을 하는 이유, 한진중공업의 횡포, 희망버스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관계자는 "미국 청년들이 월스트리트를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진숙씨가 생각났다"며 "그녀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점거하고 있는 이유도 결국 자신의 잇속만을 생각하는 대기업의 횡포 때문"이라고 밝혔다.


태그:#월스트리트 점령, #월스트리트 점거, #월가 시위, #김진숙,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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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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