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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성기 사진 블로그 노출 파문'에 대해 선정적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성기 사진 블로그 노출 파문'에 대해 선정적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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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외국 출장을 가는데 (반대 진영에서) '도피'한다고 할까봐 걱정이에요. 블로그에라도 올려놔야 하나."

여름방학이 한창인 지난 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정. 물난리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난주 중부권 폭우와 함께 휘몰아친 '여론 폭풍'의 생채기는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날 오후 이 대학 법학관 신관 연구실에서 만난 박경신(40)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표정에는 피곤이 가득 배어 있었다. 지난달 27일 '성기 사진 블로그 노출 파문' 이후 언론 취재와 비난 여론에 계속 시달린 탓이다. 그런 그에게 2일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떠나는 네팔 출장은 잠시 숨고를 기회이기도 한 셈이다.  

"선정적 언론 보도가 인터넷 폐해 더 키워"

"'인터넷 폐해'라고 하는데 주류 언론에서만 조심하면 커지지 않을 수 있어요. (블로그) 방문자수가 <데일리안>에서 처음 기사 쓰고 KBS, MBC에서 방송하며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막말 동영상' 같은 것도 네티즌 사이에선 '소폭발'하는데, 방송이 가십으로 만들면 '대폭발'해요. 그게 잘못은 아니지만 언론사에서 계속 지목하는 인터넷 폐해 한 축에는 언론 보도가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해요. 언론에서 선정 보도하니까 다들 가서 보는 거죠."

박 교수는 대뜸 그간 자신을 둘러싼 언론 보도에 대한 아쉬움부터 쏟아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아래 방통심의위) 심의위원이기도 한 박 교수는 지난달 20일 위원회에서 삭제 조치한 '남성 성기' 사진들을 자신의 블로그(박경신 자료실 http://blog.naver.com/kyungsinpark)에  올렸다. 애매한 음란물 기준을 들어 당사자 의견 청취도 없이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였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방통심의위에서 박 교수 블로그까지 심의 대상으로 올리면서 언론에 화제가 됐다. 박 교수는 곧 '남성 성기' 사진을 자진 삭제했지만 그것과 비슷한 수위라며 여성 성기를 묘사한 구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올려 스스로 '표현의 자유' 논쟁에 불을 지폈다.   

"음란 문제로 관심을 끌려고 의도적으로 올린 건 아니에요. 음란 기준보다는 국민들 모르게 게시 글이 차단되거나 삭제되고 있고, 부당하게 삭제되는 것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음란' 문제가 아니어도 국가보안법, 폭발물 제조법 같은 것들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도록 해야 하지 않나요."

검열 받은 검열자... "물러나라면 극렬히 싸울 것"

지난 5월 민주당 추천으로 방통심의위원 활동을 시작한 박 교수는 지난 7월 13일부터 자신의 블로그에 '검열자 일기'를 올렸다. 이번 일이 있기까지는 블로그 방문자 수도 하루 수백 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쿠르베 그림 역시 이미 포털에서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합법적 작품'이었지만 누리꾼들의 뜨거운 찬반 논쟁과 이른바 '성지순례'까지 보태져 3600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블로그 누적 방문자수가 60만 명을 넘으며 일약 '파워 블로거'로 등극했다.

일부에선 음란물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위선적인 문화를 고발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청소년 유해 매체물'에 해당하는 성기 사진을 성인 인증 장치도 없이 블로그에 올린 건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법이 잘못됐다는 건 이미 블로그를 통해서 인정했어요. 다만 언론 보도 때문에 방문자가 폭주한 면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렇게 방문자들이 많을 걸 알았다면 청소년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안 했죠."

하지만 한나라당과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위원회 결정 사항을 폭로한 것은 '비밀 유지 의무'를 깬 거라며 징계나 사퇴를 압박하는 것에는 단호했다.

"물러나라고 한다면 극렬히 싸울 거예요. 그게 바로 그동안 내가 문제 삼아온 심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신심의 감시-견제하려고 '검열자' 돼... 변화 조짐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인 박 교수는 그간 미네르바 사건,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의 조선일보 광고주 불매운동 재판 등에서 법률 지원을 맡아 누구보다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를 비판해온 인물이다.

- 인터넷 심의를 비판하다 스스로 '검열자'가 된 것은 의외였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누군가는 들어가서 감시,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통심의위 역할을 바꿔봐야 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그동안 반대했던 국가가 (국민) 정신 생활에 개입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 알고 싶기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내 시각을 기부해야 전보다 균형 잡힌 심의가 이뤄질 거란 생각이었다."

