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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해고 노동자 인왕산 등반 25일 오전,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상경해 투쟁중인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청와대가 내려보이는 인왕산에 올라 현수막을 펼치고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 한진중공업 투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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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이른 아침, 12명의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은 인왕산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정상 주변에는 출입금지 선이 쳐졌고, 주요 거점에는 경찰병력이 배치됐다. 출입을 제한한 명목은 '서울성곽 보수 공사'. 하지만 사실상 한진중 노동자들이 펼칠 시위 퍼포먼스를 막겠다는 것이다.

한진중 해고 노동자들은 이날 청와대가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자락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경찰 "불법시위 예상돼 막는다"

벌써 인왕산 세 번째 등반인 노동자들도 시작은 노련했다. 전날 밤 산 주변 지역에 흩어져서 밤을 보낸 이들은 오전 7시 일제히 가까운 등산로를 이용해 등반을 시작했다. 부산 출신인 이들도 이제 인왕산 만큼은 잘 안다.

산행은 순조로웠다. 등산객도 많지 않고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동행한 강원식(50), 최철영(30) 두 노동자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을 향해 쉬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단 40여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른 일행이 모인 산의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상을 꼭 통과해야만 했다. 강씨가 나서서 "반대편으로 넘어가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여기 넘어 갈 수 없습니까?"
"안됩니다. 보수 공사 중이어서 내년 4월 까지는 통행이 안 됩니다."
"그런데 경찰은 왜 올라와 있습니까?"
"불법시위가 예상돼 대비하는 중입니다."

다른 길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스마트폰의 힘을 빌려 길을 찾아보려 했으나 안테나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비스 안됨'이 떴다.

최씨가 다른 일행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다행이 다른 팀은 무사히 정상부근에 도착했고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듯했다. 기자를 포함한 4명만 퍼포먼스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하산하는 길, 최씨의 한숨이 깊었다. 올해 서른으로 막내(29)는 아니지만 해고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어린 세대다.

"투쟁하기 전에 서울 올라온 적 있나요?"
"아니요. 올 해 초에 상경투쟁 할 때 처음 올라왔습니다."
"다른 사람들 하고 같이 (퍼포먼스) 해야 하는데 못해서 어떡해요?"
"그러니까요. 와, 열 받아 죽겠습니다."
"해고 된 지 1년이 가까워 지는데 힘들지는 않나요? 집에서 걱정이 많죠?"
"그렇죠 뭐. 날씨가 또 추워지니까 기분도 달라집니다. 집에서 걱정도 많이 하시고."

산 반대편에 모인 노동자들 현수막 펼치고 구호 외쳐

내려가는 길도 경사가 심해 숨이 찼다. 허탈하게 내려온 일행들은 산 밑에서 잠시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단연 주제는 경찰의 발 빠른 대응과 다음날 예정된 홍준표 대표와 만남이었다.

강원식씨는 "어찌됐든 내일 홍 대표 면담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조남호 회장이 악덕 기업주의 상징이 되고 있는데 한나라당도 언제까지 감쌀 수는 없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여당 내에서도 한진중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강씨는 이어 "홍 대표가 예전에도 한 번 우리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는 만큼 당론은 아니더라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추진하는 국정조사에도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현재 다음달 7일에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돼 있다.

홍 대표는 지난 7월 한나라당 포럼 강연에서 "올해 우리나라 조선업 경기가 좋은데 왜 한진중공업에서 100여 명의 정리해고 사태가 벌어졌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들의 면담은 지난 21일 서울 동대문구 홍 대표 자택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등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 성사됐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홍 대표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산 반대편에 오른 10명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경찰과 실랑이 끝에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폐'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칠 수 있었다. 이들은 정상은 아니지만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자리에서서 구호를 짧게 외치고 자진 해산했다.


태그:#한진중공업, #조남호, #국정감사, #김진숙, #한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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