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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필자는 '드디어' 대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개강은 3월이었으나 입학 전 겨울부터 신입생 환영회와 선후배 간담회가 줄줄이 있었다. 필자를 처음으로 반겨준 이들은 선배들, 그 다음으로 반겨 준 그것은 술, 술, 술이었다.

 

입학 후에도 각종 환영회와 뒤풀이가 줄지어 있었고, 일주일에 다섯 번은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필자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술을 잘 마신다 해도 내게도 정말 힘든 날들이 있었다. 전날 마신 술로 속이 뒤집어지는 날, 그냥 건강을 생각해서 적게 마시고 싶은 날 술을 조절하려고 해도 "잘 마시잖아, 왜 이래?", "에이 빼지 마" 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가볍게 하는 말이니 가볍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에게도 술자리의 경험이 있다면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임에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내가 이 잔을 마시지 않으면 분위기가 싸해질 것 같고, 그것보다 더 피하고 싶은 것은 내가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냥 일어나 집에 가는 일은 더더욱 못할 일….

 

직접 강요하진 않지만 '분위기'로 몰아가는 게 현실

 

가끔 뉴스에 선배들이 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대학생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례가 보도된다. 실제로 내 주변이나 다른 대학교 친구들을 보면 권위적이고 무서운 분위기로 마시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학교 3학년인 김아무개씨(23, 여)는 "마시라고 강압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상 마셔야 할 때가 많다. 술게임을 하게 될 때는 그게 더 심하다"라고 했다. 김씨뿐 아니라 많은 주변 친구들이 술을 강요당한다고 느끼는 경우는 주로 이렇게 직접적인 강요가 아니라 분위기로 강제하는 경우이다.

 

체질상 술이 받지 않는데도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도 많다. 김아무개씨(23세, 남)는 소주 '치사량'이 석 잔이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게진다. 술을 잘 못하지만 분위기를 잘 맞추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자리에 잘 어울리곤 한다. 그러나 성격 좋은 이 남학생도 새내기 때에는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선배들이 주는 술을 안 마실 수 없었다. 주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개념없는 후배'가 되었다.

 

과도하게 따라주는 술을 마시기를 거부하는 것을 속 좁고 분위기 못 맞추는 일로 보는 것, 속이 안 좋고 이 술 때문에 오늘은 죽을 것 같아도 주는 잔을 마시는 것을 성격 좋고 분위기 잘 살리는 행위로 보는 것. 좀 더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자리에 어울리다 보니, 이것은 비단 학교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술자리에서 이런 일은 많이 벌어졌다. 권위적인 집단이 전혀 아니라 해도 이런 일들은 벌어진다.

 

 

"다같이 마셔야 한다"는 우리...왜 그럴까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술을 참 많이 마신다고 한다. 입학한 지 한 학기도 안 되어서 속을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대학생들이 전반적으로 무리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각자가 좋아서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에 해당되는 것은 좋아서 마시는 것이 아닌 경우이다.

 

또, 다른 나라에도 술을 많이 마시는 학생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다같이 마셔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다. 미국 시애틀에서 살다 온 이아무개씨(20, 남)에 따르면, 미국 학생들은 술을 마시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단다. 반면 한인 학생들은 술을 다같이 마시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술 문화일 수도 있고,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따른 동서양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화의 독특함이 개개인의 술자리의 즐거움을 파괴한다면 문제가 된다.

 

그게 싫으면 술자리에 가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어느 집단에서나 술자리는 존재하고, 그 집단 내에서 어울리려면 술자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집단이 교회나 '금주 동아리'가 아닌 이상 그렇다.

 

더군다나 사회에 진출하면 그 '어울림'은 더 필수적인 것이 된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날아라 펭귄>에는 술을 못 마시는 남자 신입사원이 등장한다(게다가 그는 채식주의자다). 그는 마시기를 '싫어한다'기보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다. 그는 점점 직원들의 수군거림과 따돌림을 받게 된다. 게다가 술 잘 마시는 여자 동료와 비교되면서 상대적으로 더 따돌림을 당한다.

 

'즐기고 싶은 만큼 마실 권리'는 없는 건가요

 

많은 사람들이 술자리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 술자리가 정말 기분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개개인 모두에게 좋은 것이어야 한다. 모두에게 '자신이 즐길 만큼 마실 권리'가 허용되어야 한다. 나아가 '마시지 않을 권리'도 허용되어야 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 술 못 마시겠다는 사람에게 "에이 왜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권위적이지 말아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도 보이지 않는 권위주의로 인해 피해를 입는 약자들이 생길 수 있음을 기억하자.

 

전체를 위해 좋은 것은 전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에게도 좋은 것이어야 한다. 집단 중의 누군가, 특히 약자, 신입생, 신입사원, 후배, 부하직원에게 즐겁지 못한 자리라면, 집단의 단합이 잘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술자리 문화는 바뀔 필요가 있다. '다함께 마셔야 한다'가 아닌 '모두 즐겁게 마셔야 한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류소연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음주문화,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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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대학생입니다. 항상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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