- 이전엔 방통심의위가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 아니었나?
"그 전의 주장을 최대한 확장해도 방송 선정성 심의는 계속 진행해야 하고 통신심의도 자율심의가 제대로 안 되는 영역에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 교수가 지난달 13일 처음 올린 '검열자 일기 1편'에는 두 달 동안 사무국에서 올린 수천 건의 '삭제 건의'를 위원회가 한 번도 뒤엎은 적이 없다며 거수기 역할만 하는 심의위원 역할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방통심의위 안에서도 요즘 변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주 목요일(28일) 통신심의 때도 음란 건 중 하나를 삭제하지 않고 '청소년유해물'로 표시하거나 성인 인증 방식으로 하자는 건의가 올라왔다. 내가 올렸던 사진도 그렇게 처리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그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 내가 문제제기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올라온 게 아닌가 하는 희망 섞인 기대를 갖고 있다. 실제 (사무국) 내부에서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

"인터넷 심의 '금서 목록' 공개해야... 검열자 일기 계속 쓸 것"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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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지금까지 검열자 일기 9편을 올렸다. 한 주에 2편 꼴이다. '자살 방조' 글이 무혐의 처리된 일부터 폭발물 제조법, 대포폰 문제 등 아슬아슬한 '경계선'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짚었다.

- 앞으로도 '검열자 일기'는  계속되나?
"검열자 일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름만 '방통심의위 일기'로 바꾸려 한다. 논란의 중심은 방통심의위라는 걸 알리려는 것이다. 국민이 뭘 봐야 하는지 재단하는 기구인데 국민이 잘 모른다. 결과적으로 내 홍보만 돼 버리는 것 같다.(웃음)

과거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도 뭘 보면 안 되는지 리스트를 주지 않나. 인터넷도 심의하면 뭘 보면 안 되는지, 올리면 안 되는지 알려 줘야 한다. 한 달에 몇 백 건씩 삭제되고 있는데 모두 공개해야 한다. 유해한 내용이라고 공개하지 않는데 그 부분을 지우고 보여 주면 된다. 국민이 뭘 보는지, 듣는지를 통제한다는 건 정신 생활을 통제하는 건데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는 국민의 비판과 감시 속에 이뤄져야 한다.

검열자 일기는 일 주일에 두 번씩 쓰면 앞으로 3년이면 300개 넘을 거다. 그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방통심의위에서 '금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는 한 내 목록이 유일한 게 될 테고, 그 중에서 경계선상에 있는 것만 골라 하고 있으니 더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난 방통심의위 '트로이 목마'가 아니라 '제갈공명'"

방통심의위는 요즘 위기다. 진보 진영에선 방통심의위가 국가 검열 기구라며 민간 자율 심의에 맡기라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고 게시자 의견청취도 없이 게시 글을 삭제하는 통신심의 규정은 고등법원에서 위헌 제청을 한 상태다.

- 방통심의위 활동에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던 박 교수의 위원회 활동이 직원들 처지에선 내부 해체를 부추기는 '트로이 목마'처럼 보이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더라. 그런데 직원 입장에서는 나를 '트로이 목마'가 아니라 '제갈공명'으로 봐야 한다. 내 제안대로 규정과 절차를 변경하고 기준을 엄정하게 하면 (방통심의위가) 더 '롱런'할 것이다.

직원들도 지금 하는 일이 보람 있는 업무는 아니다. 어차피 의도적으로 올리는 불법 글들은 지워도 지워도 다시 생기는 '두더지 잡기' 게임 같다. 문제는 올리는 사람도 불법인지 모르는 애매한 것에 대한 심의인데, 게시자 의견도 안 물어보고 내리고 있다. 그건 재판으로 치면 상대방 변호 없이 일방적으로 한쪽 얘기만 듣는 건데, 그렇게 해서 이기면 '밸류(가치)'가 있겠나.

사실 직원들도 거수기다. 식약청이니 마사회니 스포츠토토니 연락 오면 (문제) 있는지 없는지만 판단하고 그쪽 의견대로 안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원들도 상대방이 있고 토론이 있는 일에 정력을 쏟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난 '트로이 목마'가 아니라 직원들에게 훨씬 더 오랫동안 안정된 직장을 제공할 비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왜 싸우느냐고? '표현의 자유' 위축 막으려는 것"

하지만 정작 위기에 처한 건 방통심의위가 아니라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수준이다. 그동안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가 비판을 받은 건 정치 편향성 때문이다. 트위터 계정이 대통령 욕설을 연상시킨다고 차단된 '2mb18nomA'건이 대표적이다. 이날 연구실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현재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현실을 짚는 즉석 강의를 방불케 했다.

"왜 싸우냐고? '표현의 자유' 위축 효과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의 선을 명확하게 긋지 못해 합법적 표현도 스스로 자제하는 게 위축 효과인데, 다른 영역에서는 위헌이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 영역에선 '위헌'이라고 한다. 밥 먹는 욕구와 달리 말은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위축된다.

'미네르바'가 무죄가 됐지만 이후 수많은 고수들이 토론했던 다음 아고라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MBC 'PD수첩'도 무죄 판결됐지만 이후 방송의 권력 비판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돼 가고 있다. 언소주 같은 소비자 운동도 사법처리 한 번에 상당히 위축돼 버렸다.

'2MB18nomA' 같은 경우도 그 말은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띄워 놓으면 상당한 위축효과가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워낙 너른 공간이라 쉽게 위축되진 않겠지만 계속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표현의 자유 관련 법제도 후진적... 검찰도 큰 영향"

박 교수는 지난 2009년 미네르바 재판 과정에서 문제가 된 허위사실유포죄가 짐바브웨에서조차 2005년 위헌 판결이 났다고 해 우리 법 제도의 후진성을 꼬집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 수준을 어떻게 보나?
"현실과 법 사이의 간극이 큰 게 한국 사회 특징이다. 성문화를 봐도 돌아다녀 보면 우리처럼 안마방, 룸살롱 찾기 쉬운 나라가 없다. 이런 과도한 유흥 문화는 남성 중심 직장 문화, 여성 취업 차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법 제도만 보면 간통죄도 있고 성매매도 처벌하고 심지어 '혼인빙자간음'에 낙태도 금지하고 엄격한 것 같지만 실제로 낙태, 성매매, 간통을 자유롭게 하는 나라다.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법제도를 보면 정말 후진적인 상황이다. 대표적인 게 사람이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진실적시 명예훼손'이다. 법조문에 있는 나라는 많지만 실제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말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욕죄'도 전 세계에서 4개 나라 밖에 없고,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반대파 탄압에 남용돼 왔기 때문에 폐지하라는 게 국제인권기구들 입장인데 전 세계 명예훼손으로 투옥된 사람들의 1/3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지난 2008년 언소주의 조선일보 광고주 불매운동 재판 당시 법률 자문을 맡기도 했던 박 교수는 노조 활동을 옥죄는 도구로 악용돼온 '업무 방해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업무 방해죄'는 우리나라하고 일본밖에 없는데 일본이 고도성장 시절 노조 탄압하려고 만든 것을 우리는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 조건이 안 맞아서 일 못 하겠다는데도 사용자 업무 방해로 처벌하는,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조항이다. 그런 조항이 살아 있으니 2008년 언소주의 소비자 운동을 범죄시하는 논리로 발전한 거다. 공갈죄, 협박죄, 강요죄도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는 그 방법이 부당하지 않는 한 공포심을 느끼더라도 용인돼야 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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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에 가장 큰 위협 요소로 '검찰'을 꼽았다. 

"실체법뿐 아니라 절차법에도 다른 나라에 없는 법이 많다. '복원권'을 보장하지 않는 임시조치제도는 권리 침해 주장하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결국 누군가의 눈에 불쾌한 것은 모두 없어질 수 있는 거다. 인터넷 행정 심의하는 데는 터키, 호주밖에 없는데 그것도 아동 성학대나 성 착취에 초점이 있지 우리나라처럼 광범위하게 하고 있지 않다. 국가보안법도 문제고,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더 큰 문제는 국가권력에 의해 법들이 너무 쉽게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검찰이 이런 법 조항들을 국가 권력 비호에 남용해서 문제다. 사실 '허위사실 유포죄'도 원래 없던 법인데 검찰에서 만든 거다. 검찰의 존재 역시 표현의 자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법을 아무리 좋게 개정해도 계속 문제가 될 거다." 

"음란 기준 토론 대신 선정화... 소통 수준 게토화"

박 교수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번 '성기 사진 노출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음란물 기준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만들었다. 다만 박 교수는 자신이 알리고 싶었던 국가 통신 검열 문제란 본질은 사라지고 선정적 사진만 남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G20 벽보 쥐 그림 사건이나 '2mb18nomA' 계정 차단을 보면 소통이 단절됐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이번 그림을 보고도 음란 기준을 놓고 토론하는 게 아니라 올린 걸 자체를 문제 삼아 문제 제기가 선정화되고 사람들은 와서 가볍게 소비하고 끝나버리면 계속 우리나라의 소통과 문화 수준이 '게토화(고립화)'되는 거예요. 말들은 많이 하는데 좀 더 고양되거나 승화될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거죠."


태그:#박경신, #성기 사진, #방통심의위, #인터넷심의,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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